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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입처 떠나 '질 높은 기사'로 경쟁"… 젊은 기자들 고개는 갸우뚱

[신년기획 l 다시 쓰는 저널리즘] (1) 돌고 돌아 출입처

김고은 기자2020.01.02 15:29:43

“진짜 출입처 없애는 거예요? 그럼 취재랑 마감은 어떻게 해요?”


지난해 11월 엄경철 KBS 통합뉴스룸 국장의 출입처 폐지 공약이 알려지자 다른 언론사 기자들이 보인 반응에는 호기심과 의심이 반쯤 섞여 있었다. 현재 출입처에 나가고 있는 5년차 미만의 기자들에게도 출입처 폐지에 관해 묻자 “지면부터 대폭 줄여야 한다”, “주 1회 마감하는 거면 가능할 것도 같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사무실에 내 자리도 없는데, 그럼 어디로 출근해야 하나”라는 한숨섞인 대답도 있었다.


한국의 언론사 조직은 출입처를 ‘디폴트값’으로 놓고 짜여 있다. 수습 기간을 끝내고 출입처를 배정받아야 비로소 ‘정식기자’가 된다. 출입처는 우리 사회 주요 분야와 요소들을 촘촘히 그물망처럼 짜고 있다. 요즘은 출입할 곳이 많아지면서 기자들이 여러 개 출입처를 동시에 갖는 경우도 많다. 기자들은 출입처에서 나오는 주간계획과 보도자료 등을 참고해 보고하고, 발제하고, 취재 계획을 짜고, 마감을 한다. 이 패턴에서 벗어나는 것은 기획취재팀이나 탐사보도팀으로 발령이 나거나 팀장 이상으로 승진했을 때다.


수십, 수백 명의 기자가 하나의 출입처와 취재원에 몰리는 출입처 제도는 과연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제도일까. KBS를 시작으로 각 언론사에서 출입처 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이뤄지고 있다. 사진은 정세균 국무총리 후보자가 지난달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로비에서 많은 취재진이 몰린 가운데 총리로 지명된 소감을 밝히고 있는 모습. /뉴시스

▲수십, 수백 명의 기자가 하나의 출입처와 취재원에 몰리는 출입처 제도는 과연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제도일까. KBS를 시작으로 각 언론사에서 출입처 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이뤄지고 있다. 사진은 정세균 국무총리 후보자가 지난달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로비에서 많은 취재진이 몰린 가운데 총리로 지명된 소감을 밝히고 있는 모습. /뉴시스


출입처는 필요한 정보를 놓치지 않고, 안정적인 기사 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이점이 있다. 출입처에서 공급되는 뉴스가 없다면 매일 많은 지면과 뉴스 시간을 채우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할지 모른다. 마감은 출입처 제도를 유지하게 하는 가장 현실적인 요인인 셈이다.


하지만 출입처가 기사를 ‘획일화’ ‘균질화’ 한다는 비판도 있다. 한 출입처에 등록된 기자들은 적게는 수십에서 많게는 수백 명에 이른다. 국회 출입기자는 1000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써내는 기사에서 차별성을 찾기란 쉽지 않다. 같은 사안을 두고 언론사의 정치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라 ‘야마(주제)’만 달라질 뿐이다. 기자들은 출입처 안에서 경쟁하고, 서로 비교·비평한다. 특종도 중요하지만, 낙종을 안 하는 게 더 중요하다. 이는 우리 언론의 ‘속보 우선주의’와 결합하며 ‘뉴스의 질’ 경쟁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KBS가 출입처 문제를 꺼내 든 것도 현 출입처 구조에서는 차별화된 뉴스가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이는 수신료를 받는 공영방송으로서의 ‘존재론적’ 고민과도 연결된다. KBS 취재기자의 95%가 출입처를 갖고 있고, 어떤 사안에 대한 기자들의 관점은 각자의 출입처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다양한 관점의 깊이 있는 해설 보도를 하려면 협업이 필요한데, 출입처별로 쪼개진 업무 분담은 이를 어렵게 한다. 엄경철 국장이 “모든 부서에 ‘주제·이슈’ 중심의 취재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밝힌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엄 국장은 “올 초까지 20~30% 정도는 출입처에서 자유로운 기자를 만들자”고 제안했고, 토론은 계속 진행 중이다. 아직 결론이 난 건 아니지만, 취지에 대한 공감대는 상당 부분 이뤄진 상태다. 지금은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실무적인 논의들이 이뤄지고 있다. 대강의 시나리오는 이렇다. 부서별로 데일리 전담팀과 별도로 이슈팀을 만들어 출입처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발생뉴스 비율을 낮추자는 것이다. 부서별 상황에 맞춰 이슈팀 신설이 어려우면 사안에 따라 TF를 만들어 집중 대응하는 방식 등도 거론되고 있다. 통합뉴스룸 한 부장은 “관급 보도자료를 중계하는 의미 없는 보도나 별도의 ‘취재’가 없는 단순 가십·화제성 보도는 하지 않으려고 한다”면서 “‘우리만의 기사’를 어떻게 보여줄 것이냐가 고민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KBS는 앞서 지난 11월 정치부에 정당 출입을 하지 않는 기자들 4명으로 기획팀을 꾸리고 지난달 10일부터 국회 엉터리 용역 보고서 실태를 집중 조명한 ‘국회 감시 프로젝트K’를 연속 보도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지난달 30일 ‘여성 혐오’ 논리를 집중 분석한 6분짜리 리포트도 기존에 KBS에서 찾아보기 힘든 보도였다는 게 안팎의 평가다.


물론 비슷한 시도가 KBS에만 있었던 건 아니다. 일례로 한겨레 24시팀(사건팀)에서 올 한해 내놓은 ‘대한민국 요양보고서’, ‘한국 청년이 만약 100명이라면’ 같은 기획들은 출입처가 아닌 현장에서 발굴해낼 수 있는 기획기사의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한국일보의 ‘쪽방촌’ 기획 2부작이나, 경향신문의 ‘매일 김용균이 있었다’ 같은 기획도 출입처 밖에서만 나올 수 있는 수작이었다. 하지만 이런 기획들을 뒷받침한 데에는 과거 출입처에서 터득한 경험도 크다. 그래서 당장 젊은 기자들을 출입처에서 배제해선 안 된다는 목소리도 있다. 지난달 9일 출입처 폐지를 주제로 열린 토론회에서 오마이뉴스 출신으로 영화 ‘재심’의 모티브가 된 ‘약촌오거리 살인사건’ 등을 취재한 박상규 ‘셜록’ 기자는 “나는 10년이라는 경험을 가지고 나온 사람이다. 2~3년차 기자가 맨땅에 헤딩한다면 같은 결과를 낼 수 있을까”라며 “급격한 출입처 폐지는 반발을 부르고 개혁이 좌초될 수 있다. 직무 다변화를 통해 개혁을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소영 서울신문 논설실장은 “나 같은 고참 기자들은 이미 네트워크가 있으니까 전화만 돌려도 되지만, 초년병 기자들에게 출입처를 없애는 것은 치명적일 수 있다”고 지적한 뒤 “좋은 기사를 쓰려면 통합적 사고를 해야 하고 그러려면 시간을 줘야 한다. 업무 분담과 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영흠 협성대 초빙교수는 “편집국(보도국) 구성원들이 다변화돼야 한다”고 했다. 박 교수는 “출입처를 갖는 기자도 있고, 출입처가 없거나 광범위한 분야로써 출입처를 갖는 기자도 있었으면 한다. 지금처럼 기자들이 공간을 나누는 방식은 이제 안 맞는 것 같다. 이슈 중심으로 가야 한다”면서 “중요한 것은 저널리즘의 본질에 부합하느냐, 아니냐다. 혁신하는 데 있어서 저널리즘의 본질에 맞으면 다 바꿀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중요한 기준”이라고 말했다.


김고은 기자 nowar@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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