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로 도자기 모으다 창업… 공예품 소개하는 플랫폼 론칭

[기자 그 후] (18) 박세환 아치서울 대표 (전 코리아헤럴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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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판교. 여기서 서울톨게이트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한 고층 오피스텔 꼭대기 층에 들어서자 스타트업 ‘아치서울’의 박세환 대표가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공예품 B2B·B2C 플랫폼을 운영하고 공예 전문 잡지 ‘크라프츠’(KRAFTS)를 발행하는 아치서울은 최근 이곳으로 자리를 옮겨 사업 규모를 키워가고 있다. 사무실과 스튜디오를 소개하던 박 대표는 “판교에서 내로라하는 기업들의 기운을 받는 것 같다”고 웃으며 말했다.


이 청년사업가는 1년 전만 해도 ‘기자’였다. “기자를 천직으로 여겼다”는 그는 2016년 1월 코리아헤럴드에 입사해 꿈에 그리던 기자가 됐다. 그런데 3년차이던 지난해 8월 부모님 몰래 사표를 냈다. 아이러니하게도 온라인부와 사회부에서의 값진 경험이 그에게 “무모한 결정”을 하라고 부추겼다.


“수습 떼고 처음 간 곳이 온라인부서였어요. 온라인 기사를 쓰고 배치하고 트래픽 관리까지 하면서 언론사의 한계와 가능성을 함께 맛봤습니다. 이후 사회부에서 국정농단 사태를 취재하며 만난 제보자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죠.”


그는 한 원로 공예인에게 최순실-차은택으로 이어지는 문화계 관련 제보를 받아 기사화했다. 이를 계기로 젊은 공예인들을 만났고 그들의 목소리를 담아 세상에 알릴 그릇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공산품과 달리 공예제품은 작가의 감성과 장인정신을 품고 있잖아요. 이건 오로지 ‘터치’로만 전달할 수 있어요. 종이의 질감을 통해 전할 수 있는 잡지가 제격이었죠.”


박세환 전 코리아헤럴드 기자는 3년차이던 지난해 회사를 그만두고 공예품을 다루는 스타트업 아치서울을 창업했다. 현재 공예 전문 잡지 ‘크라프츠’를 발행하고 공예품 B2B 플랫폼 ‘아치서울’과 B2C 플랫폼 ‘공방뿌시기’를 운영하고 있다. /아치서울 제공

▲박세환 전 코리아헤럴드 기자는 3년차이던 지난해 회사를 그만두고 공예품을 다루는 스타트업 아치서울을 창업했다. 현재 공예 전문 잡지 ‘크라프츠’를 발행하고 공예품 B2B 플랫폼 ‘아치서울’과 B2C 플랫폼 ‘공방뿌시기’를 운영하고 있다. /아치서울 제공


당시 여자친구였던, 지금은 아내이자 아치서울 공동대표인 최유미씨가 그의 뜻에 공감해 먼저 회사를 관뒀다. 그리고선 2017년 1월 공예 전문 계간지 크라프츠를 창간했다. 1년여 뒤 박 대표도 언론사에서 나와 합류했다. 그저 취미로 도자기를 수집하던 젊은 기자의 삶이 예상치 못한 길로 접어든 것이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크라프츠가 내놓은 성적표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온라인 조회수는 그럭저럭 나왔는데 종이잡지가 잘 팔리지 않았다. 내리막길을 걷는 잡지시장에서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그런데도 박 대표는 굴하지 않았다. 무작정 독자 100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생각지도 못한 답변들이 쏟아졌다. ‘잡지에 예쁜 물건은 많이 소개되는데 사고 싶은 건 하나도 없다’, ‘관심은 가는데 구매할 수가 없다’ 등. 박 대표는 “독자 의견을 듣고 충격받았다. 그 이후 저희가 하고 싶은 대로 하던 방식을 버리고 독자의 관점에서 콘텐츠를 재구성했다”며 “독자 인터뷰가 사업 DNA를 완전히 바꿔놨다”고 말했다.  


아치서울은 크라프츠 콘텐츠를 기반으로 온라인 커머스 시장에도 뛰어들었다. 먼저 지난 5월 공예작가들과 도소매업체·해외바이어를 잇는 B2B 플랫폼 ‘아치서울’을 선보였다. 8월엔 매주 한차례 공방·공예품을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소개하고 소비자에게 직접 물건을 판매하는 B2C 플랫폼 ‘공방뿌시기’를 오픈했다. 콘텐츠 제작자나 플랫폼 운영자가 아니라 독자와 소비자, 공예작가의 니즈를 반영해 만든 비즈니스 모델이다.


두 플랫폼은 공예작가들에겐 판로를 제공하고, 소비자에겐 가치 있는 공예품과 만족감을 주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공방뿌시기에선 20만원짜리 다관세트 30개가 금세 동나는 등 완판행진이 이어지고 있다. 또 아치서울은 공예특화 도시인 이천·청주시, 정부기관, 공예 관련 재단들과 협약을 맺고 여러 사업을 진행하며 영역을 넓혀가는 중이다. 지난달엔 투자 유치에 성공해 주주가 14명이나 생겼다. 창업 이후 처음으로 직원도 채용했다.


“스타트업을 운영해보니 고객은 정말 왕이에요. 고객이 필요한 게 뭔지 파악하고 100% 반영하는 것만이 살길이라는 걸 느껴요. 언론사도 비슷한 상황 아닌가요? 독자를 모르고, 현장에 가지 않고 ‘뇌피셜’로만 움직이면 결코 의미 있는 콘텐츠를 만들 수 없더라고요.”


박 대표의 꿈은 지난해 기자를 그만둘 때와는 사뭇 달라졌다. 여러 사업을 책임지고 공방, 공예제품, 작가들을 찾아 전국 곳곳을 누비면서 어떤 사명감과 책임감이 생겨났다.


“사실 창업 초기만 해도 ‘기자 때려치우고 나갔는데 더 잘 돼야 한다, 떼돈 벌겠다’ 같은 마음이 컸어요.(웃음) 그런데 지금은 사회를 바꾸고 싶어요. 대량생산 공산품 위주의 패러다임을 넘어 창의적인 공예품이 더욱 주목받고 누구나 안정적으로 생산 활동하는 시대가 오길 바랍니다. 공예작가들을 위한 ‘위워크’랄까요. 공예인 발굴, 육성, 글로벌 진출까지 돕는 게 꿈인데, 언젠가 이룰 수 있겠죠?”


김달아 기자 bliss@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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