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식의 반란-마블링의 음모

제268회 이달의 기자상 지역경제보도 / 전주MBC 유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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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주MBC 유룡 기자  
 
“몇 억원이 들더라도 전국방송을 막겠습니다.”
‘육식의 반란-마블링의 음모’가 방송된 지 2주 만에 만난 한우협회 전라북도 지회장이 잔뜩 쉰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농협중앙회와 전국한우협회가 ‘마블링의 음모’ 때문에 긴급회의를 열었고 전국 방송을 제지하는데 협력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다큐 내용이 다 맞는 말이지만 당장 한우 판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줄 수 있는 만큼 중앙 방송사에 5억원 정도 쓰겠다는 것.

마블링 좋은 한우가 몸에도 좋고 한국인의 입맛에도 맞는다는 주장의 다큐와 토론을 추진하면 ‘육식의 반란-마블링의 음모’의 파급 효과를 상쇄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이었다. 실제 한우자조금위원회의 한우 홍보 공세는 새해 들어 더욱 가열됐다. 마블링의 음모는 실제 이런 식으로 우리 사회에서 ‘현재 진행 중’이다.

안타까웠다. 농촌은 지금 거대한 쓰나미 앞에 놓여 있다. 미국 옥수수 가격은 10년 전 톤당 10만원에서 톤당 35만원으로 치솟았는데 축산업계 지도자들의 인식은 변한 것이 없다. 마블링을 많이 만들고 싶어도 이제는 수입 옥수수 값이 너무 비싸 마블링을 만들지 못하는 것이 농촌의 현실이다. 전북 순창에서는 소 50마리를 굶겨 죽인 농민이 있어 화제가 됐다.

고가의 수입 사료 앞에 무너져가는 영세농들이 현실과 한우 생산, 유통이 얼마나 왜곡되어 있는지를 극명히 보여준다. 진실은 진실대로 알리고 기름기가 적은 고기를 생산해 제 가격에 공급하는 것이 한우업계의 유일한 탈출구라는 사실을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육식의 반란-마블링의 음모’는 당초 미국 옥수수업자가 우리 농촌을 좌지우지하는 문제를 다루기 위해 기획됐다. 취재가 진행될수록 오히려 문제는 한국이었다. 농축협과 사료업체들은 지난 20년 동안 값싸게 수입한 사료를 고가에 팔아먹는 재미에 빠져 무분별하게 사육두수를 늘리도록 농민들을 종용했다.

18개월만 키워서 도축해도 되는 한우를 32개월까지 살찌우고 근내지방을 침투시키는 일에 매달리게 했다. 정부의 고급육 정책과 유통업자들의 농간도 한몫했다. 마블링이 가장 많은 소에게 대통령상을 주고 그런 소 한 마리를 7천만원에 사주면서 누가 더 기름진 쇠고기를 만드는지 농민들을 경쟁시켰다. 마블링은 중성지방을 체내에 축적시키는 동물성 지방일 뿐인데 말이다.

다큐와 뉴스가 방송된 이후 전라북도의 쇠고기 시장은 큰 변화를 겪고 있다. 지난 연말 송년회 자리마다 고기를 먹는 사람들이 “이런 것 먹으면 안 된다고 하던데, 몸에 안 좋다던데” 이런 이야기들을 나눴다고 한다. 버섯요리 같이 건강에 좋은 채식음식점이나 기름기 없는 2등급, 3등급 고기를 쓰는 전골 음식점 매출이 10% 이상 뛰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소비자가 변하면 유통업자가 변한다. 이어 생산업자도 변하고 농촌 경제도 정상화의 길을 걸을 것이다. 공연히 몸에 해로운 기름을 비싸게 사먹고 병원비와 약제비로 엄청난 돈을 낭비하지 않는 세상, 애꿎은 사람들이 성인병에 걸려 몸져눕지 않는 대한민국을 만드는 것이 진정 ‘육식의 반란, 마블링의 음모’가 희망하는 지속 가능한 미래이다. 전주MBC 유룡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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