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이 시작되던 1월 박재형은 대구MBC 사건팀 기자였다. 경찰서를 제집 안방처럼 드나들고, 사건·사고가 터지면 밥 먹다가도 바로 현장으로 뛰쳐나가던 시절이었다. 몇 줄짜리 단신이라도 날마다 뉴스를 만들어야 하는, 하루살이 신세…. 그런 그에게 정치부 선배 오태동이 던져준 제보는 골칫거리였다. 사건·사고도 많고, 시키는 아이템 처리도 버거운 터라 제보 취재는 뒤로 밀렸다. 솔직히 복잡한 사건 같아 엮이기 싫었다고 할까. 그런 불편한 속내도 모르고 오태동은 볼 때마다 취재하고 있냐고 물었다. 거의 추궁 수준이라 보일라치면 피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화장실에서 나오다 마주치고 말았다. “야 박재형이! 너 아직도 전화 안했냐? 하기 싫냐?” 무섭고 와일드한 성격이라 평소에도 주눅이 들었는데, 폭발하니 납작 엎드려야 했다. ‘바로 전화하겠습니다’라는 말이 목구멍 안으로 기어들고 있었다. 박재형은 제보자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 만날 수 있는지 물었다. 마침 숙직을 서는 날이었다. 밤 9시쯤, 50대 중년 남성이 보도국에 들어섰다. 겨울 코트 차림의 그는 자신의 이름을 권순모라고 밝혔다. 보도국 한가운데 놓인 소파에 마주 앉아 이야기를 들었다. 권순모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현 국립과학수사연구원)가 당좌수표의 인감도장을 잘못 감정했고 경찰과 검찰, 법원이 이를 핵심 증거로 채택해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며 눈물을 훔쳤다. 얼마나 억울하면 눈물을 보일까 생각했지만, 박재형은 반신반의했다. 국과수가 감정을 잘못했다고? 국과수는 과학 수사의 성역 아닌가? 권순모를 보내고 나서도 의문이 가시지 않았다. 박재형은 권순모가 건넨 수백 장의 서류를 몇 장 넘기다가 덮었다.
물류 회사를 운영하는 권순모는 수표 위조 사건에 휘말려 한 달 남짓 옥살이를 했다. 그는 2003년 당좌수표 200만원을 선배인 백모에게 빌려줬는데, 백모가 당좌수표 금액을 1700만원으로 위조해 사용한 것을 알고 경찰에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은 거꾸로 그를 무고죄로 구속했다. 수표의 금액 변경을 사전에 승낙하고 도장을 건넸으면서 백모가 위조했다고 거짓말을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수표 금액을 1700만원으로 수정하면서 찍은 도장과 발행인란에 찍힌 도장이 같다는 국과수의 감정 결과가 결정적이었다. 구치소에 33일 동안 수감된 그는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2008년 초 풀려났다.
◇두 경찰서 정반대 수사 결과, 법원 판결도 달라
권순모에게 연락이 온 것은 일주일쯤 지난 후였다. 다른 취재에 허덕이느라 자료를 거의 살펴보지 못했지만 당좌수표, 국과수 도장 감정은 뇌리에 박혀 있었다. 대구 수성구 범어네거리 인근 카페는 한산했다. “바쁘신데 뵙자고 했네요.” “아닙니다.” “지난 만남에서 중요한 말을 빼먹어서요.” 권순모는 누런 봉투에서 뭔가를 꺼내 내밀었다. 판결문이었다. 손가락으로 판결문을 짚어가며 놀라운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집행유예로 나온 그는 사설감정원에 도장 위조 여부를 의뢰해 도장이 위조됐다는 감정 결과를 받고 경찰에 재수사를 요청했다. 사설감정원의 감정 결과를 받아들여 재수사에 들어간 경찰은 도장을 위조했다는 백모의 자백을 받아냈다. 결국 백모는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두 달 전 판결이었다. 한 사건을 두고 두 경찰서가 정반대의 수사 결과를 냈고, 법원 판결도 다르게 나온 것이다. 그는 억울함을 풀고 싶어 재심을 청구할 계획이라고 했다. 박재형은 자신이 얼마나 안일하게 접근했는지 부끄러워 얼굴을 들지 못했다.
취재는 초동수사를 한 대구 동부경찰서와 재수사를 한 대구 수성경찰서, 국과수 감정 오류 근거를 확보하는 쪽으로 모아졌다. 수소문 끝에 당좌수표 위조 사건을 수사한 경찰관을 만났지만 오래 전 사건이라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다. 사건 담당 검사는 만나지도 못했다. 재수사한 경찰은 보도하지 말아 달라며 사정사정했다. 박재형이 뭘 파고든다는 소문이 돌았던지 아는 경찰관들이 연락을 해왔다. “박 기자! 그거 있잖아. 국과수가 잘못했겠어?” “확인 안 해봤어요? 권모 그 사람, 사기꾼이라던데….” 박재형은 사실 관계를 계속 확인하자고 주문을 걸었지만, 불안감이 스멀스멀 밀려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는 친형처럼 따른 카메라 기자 이동삼에게 조언을 구했다. “형, 이 분에 대한 얘기가 좀 많은데 취재를 계속하는 게 맞겠습니까?” 이동삼은 사건만 보라고 조언했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다잡았다.
◇“조각하는 사람이 위조…보통 기술로는 안 돼”
국과수 감정 오류를 밝혀내는 취재는 사설감정원을 돌아다니는 것에서 시작했다. 박재형은 국과수 감정 결과를 들고 대구 시내 여러 곳의 사설감정소를 찾았다. 대부분 감정이 잘못됐다는 뉘앙스로 얘기하면서도 공식적인 코멘트는 거부했다. 박재형은 권순모에게 도움을 청해 현치덕 감정사를 만났다. 현치덕은 타 지역 법원에서도 감정을 의뢰할 만큼 사설 감정 분야에서 유명한 인물이었다. 그는 돋보기로 인감도장 2개의 모습을 유심히 살펴보더니 국과수가 잘못했다고 말했다. 당좌수표의 발행인란에 찍힌 도장과 금액란에 찍힌 도장의 인획, 모양이 다르다고 조목조목 감정했다.
“국과수 감정을 어떻게 보십니까?”
“잘못했지 뭐.”
“보통 국과수라면….”
“선입관이 있어서 그래요. 국과수는 최고라는 고정관념이 있어서 그래요. 조각하는 사람이 아주 가깝게 위조한 겁니다. 보통 기술로는 이거 잘 안됩니다.”
박재형은 위조라는 말에 정신이 어찔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왔는데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밖은 겨울바람이 찬 1월 중순이었지만 몸에선 사우나 한증막처럼 뜨거운 열기가 분출하고 있었다. 이제는 국과수와의 싸움이었다. 다른 사설감정원에 감정 결과를 자문하고 국과수에 직접 연락을 취했다. 연결은 쉽지 않았다. 그는 국과수에 취재 협조를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
국과수 답변을 기다리면서 대구MBC는 법원 판결을 바탕으로 팩트를 보도했다. 당좌수표 위조 사건을 두고 두 경찰서가 완전히 다른 수사 결과를 냈고, 법원에서도 상반된 판결이 나왔다는 내용이었다. 이 보도가 나가고 며칠 뒤 국과수는 자신들의 감정 결과가 이번 사건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감정인 2명 가운데 주 감정인이 퇴직했다는 이유로 정확한 사실 관계를 파악하기 어렵다고 했다. 국과수가 사실 확인 요청을 거부한 것이다.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었다. 공문을 근거로 보도하기로 최종 결정됐다. 복잡하게 꼬인 사건이라 기사 작성이 더뎠다. 박재형은 ‘국과수가 움직이도록 제대로 보도해야 한다’, ‘한 치의 오차가 있어선 안 된다’를 주문처럼 반복하며 기사를 마감했다. 데스크들도 기사를 다듬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드디어 2009년 2월6일 첫 보도가 나왔다. 국과수가 도장 감정을 잘못해 50대 사업가가 억울하게 옥살이를 했다는 내용이었다. 방송 이후 전국에 이 사연을 알리면 좋겠다는 의견이 나와 서울 MBC와 연락을 주고받고, 일주일만인 2월13일 서울 뉴스데스크를 통해 전국에 방송됐다.
◇“내일 대구MBC 방문하겠습니다”
어찌된 일인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너무나 조용했다. 이쯤 되면 연락이 오거나 국과수에서 액션이 있어야 하는데, 뭐가 잘못된 걸까. 처음엔 뭉개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무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계속해야겠다는 오기가 뻗쳤다. 방송 이후 국과수 문서 감정 오류와 관련한 제보가 잇따랐다. 박재형은 일부 사례를 취재해 추가로 보도했다. 그리고 한 사나흘이 흘렀을까. 선배랑 취재할 내용을 논의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국과수 문서영상과장입니다. 박재형 기자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보도 잘 봤습니다. 이번 사건에 대해 할 얘기가 있습니다. 내일 대구MBC를 방문하겠습니다.”
“왜요?”
문서영상과장은 정확한 방문 목적을 밝히지 않았다. “뭐 때문에 내려오는지 이유는 알고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가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박재형은 보도국장과 취재부장에게 국과수 방문 사실을 보고했다. 보도국장이 왜 오냐고 물었지만, 그도 모르니 답해줄 말이 없었고 타 부서 부장이 니 잘못한 거 없냐고 했을 땐 ‘판결문 기반으로 보도했고 인터뷰도 하지 않았습니까. 잘못되면 책임지겠습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풀이 죽었다. 감정 오류를 인정하겠다는 건지, 보도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는 건지 박재형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전화로 얘기하면 될 일을 왜 대구까지 내려온다는 걸까? 찜찜한 기분은 퇴근하고도 가시질 않았다. 그는 방송을 다시 돌려보고 취재 메모를 하나하나 살피고 경우의 수를 따지며 대응 전략을 짰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도무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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