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한다던 언론, '미모의 호위무사' 등 선정적 보도 쏟아내

유병언 일가·세월호 언론 보도 분석

  • 페이스북
  • 트위치


   
 
  ▲ 세월호 참사 발생 100일째인 24일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행진 중인 세월호 가족대책위 등 유가족 및 시민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 도착하고 있다. (뉴시스)  
 
유병언·유대균 부자 연일 톱뉴스 부각
세월호 특별법 여야 정쟁으로 물타기
지나친 개인사 초점…진실규명 외면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시신이 발견된 지난 22일과 장남 유대균씨가 검거된 25일을 기점으로 언론의 모든 이슈는 유 전 회장 일가에 잠식됐다. 본보가 지난 23일부터 28일까지 조선·중앙·동아·한겨레·경향·한국 지면을 분석한 결과 유 전 회장 일가와 관련된 기사 건수는 세월호 참사 전반에 대한 기사 건수에 비해 월등히 많았다. 지상파 방송의 경우 세월호 참사 100일인 24일을 제외한 5~6일간 내리 유 전 회장과 장남 유대균씨 등 관련 인물들이 톱뉴스를 장식했다. 유병언 일가로 모아진 보도행태는 결국 세월호 참사의 근본 원인과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유가족들의 목소리를 외면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유병언 일가 기사 앞면 배치
유 전 회장 시신발견 보도가 본격화된 지난 23일부터 28일까지 닷새간 신문들은 유 전 회장 일가에 대한 의혹을 파헤치는 기사를 종합면에 배치했다. 24일에는 세월호 참사 100일을 맞아 대부분의 언론이 기획기사를 마련했다. 조선 ‘그들의 희생, 안전의식 깨웠다’, 중앙 ‘세월호 100일의 기록’ 등이 보도됐으며 한겨레와 경향 등은 진도 팽목항에 남은 실종자 가족들의 목소리를 전했다. 그러나 하루 뒤인 25일에는 분위기가 반전됐다. 24일 저녁 서울광장에서 열린 추모음악회에서 세월호 유가족과 시민(주최 추산 2만여명·경찰 추산 7000여명)들이 특별법 제정에 목소리를 높였지만 1면을 통해 소식을 전한 것은 한겨레·경향에 불과했다. 조선·중앙·동아는 전날 새 경제팀이 발표한 경기부양책을 머리기사로 다뤘다.



   
 
   
 
세월호 특별법에 대해 보수와 진보 언론은 시각차를 보였다. 보수언론은 세월호 특별법이 우선 처리되지 않으면 다른 법안의 처리를 미루겠다는 야당의 입장을 정면으로 비판했다(동아 28일 사설 ‘세월호특별법 이유로 국회 발목 잡는 ‘볼모정치’ 안 된다’). 반면 진보언론은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유가족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며 ‘국가개조 의지’를 보여줄 것을 촉구했다(경향 26일 사설 ‘박 대통령, ‘세월호특별법’ 약속 지켜라’).

언론의 추한 민낯은 유대균씨 검거 이후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조선 ‘체포 때 ‘무표정 꼿꼿’ 박수경, 원래 눈물 많은 여린 성격이었다?’(28일 3면), 중앙 ‘유대균, 치킨 배달시켜 먹어’(28일 2면), 동아 ‘꼿꼿한 ‘미모의 호위무사’’·‘유병언 비밀공간에 ‘소변 페트병’’(26일 3면) 등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보도가 뒤이었다.

배정근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시간이 흐르며 뉴스의 초점이 옮겨가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세월호 참사로 드러난 정부의 수많은 문제점에 대한 관심이 줄어드는 것이 문제”라며 “사고의 정확한 원인을 규명해야 한다는 것은 유가족들의 정당한 요구이고 국민들의 합의에 가까운 것인데 언론의 적극적인 대응이 부족했다. 세월호 참사로 촉발된 언론의 자성과 다짐이 얼마나 지켜지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지상파 톱뉴스 유씨 일가 일변도
유 전 회장의 사체가 발견된 22일부터 일주일간 지상파 3사 방송사의 톱뉴스는 유씨 일가 일변도였다. 유 전 회장이 변사체로 발견된 22일에는 가장 많은 뉴스가 쏟아졌다. MBC는 19개로 뉴스데스크의 3분의 2를 유 전 회장에 할애했다. KBS는 13개, SBS는 11개였다. 방송사들은 사망 원인을 둘러싼 의문, 유류품 및 도피경로와 자금, 검찰·경찰의 수사 공조 부실, 재산 환수 차질 문제를 거론했고, 이중 MBC는 세월호 침몰 사고의 직접적 원인을 제공한 당사자로 수사에 심각한 차질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유대균씨가 검거된 25일부터 4일간 쏠림양상은 여전했다. SBS 27개, KBS 25개, MBC 24개였다. 하지만 책임 문제나 대책 관련보다 오피스텔 은둔 생활이나 경호원 박수경씨 등 도피 조력자를 더 조명했다. 26일 MBC는 ‘유대균 19㎡ 좁은 공간서 석 달간 은신…체중 20kg 줄었다’‘유 회장·대균씨 모두 여신도 도움 받아 도피…이유는?’, KBS는 ‘유대균·박수경 외부 접촉 차단한 채 은둔 생활’‘신엄마 딸 박수경, 유대균 도피 왜 도왔나’, SBS는 ‘6평 방에서 석달 은신…감옥 같던 오피스텔’‘사라진 수배 차량 벤틀리…또다른 조력자 있나’ 등을 다뤘다.

세월호 특별법 등 후속 대책 보도는 눈에 띄지 않았다. 특히 MBC는 특별법 관련 내용이 전무했다. 세월호 참사 100일인 24일에도 KBS·SBS와 달리 정부의 경기부양 대책을 톱으로 3개 연속 보도했다. 이날 세월호 관련 보도는 4개로 KBS(12개)와 SBS(8개)에 훨씬 못 미쳤으며, 수사·처벌 등 대책이나 책임 문제도 다루지 않았다.

이승선 충남대 교수는 “언론이 사건의 구조적인 원인과 과정, 해결 등 핵심 의제를 다루지 않고 개인적인 사람에 초점을 맞추면서 선정적 보도로 인격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진아 기자 saintsei@journalist.or.kr
        김희영 기자 hykim@journalist.or.kr
강진아·김희영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배너

많이 읽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