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알 권리'인가 '피의사실 공표죄'인가

"국민 알권리 충족되면 위법성 조각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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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자에 대한 인격권 침해 우려” 지적도
이석기 의원 녹취록 공개 등 언론 보도 논란


 



   
 
  ▲ 지난달 30일 한국일보가 지난 5월 이석기 의원이 참석한 내란음모 RO 회합 녹취록을 단독 입수했다며 보도한 1면. (한국일보)  
 

내란음모죄 혐의를 받고 있는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과 관련한 녹취록이 지난달 언론에 공개되면서 ‘피의사실 공표죄’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현재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정원이 증거로 내세운 녹취록이 공판 전 언론에 공표되면서 여론 재판이 이뤄지고 있다는 주장과 공인인 국회의원에 대한 녹취록 공개는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한 보도였다는 주장이 맞선다.


지난달 30일 한국일보를 비롯한 조선, 세계 등은 녹취록 요약본을 지면에 게재했다. 지난 2일 한국일보는 “녹취록의 진위 및 내란음모 혐의 적용 타당성을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며 “독자들의 객관적인 판단 근거를 제공하기 위해 전문 공개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통합진보당은 일방적인 ‘여론 재판’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통합진보당 10명의 당원은 지난 3일 국정원과 해당 언론사 및 기자를 상대로 피의사실 공표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이들은 “국정원이 피의사실과 수사 자료를 유출했고 언론사는 정보를 기사화해 당사자의 기본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한 언론보도와 피의사실 공표로 인한 ‘피의자 인권 보호’ 사이에서의 줄타기 논란은 계속돼 왔다. 언론들은 국민 관심사가 집중되는 사안일수록 보도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알 권리를 위한 보도는 당연한 의무이며, 피의사실 공표에 따른 보도 제한이 발생한다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노명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하고 절차적 정당성을 제시한다면 위법성 조각 사유가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한 종합일간지 사회부 기자도 “수사기관이 정보를 제공하는 것보다 기자들이 여러 경위로 듣고 쓰는 경우가 많은데 피의사실 공표죄를 제기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최소한의 기준이나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언론에서 기소되지 않은 피의자를 범죄자인 양 다루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언론 보도로 개인의 명예 및 사생활이 침해될 수 있고, 수사 및 재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해 박범계 의원실 주최 토론회에서 “수사 결과 또는 공소사실에 대한 증거물 등이 보도된다면 피의자의 인격권 침해는 물론 수사기관의 심증이 법관에게 연속될 위험이 있다”고 밝혔다.


특히 검찰 등 수사기관이 특정 목적에서 언론에 정보를 제공할 경우 문제가 된다. 수사기관의 선택적 정보를 언론이 ‘받아쓰기’하면서 자칫 의도적인 여론몰이가 될 수 있다는 우려다. 이석기 의원 녹취록 역시 국정원 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권영철 CBS 선임기자는 “특종 및 단독 경쟁으로 인해 언론이 수사기관의 내용을 그대로 받아쓰는 것은 자제해야한다”며 “사실 보도는 언론의 사명이지만 단정적인 보도는 위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에게 명품시계를 받아 논두렁에 버렸다는 오보가 대표적 사례다. 이후 검찰이 2010년 수사공보 준칙을 마련했지만 여전히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피의사실공표죄는 1953년 형법 제정 당시 태생부터 정치적 요인이 깊기 때문에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지금까지도 진영논리에 따른 고무줄 잣대로 정치적 사건에서 주로 이용되며, 사생활 침해 및 인권 논리를 앞세워 공직자들의 면죄부로 활용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법학 박사인 심석태 SBS 국제부 부장은 “지금은 피의사실 공표와 관련해 충분히 반박할 수 있는 장치가 있다”며 “이로 인해 한국사회에서 득을 보는 사람이 실질적으로 없고, 공익 역시 증진되지 않기 때문에 폐지돼야 한다”고 말했다. 심 부장은 “이번 국정원 관련 두 사건만 봐도 이중 기준이 적용되는 것이 문제”라며 “대부분 피의사실 공표 문제를 정치적인 공격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언론 자유와 피의사실 보호의 균형을 찾아야 한다는 점은 숙제로 남는다. 워터게이트 사건 등 권력을 가진 수사기관이 사실을 은폐할 경우 이를 감시ㆍ견제할 수 있는 역할은 언론이지만 동시에 과열된 보도 경쟁은 문제를 낳기 때문이다. 하태훈 교수는 “언론보도의 자유와 무죄추정의 원칙 간 긴장관계를 어떻게 해결하며, 언론보도 자유와 공정한 재판의 원칙을 어떻게 조화시킬 지는 아주 중요한 문제”라고 밝혔다. 박주민 변호사는 “국민의 알 권리도 중요하지만 도에 지나친 보도는 문제”라며 “피의사실 공표죄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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