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네르바신드롬은 언론이 만들었다

언론다시보기 / 박경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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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육사의 시 ‘광야’에 나오는 시구들 중에서 절창중의 절창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초인이란 독일의 철학자 ‘니체’가 노래하는 초인과 다르지 않다.

니체는 ‘인간이 세계를 이해한 이후부터 신(神)은 이성 밖으로 밀려났지만, 정작 신을 죽인 이성이 신을 대신해서 혼탁한 세상을 구원 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신의 자리에 ‘초인’을 상정했다. 인간의 보편적 이성을 넘어서 세상에 새로운 신념과 희망을 던져주고, 타락한 인간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그런 존재를 가리켜 ‘초인’이라 칭한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그렇게 기다리던 초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어쩌면 초인은 ‘미륵’처럼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음으로서 ‘초인’ 일 수 있는지도 모른다. 대신 그럴수록 초인에 대한 갈망은 더욱 간절해졌다. 세상이 어수선할 때, 평화로운 들판이 전쟁과 살육의 피로 얼룩 질 때, 기아로 쓰러진 엄마 곁에서 아이가 똥을 주워 먹을 때 마다 사람들은 더욱 애타게 초인을 기다렸지만, 니체 사후 160년, 육사가 광야에서 초인을 노래한지 80년이 지난 지금도 초인은 오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영웅을 갈망하는 사회가 되었다. 일제치하의 고통을 디디고 일어선 분열과 동족상잔의 비극, 그리고 이어진 경제개발의 이면에 자리한 분열과 갈등, 이념대립, 전직 대통령과 소위 나라의 지도자들이 벌인 행각, 경제 엘리트들의 후안무치, IMF, 그리고 지금의 경제위기에 이르기까지 단 한 번도 마음 놓고 쉬어보지 못했다. 늘 무엇인가 위태로운 상황에서 토끼 귀를 세우고 살아가야 하는 보통사람의 고단함이 한계에 이른 탓이다. 초인과 영웅은 다르지만, 영웅의 얼굴에서 초인의 아우라(Aura:예술 작품에서 예술가가 자신의 혼을 불어 넣어 만든 작품들에서 느껴지는 고고한 분위기를 가리키는 말)를 찾으려는 것이다.

영웅이 없는 사회는 허전하고 초인을 기다리는 사회는 슬프다. 인문이나 과학 분야에서 노벨상 하나 탄생시키지 못한 아쉬움은 황우석이라는 대중의 영웅을 탄생시켰지만 결과는 좋지 않게 끝났다. 할리우드에 필적하는 영화감독을 만들기 위해 심형래에 열광했지만 그 역시 영웅이 되기에는 힘겨웠다.

그래도 우리는 끊임없이 영웅을 찾아 나섰다. 그 과정에서 스포츠 스타들이 영웅으로 떠올랐다. 김연아, 김태환, 장미란 등이 그들이다. 하지만 스포츠 영웅에게 초인의 아우라를 찾기 쉽지 않다. 초인은 스스로가 영웅이면서 대중 속에서 대중을 이끌고 선도하는 존재여야 한다. 영웅은 열광 할 뿐 따를 수는 없는 것이다. 그 결과 대중은 끊임없이 새로운 영웅을 혹은 초인을 만들고 싶어 하고, 언론은 충실하게 그에 복무했다.

그것이 슬픈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미네르바 선풍도 마찬가지다. 그가 어떤 역량을 가졌던, 그의 직업이 무엇이었건 그것은 조금도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지금 미네르바는 대중이 ‘요청하는’ 부인할 수 없는 영웅이다. 그리고 대중은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그가 초인이라면 내쳐 달릴 것이고 아니라면 그리 머지않아 스스로 주저앉았을 것이다. 그것이 대중지성이다.

하지만 미쳐 대중이 달리기도 전에 먼저 그를 등에 업고 달린 쪽은 언론이었다. 언론은 대중사이에서 떠오르는 그를 지켜보려 들지 않고 판단하려 들었다. 그를 전면에 등장시켜 말안장에 태운다음 채찍으로 말의 엉덩이를 후려갈긴 것이다.

결국 말은 너무 빠르게 달려 나갔고, 달리는 말의 질주가 불편한 사람들은 그 앞에 올가미를 던졌다. 결국 ‘미네르바’는 가능성을 담은 대리석이었지만, ‘미네르바 신드롬’은 언론이 만들어 낸 키치(Kitsch: 가짜, 사이비)였던 것이다. 즉 대중이 미네르바에 대해서 스스로 판단 할 소중한 기회와 시간을 언론이 빼앗고 만 셈이 된 것이다.

우리 스스로 냉정하게 물어보자. 진짜 그 말을 내쳐 달리게 한 사람은 누구였던가? 앞으로도 이런 일은 끊임없이 반복 될 것이다. 대중이 기다리는 초인이 정녕 존재 할 것이라고 믿는가. 만약 그렇다면 당신은 파시스트다.


박경철 안동 신세계병원장 webmaster@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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