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걸핏하면 '법적 대응'
언론중재위 올해 3건에 1건꼴 손해배상 청구
비판 보도 위축 목적…기자 심리적 부담 커
김성후 기자
kshoo@journalist.or.kr
2007.11.27 11:26:54
최근 언론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이 잇따르고 있다. 잘못된 보도로 인한 피해에 대해 금전보상을 받으려는 경향이 뚜렷해지면서 언론소비자들의 법적 대응이 폭발적으로 커지고 있는데 따른 것이다.
그러나 거액의 손해배상을 청구해 정당한 취재활동을 위축시키는 경우도 왕왕 있다. 특히 정치권의 경우 나중에 취하하더라도 일단 소송부터 걸거나 사안이 발생하면 손해배상 청구 등의 강력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으름장을 놓기도 한다.
정치권 일단 소송부터, 손해배상 으름장 ◇
손해배상 청구 폭발적 증가 = 언론중재위원회에 따르면 2007년 10월말 현재 언론중재위에 신청한 손해배상 청구건수는 3백5건, 전체 조정 신청건수(9백4건)의 33.7%를 차지했다. 중복신청을 감안하더라도 3건에 1건꼴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셈이다.
2005년 7월 언론보도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하도록 언론중재법이 개정된 이후 손해배상 청구신청은 눈에 띄게 두드러졌다. 그해 1백41건이던 손해배상 청구건수는 지난해 3백18건으로 늘어났다. 언론중재위원회를 거치지 않고 바로 법원으로 가는 경우를 합하면 그 수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청구건수가 늘어난 만큼 청구액도 천문학적이다. 적게는 1백만원에서 많게는 수십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경우도 생겨났다. 소액 사건은 대개 중재위를 통해 해결하지만 고액 사건은 법원에 직접 소를 제기한다. 최근만 해도 신정아씨가 문화일보를 상대로 10억원(11월8일), 한나라당이 한겨레를 상대로 낸 10억원(11월16일), 노현정·정대선씨가 아시아투데이를 상대로 5억원(11월21일) 등 웬만하면 억대가 넘는다.
언론중재위 조남태 홍보팀장은 “정정 및 반론보도를 받기 위한 도구적 성격으로 병행 신청하면서 손해배상 청구 건수가 늘어나고 있다”면서 “개인의 권리의식이 향상하면서 예전 같으면 그냥 넘겼을 사안도 손배청구를 하는 경향이 많아진 것도 하나의 원인”이라고 말했다.
손해배상 청구건수 3백18건, 왠만하면 억대 소송
정치권, 언론 재갈물리기用으로 악용 ◇
“일단 소송부터 걸고 보자” = 언론의 오보로 인해 재산상 손해를 입거나 인격권 침해 등을 당했을 때 언론사에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은 국민으로서 당연한 권리다. 그러나 비판적 보도를 위축시키기 위해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악용하는 사례도 적잖다.
지난 8월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BBK의 실소유주는 이명박 후보’라는 김경준씨 인터뷰 내용을 보도한 한겨레를 상대로 50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한데 이어 지난 16일에 또 10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한나라당이 거액의 소송을 통해 대선후보 검증을 위축시키려는 ‘신종 언론탄압’을 하고 있다는 비판을 제기하기도 했다.
후속 보도를 차단하기 위해 손해배상 청구 카드를 꺼내기도 한다. 지난 22일 MBC ‘손석희의 시선집중’이 BBK 사건의 핵심인물인 김경준씨의 누나 에리카 김을 인터뷰한 것과 관련해 한나라당 이방호 사무총장은 다음날 “이런 사태가 계속 발생하면 방송제작자, 방송사, 방송인에 대해서 손해배상 청구 등의 강력한 조치를 하겠다”고 경고했다.
기자들이 소송에 연루되면 여러모로 위축된다. 민사소송의 경우 패소하면 회사에 크나큰 누를 끼친다는 심리적 부담감에 기자들은 괴로워한다. 억대 소송에 연루돼 재판이 진행 중인 중앙일간지 한 기자는 “소송을 당하면 소송 액수가 꿈에 나타날 정도로 심적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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