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정태인 전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 |
|
|
군부독재시대도 아닌 대명천지에 국민의 알 권리가 이렇게 철저하게 외면당한 적이 또 있을까? 그것도 성경의 창세기 처럼, 이 일로 처절한 고통을 겪을 우리 아이들의 이름, 그리고 그 아이들과 또 그 아이들의 이름을 줄줄이 기록해야 할지도 모를 그런 일에 이렇게 침묵할 수 있을까?
물론 일차적으로 그것은 정부의 잘못이다. 딱 “관세 좀 낮춰서 수출 좀 늘리자는 것” 정도로 국민이 인식할 정도로, 간장 종지 만큼의 정보만 제공한 정부의 탓이다. 그러나 과연 일선의 기자나 피디들은 정보에 허기진 국민들에게 따끈한 밥 한 그릇의 정보를 전달하려 얼마나 노력했는가?
다른 얘기가 아니다. 한번 체결하면 어쩌면 한 세기 이상 영향을 미칠 한미 FTA에 관한 얘기다. 단순히 대한민국 ‘국경 위에서 관세를 얼마나 내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국경 안의 법과 제도와 관행을 모두 바꿔’ 우리 경제사회체제를 송두리째 변화시키고 그예 주권과 민주주의마저 위협할, 일대 사건에 관한 얘기다.
나는 이런 면에서 프레시안에 깊이 감사한다. 침묵의 땅에서 진실의 싹을 틔워 낸 이주명, 노주희 두 기자의 땀방울에 눈물이 날 지경이다. 또한 서울경제의 손철 기자는, 툭하면 회사 탓만 하는 일반 기자들에게 한 사람의 노력이 얼마나 소중한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를 보여 주었다. 거의 순전히 개인의 노력으로 이뤄낸 성취로 말하자면 KBS 이강택 피디를 빼놓을 수 없다. 정부가 멕시코의 수출과 외국인 직접투자의 급증을 끄집어 내어, 미국과의 FTA를 일방적으로 선전할 때 그는 이역만리를 직접 거너가 그 이면의 참상을 국민들이 직접 눈으로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박순빈, 송창석, 박주희 등 한겨레 취재팀은 조직이 기획을 가지고 움직일 때 진실의 길이 비로소 열린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특히 박순빈기자는 양극화 시리즈에 이어 이번에도 외국의 사례부터 천착한 후 한국의 대안을 제시하는 경제 쪽 심층보도의 패턴을 만들어냈다.
11일 총파업을 계획하고 있는 언론노조의 노력 때문일까. 이제 방송이 깨어나고 있다. MBC PD수첩팀은 4일 한미 FTA의 졸속성과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을 ‘폭로’할 예정이고 KBS 스페셜팀은 또 한번 한미 FTA의 위험성을 조목 조목 짚을 것이다. 그간 단편적 보도로 네티즌의 기대를 저버렸던 오마이뉴스도 기획 시리즈를 준비한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종이 신문은 여전히 정부의 보도 자료를 요약하고 찬반 양쪽의 얘기를 병렬할 뿐이다. 그저 기계적 중립성을 지키는 것만으로 언론의 사명을 다 했다고 치부하는 것일까. 차라리 청와대 브리핑, ‘양극화팀’의 몸짓이 눈물겹다. 미국이라는 사회에서 벌어진 일, 미국식 시장만능주의가 어떤 결과를 낳는지 집요하게 추적하고 있으니까…. 그들은 바로 옆자리에서 미국 찬양으로 지면을 물들이는 ‘FTA팀’과 어떻게 밥을 같이 먹을까? ‘청와대의 정신분열적 증상’을 통렬하게 지적하여 고쳐 줄 언론은 어디에 있는가?
정태인 전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의 전체기사 보기
Copyright @2004 한국기자협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