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정보기술(IT) 분야에서 가장 뜨거웠던 관심사는 한국식 인공지능(AI)인 K-AI, 즉 ‘독자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이다. 해외 기술에 의존하지 않고 우리 기술로 AI를 만들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보급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K-AI 계획이다. 이에 따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해 지원한 15개팀 가운데 두 번의 심사 과정을 거쳐 네이버, 업스테이지, LG, NC AI, SK텔레콤 5개 지원팀을 가렸고, 다시 업스테이지, LG, SK텔레콤 3개팀을 올해 초 추렸다. 여기에 추가 선발 1개팀을 더해 총 4개팀 중에서 내년까지 K-AI를 개발할 최종 2개팀을 더 뽑을 예정이다. 최종 선정된 2개팀은 AI 개발에 필요한 고가의 AI 반도체와 데이터 등을 정부로부터 지원받는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심사 기준과 선발 방식을 놓고 잡음이 일고 있다. 가장 말이 많은 것은 독자 기술의 기준이다. 해외 AI 기술의 사용을 완전 배제하기 힘든 상황에서 어디까지 허용할지 의견이 분분하다. 정부도 허용 범위에 대해 명확한 지침이 없다보니 일부 업체들 사이에 해외 AI 기술을 과하게 이용해 독자 AI가 맞냐는 공방이 치열하게 벌어졌다.
그 바람에 선발 과정에도 문제가 생겼다. 당초 1개팀만 탈락시켜 4개팀이 경합을 벌이도록 할 예정이었으나 독자 기술 논란으로 2개팀이 제외됐다. 정부는 할 수 없이 패자부활전에 해당하는 추가 지원을 받아 1개팀을 더 선발하겠다고 절차를 바꿔 선정 방식에 문제를 드러냈다.
이렇게 되면서 K-AI 개발이 과연 누구에게 도움이 되는지 실익 논란까지 불거지고 있다. K-AI를 개발하면 기술을 공개해야 하는데 과연 선발업체들이 경쟁자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기술을 공개할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치열한 산업계의 경쟁 구도를 생각하면 LG가 개발한 기술을 삼성이, SK텔레콤 기술을 KT가 사용할지도 의문이다. 이런 문제 때문에 이번 선발 과정에서 일부 업체는 갖고 있는 최고 기술보다 한 등급 아래의 기술을 공개했다는 말이 돌았다. 물론 해외 기술 배제 등 선발 조건 등을 감안해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그것이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
국민들도 ‘GPT’나 ‘제미나이’ 등 지금 사용하는 AI보다 새로 만드는 K-AI의 성능이 월등하게 좋아야 사용할 것이다. 기존 AI와 성능이 비슷하거나 오히려 성능이 떨어지면 굳이 새로운 AI로 갈아탈 이유가 없다.
따라서 K-AI로 최종 선정돼도 이름을 알리는 브랜드 효과에 그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것도 신생기업(스타트업)에게는 도움이 되지만 대기업들은 의미 없다. 그렇다 보니 이번 선발 과정에 지원한 일부 기업들은 일부러 탈락하려고 참여한 것 아니냐는 웃지 못할 이야기까지 나온다. 정부 눈치를 보며 참여했지만 굳이 선정의 필요성이 없어서 열과 성을 다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더불어 개발자들 사이에서는 언제부터 기술 개발이 ‘슈퍼스타K’ 같은 대국민 오디션이 됐냐는 자조적인 소리가 나온다. 기술 개발까지 1등부터 꼴찌까지 줄을 세울 필요가 있냐는 것이다. 1등이 아니어도 우수한 기술인데 마치 뒤떨어진 기술처럼 낙인 찍히면 시장은 물론이고 자칫 잘못하면 개발에 참여한 사람들이 설자리를 잃게 된다. 국민의 혈세를 들인 K-AI 선발이 하나의 이벤트로 끝나지 않으려면 그 이후까지 보듬어 생태계에 기여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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