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갈 때마다 반복하는 작은 의례가 있습니다. 목적지는 늘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그저 가까운 오름을 골라 오릅니다. 높지 않은 곳에 서서 제주를 내려다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제법 멀리까지 열립니다. 정상에 다다르면 머리 위로 바람이 불어와 이마의 땀을 식힙니다. 그 순간 아무 말 없는 위로를 받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해거름의 제주는 그렇게 사람을 담담히 어루만집니다.
하루가 저무는 시간, 제주올레 시작점이 있는 시흥리의 말미오름을 올랐습니다. 말의 머리를 닮았다는 오름은 가파르지 않아 찬찬히 걸어도 괜찮았습니다. 산책하듯 걷다 보니 어느새 정상입니다. 그날 제 시선은 멀리 보이는 성산일출봉보다 그 아래 무밭을 감싸고 있는 돌담에 오래 머물렀습니다. 돌담 안쪽으로 스며든 따뜻한 빛이 밭을 채우고 있었습니다. 숨을 고를 때마다 찬 공기가 가슴 안으로 들어왔지만 마음 한편은 오히려 더 따뜻해졌습니다.
잠시 머물다 어둠이 내려오기 전 오름을 내려왔습니다. 돌아가는 길에도 돌담이 품고 있던 온기가 쉽게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밭을 감싸안듯 이어진 돌담처럼, 햇살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던 그 풍경처럼 올해는 주변의 따뜻한 모습을 발견해 조심스레 건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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