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다시 지상파 광고: 효과의 재발견과 개선 과제’를 주제로 한 세미나가 한국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열렸다. KBS·MBC·SBS 지상파 방송 3사와 이들이 주축인 한국방송협회, 그리고 각각 공·민영 미디어렙(방송광고판매대행사)을 대표하는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코바코)와 SBS M&C 등 지상파 방송 6개 기관이 공동 주최에 나선, 이례적인 규모의 자리였다. 주최 단체의 면면만이 아니라 100석 정도로 준비된 좌석이 빈틈없이 들어찬 이날 회견장의 모습은 지상파의 절박함을 보여주는 한 단면처럼 여겨졌다.
“TV 광고를 걱정하는 세미나에 와서 발표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 못 했다.” 이날 토론자로 참석한 김동후 중앙대 교수는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정말 그랬다. ‘광고’하면 자연히 TV CF를 떠올리던 때가 있었다. TV 세상의 권력자는 곧 지상파였다. 인기 좀 있다고 하면 시청률 20%는 가뿐히 넘고, 광고주가 줄을 서던 그런 때. 그리 오래된 일도 아니다. 유튜브 나이가 11살 되던 2016년만 해도 지상파는 전체 방송광고 시장 점유율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그러나 날개는 이미 꺾인 뒤였다. 지상파 광고 점유율은 이후 3년 만에 30%대까지 급락했고, 코로나19 때 아주 소폭 오르더니 엔데믹 이후 다시 내림세로 전환, 매출과 점유율 모두 감소 추세다. 방송광고 시장 전반이 불황이지만, 지상파 사정은 특히나 안 좋다. 지상파 방송 광고매출은 2015년 2조원에 육박한 1조9112억원에서 2024년 절반에도 한참 못 미치는 8354억원까지 줄었다.
“지상파TV, 가장 저렴하고 효율적인 광고 매체”
아무리 지상파의 영향력이 예전 같지 않다지만, 광고 빠지는 속도가 빨라도 너무 빠르다. 이에 관해선 지상파 플랫폼과 콘텐츠 경쟁력의 감소 외에도 몇 가지 이유를 들 수 있는데, 그중 하나는 상당 부분 ‘오해’에서 기인한다는 분석이 이날 세미나에서 나온 주장의 한 축을 이뤘다. 방송협회 등은 이날 세미나 직후 “지상파의 명불허전 광고 효과”가 데이터로 확인됐다고 보도자료를 냈다. MBC와 SBS는 이날 저녁 메인뉴스에서 지상파TV 광고는 비효율적이라는 세간의 인식과 달리 가장 높은 효율성과 파급력을 갖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이런 주장의 근거는 김활빈 강원대 교수가 IPTV 3사의 실시간 시청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한다. 김활빈 교수는 국내 최초로 실제 시청데이터를 수집해 분석한 결과 “지상파 중간광고는 단 1회 15초 광고만으로도 약 200만 가구에 동시 도달할 수 있는 국내에서 거의 유일한 광고수단”이며 “콘텐츠별 조회수 편차가 큰 유튜브와 달리 지상파 광고는 안정적인 노출수가 보장”되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IPTV 데이터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지상파 광고의 강점은 기존 표본조사 방식의 시청률 자료에서는 0%로 집계되던 시간대에서조차 실제로는 약 5~9만 가구 정도의 안정적인 시청이 이뤄지고 있음이 확인된 점”이라며 “기존 시청률 조사 방식으로는 지상파 광고의 효과가 과소평가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디지털 광고가 방송보다 우월하다는 건 인지 오류”
김 교수는 또 광고 효율성을 평가하는 지표로서 CPM(Cost Per Mille·조회수 1000회 당 비용)을 측정한 결과, 지상파 3사 평균은 2927원으로 유튜브의 절반 이하, 넷플릭스의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해 “모든 방송과 디지털 플랫폼과 비교해 봐도 저렴하고 효율적인 매체”라고 강조했다. “OTT 광고가 타깃팅, 가격, 광고효율성의 측면에서 방송광고보다 우월하다는 건 현실과 괴리가 큰 인지 오류”라는 것이다.
이런 ‘인지 오류’를 부추기는 게 방송광고와 관련한 각종 규제들이다. 지상파는 가장 강력한 규제를 적용받는 방송 사업자이며, 광고 역시 마찬가지다. 중간광고도 2021년에야 뒤늦게 허용됐을 정도로 규제 장벽이 높았다. 시장 지배적 사업자였던 지상파의 영향력을 제한하기 위해 취해진 조치들이었다.
그러나 광고 시장의 중심이 디지털로 옮겨가고, 지상파 독과점도 진작 무너지면서 기존 규제 틀에 갇혀 있던 방송 사업자들이 아우성치기 시작했다. 유튜브에선 대놓고 술을 마시고 PPL까지 하는데 TV 주류 광고는 도수 제한, 시간 제한 등 겹겹이다. 규제 형평성 문제가 제기됐고, 광고 매출 감소로 방송사 재원이 줄어 콘텐츠 경쟁력이 떨어지는 악순환 등이 우려되자 정부에서도 ‘방송광고 규제 완화’라는 큰 틀의 원칙을 천명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규제 완화를 ‘검토’만 하는 사이 방송 특히 지상파의 경쟁력은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떨어졌다. 방송협회가 22일 이재명 정부 국정기획위원회에 ‘방송광고 제도 혁신’ 등 대선 공약을 국정과제에 포함해 달라며 정책건의서를 전달한 이유도 여기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방송산업 관련해 열리는 각종 세미나 등의 자리에서도 방송광고 규제를 현행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거의 듣기 힘들다. 일부만 허용하고 다 금지하는 기존 포지티브 방식의 규제를 ‘원칙적 허용, 예외적 규제’의 네거티브 규제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업계는 물론 학계에서도 거의 대세가 된 듯한 분위기다.
“누더기식 규제 개선으론 안돼… 패러다임 바꿔야”
이날 세미나에서도 박성순 배재대 교수는 “기존 규제에서 누더기식 규제 개선에 나설 것이 아니라, 네거티브 규제 전환 등 보다 근본적인 차원으로 정책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시장이 필요로 하는 시기에 적절한 제도가 도입되지 않으면 ‘이런 거 해줄게’ 해서 개선되지 않는다”며 “시기적으로도 빠르게 규제 개선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방송광고 규제 완화의 방향성은 낡은 정책 지향점에서 벗어나 산업적 영역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직된 규제 틀을 벗어나 사용자의 영업 자율권과 이용자의 선택권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프로그램별 총량 기준이 아닌 하루 총량 기준의 ‘자율적 일 총량제’ 도입 △중간광고 횟수 및 방법 자율화 등을 제시했다.
중간광고 횟수나 프로그램별 광고 총량 기준을 풀어주면 인기 프로그램에 광고를 몰아넣어 시청을 방해하지 않겠냐는 지적도 있다. 박 교수는 그러나 지나친 광고 때문에 기분이 나쁘면 시청자(이용자)가 안 볼 것이고, 따라서 지상파도 신중하게 생각해서 광고를 넣을 수밖에 없을 거라며 현행 규제는 “이용자도 사업자도 바보로 만드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이용자 보호라는 방송 규제 원칙도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이용자 보호를 내세우지만, 실상은 이용자를 “아이처럼 여긴다”는 것이다. 그는 “학생들에게 광고 품목별 시간 규제가 있다고 얘기하면 경악한다”면서 “유튜브에선 누가 술 먹고 햄버거를 몇 개까지 먹는지 보는데, 국가만 이용자를 보호 대상으로 두고 있다”고 말했다.
같은 콘텐츠, 다른 규제… “이용자 보호에도 안 맞아”
이날 토론자로 참석한 송영아 한림대 교수는 플랫폼 중심의 현행 규제는 이용자 보호라는 목적에도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송 교수는 “같은 콘텐츠를 같은 시간대에 시청해도 지상파와 OTT 규제는 완전히 다르게 적용된다. 시청자 입장에선 왜 플랫폼 따라 다른 광고가 보이는지 질문할 수밖에 없다”면서 “소비자(이용자) 보호를 위해서라는 규제 취지의 신뢰성을 스스로 훼손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송 교수는 “지금과 같이 플랫폼 중심의 불균형 규제가 지속되면 지상파 경쟁력은 위축된다”며 “이용자의 실제 경험과 일치하는 규제 환경이 지상파 광고 효과를 온전히 실현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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