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22일 산불 현장으로 향하는 길, 경북 의성에 도착하기 20km 전부터 거대한 산불 연기가 보였다. 구름인가 싶을 정도로 넓게 펼쳐진 연기는 이미 의성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의성 초입에 이르자마자 마을 쪽으로 타고 내려오는 산불을 마주칠 수 있었다. 오후 5시께, 조금 늦은 시간 마주한 산불은 하루 만에 끝나지 않을 거라는 예감이 들게 했다.
이튿날에는 산불 발화지점으로 향했다. 발화지점은 모두 잿더미가 됐지만, 여전히 산불은 인근에서 타오르고 있었다. 임도를 따라 무작정 연기가 보이는 곳으로 향했다. 산 능선에 자리한 송신탑 근처에 다다르자 헬기가 머리 위로 물 덩어리를 쏟아냈다. 임도를 집어삼킨 산불 앞에서 헬기 몇 대를 더 지켜봤지만, 불길은 잡히지 않았다. 취재를 계속하다간 철수할 수 있는 임도마저 불길에 휩싸일 수 있겠다는 판단에 바로 철수하고, 산 하나를 돌아 능선 너머에 있는 사찰로 향했다.
운람사 사찰 진입로에서는 잔불 정리 작업이 한창이었다. 불길이 한 번 휩쓸고 간 길은 곳곳에서 연기를 피워 오르며 열기를 내뿜고 있었다. 잔불 정리를 하는 산불 진화 요원에게 앞길 상황을 파악한 후 진입할 수 있겠다는 판단에 다시 취재차에 올랐다. 그렇게 도착한 운람사는 이미 산불에 잿더미가 된 모습이었다. 산 능선에 위치하고 산불이 이미 지나간 상황에, 일몰 시각이 다가오자 이곳에서 산불 규모를 살피기로 했다. 헬기가 철수하자 드론을 띄웠다. 어둠이 몰려오는 시간, 화선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날 저녁부터 바람은 심상찮게 불었다. 산불 연기는 뭉치지 않고, 바람 방향을 따라 산림을 훑었다. 조금 전 산불 헬기를 취재했던 송신탑 쪽은 이미 화선이 닿아 있었다. 하늘에서 바라본 산불은 거대한 띠를 이루며 마을을 향하고 있었다. 불은 산림뿐만 아니라 인명도 앗아갈 기세였다.
사흘 차부터는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화선을 따라 이동하던 오후 2시께 의성군 옥산면에 도착했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와 괴리감이 드는 산불 연기는 짙은 그늘을 만들었다. 능선을 타고 치솟는 불기둥은 멀리서 봐도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산불 연기 속에 도착한 입암리 마을은 산불에 날아온 불씨에 불타고 있었다. 연기 속을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잿가루와 불티에 눈물이 줄줄 흐르고 숨이 턱턱 막혔다. 처음으로 가까이서 마주한 산불은 상상 이상으로 뜨거웠다. 불길은 거셌고, 취재 목표는 분명해졌다. 이날 밤 산불이 덮칠 마을로 향해야 했다.
산불 연기를 따라 비상등을 켜고 이동했다. 한 마을 도로변으로 차량과 주민들이 나와 있는 것을 보고 주위를 둘러보니 산불이 마을 지척에 닿아 있었다. 소방관들은 마을로 향하는 산불의 길목에 연신 물을 뿌려댔다. 이미 산불에 둘러싸인 민가가 눈에 들어왔다. 민가로 향하는 길목은 차단돼 드론을 보내기로 했다. 불길 위를 날며 전송되는 화면은 마구 떨렸다. 막상 민가로 접근은 했지만, 짙은 연무는 불에 타는 민가의 모습을 감췄다. 드론이 조금만 더 버텨주길 바라며 연기가 걷히길 기다렸다. 민가에 있던 부탄가스 터지는 소리가 지척에서 들렸다. 곧 바람이 연무를 걷고 불길에 타오르는 민가를 촬영할 수 있었다.
다음 날 오후에는 본격적인 강풍이 불어닥쳤다. 급히 지원받은 고글과 마스크로 무장한 채 주황색 연기로 가득한 하화1리 마을로 들어갔다. 산불에 출입이 통제된 마을은 그야말로 재앙이었다. 마을 곳곳이 불타고 있었고 뜨겁게 불어 닥치는 강풍은 온몸을 흔들었다. 카메라를 부여잡고, 그래도 소방차 옆에 있으면 괜찮겠지라는 생각으로 셔터를 눌렀다. 도저히 갈 수 없는 곳에는 드론을 보냈다. 조금 더 가까이서 본 산불 현장은 마치 지옥도 같았다.
산불이 바다까지 내달린 3월25일 밤부터 철야 이동을 통해 영양군으로 진입했다. 당시에는 영덕까지 불길이 미칠 거라는 생각조차 못 했던 탓이다. 새벽 3시께 도착한 영양군민회관 산불 대피소에선 화마를 피해 도망쳐 온 이재민들이 쪽잠을 청하고 있었다. 그 새벽, 잠 못 이루며 대피소 바닥에 앉은 주민들과 산불에 지쳐버린 이재민들의 모습은 소리 없는 아비규환 같았다. 이후의 취재는 산불 피해를 본 삶의 터전을 중심으로 흘러갔다. 수해를 입은 주민들이 피해를 본 직후 복구를 시작하는 것과 달리, 화마가 삼킨 이번 재난은 복구의 여지조차 없어 주민들의 발길조차 끊겼다. 산불이 지나간 곳은 뻔뻔하게 흉물스러웠고, 섬뜩하게 고요했다.
그 고요함 속에 현장 취재 때는 마주치지 못했던 동료 기자들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게 됐다. 동료들은 하나같이 한 번쯤은 죽을뻔한 고비를 넘겼다고 말했다. 재난 현장 취재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본연의 의무를 다한 동료 기자, 선후배들께 경의를 표한다.
마지막으로 산불로 피해를 본 주민들에게 하루빨리 치유의 시간이 오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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