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사랑해!”
21일(현지 시각) 미국 음악 축제인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코첼라)’에선 이런 한국어가 울려 퍼졌다. 그룹 블랙핑크의 멤버 제니가 자신의 무대를 보러 온 어머니를 향해 외친 말이다. 올해 코첼라엔 제니를 비롯해 같은 블랙핑크의 리사, 7인조 보이그룹 엔하이픈 등 세 팀이 무대를 선보였다. 매년 20만명이 운집하는 미국 최대 음악 페스티벌에 한국 가수들이 꾸준히 등장하는 모습은 전과 달라진 K-팝의 위상을 상징한다.
정작 한국에선 K-팝 가수들이 코첼라 같은 대형 무대에 서는 것을 보기 어렵다. 대규모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전문 공연장이 턱없이 부족한 영향이 가장 크다. 풍성해진 K-팝 ‘콘텐츠’를 정작 ‘플랫폼’이 쫓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서울에서 관객 5만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었던 공연장은 모두 체육 시설로, 문화 행사가 우선이 될 수 없는 공간이었다. 더욱이 코로나19 이후 침체됐던 공연 수요가 폭발하면서 기획사들은 콘서트를 위해 ‘대관 전쟁’을 치르는 게 일상이 됐다.
특히 최대 10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잠실종합운동장 올림픽주경기장이 2023년 8월 리모델링에 들어간 뒤 공연장 부족 현상이 더욱 심해졌다. 게다가 최대 6만6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서울월드컵경기장도 ‘잔디 훼손 논란’ 이후 그라운드석은 제외하고 대관하는 것으로 방침이 바뀌었다. 프로 야구 경기장인 고척스카이돔(2만5000석)도 상시 이용이 어렵다. 결국 서울에 1만명 이상 수용할 수 있는 공연장은 K스포돔(옛 체조경기장)이 유일하다. 세계 최대 규모의 K-팝 전용 공연장을 표방했던 ‘CJ라이브시티’는 공사비 상승 등으로 인해 지난해 무산됐다.
최근 떠오르는 대안은 약 3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고양종합운동장이다. 지드래곤 같은 국내 대형 가수뿐 아니라 콜드플레이, 오아시스, 트래비스 스캇 등 굵직한 내한 가수들도 모두 이곳을 공연장으로 선택했다. 그러나 전문 공연장이 아니라 불편한 점도 많다. 우선 야외 공연장이기에 날씨의 제약이 있다. 경기장 트랙에 의자를 깔다 보니 플로어석엔 단차가 없어 시야 방해도 심하다.
국내 첫 전문 공연장으로 알려진 인스파이어 아레나도 있지만 한계가 뚜렷하다. 360도 개방형 무대로 꾸미더라도 최대 1만5000명밖에 수용할 수 없다. 또 인천 영종도에 있어 공항철도와 셔틀버스를 이용해야 하는 등 대중교통 접근성이 낮다. 밤늦게 공연이 끝나면 돌아오기 힘들어 아예 숙박을 예약하는 관객들도 적지 않다.
옆 나라 일본은 전국에 1만석 이상 공연장이 40곳이 넘는다.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3만7000석)와 요코하마 아레나(1만7000석), 피아 아레나(1만2000석), 오사카 아레나(1만5000석) 등 음악 중심 공연장도 4곳이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초대형 돔 공연장 ‘스피어’ 역시 지역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으며 경제를 부흥하고 있다.
국제음반산업협회(IFPI)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음악 시장은 미국, 일본, 영국, 독일, 중국, 프랑스에 이은 7위다. K-팝 가수들이 글로벌 인기를 얻으면서 시장 규모도 전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졌다. 한국이 더 많은 글로벌 스타의 산실이 되기 위해 제자리인 한국 공연장의 인프라를 재점검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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