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9일, <타임>지에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다. 제목은 다음과 같다. “언론이 매카시즘을 탄생시켰다. 지금 역사는 반복되고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된 걸까?
상원의원 매카시를 유명 정치인으로 만든 연설이 행해진 행사는, 작은 정치 단체가 주최해 웨스트버지니아 휠링에서 열린 링컨 탄생 기념 만찬이었다. 매카시는 이 행사에 연설자로 초대받았다. 휠링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매카시의 연설 주제는 정해져 있지 않았다. 매카시는 주최 측에 자신이 주택 정책이나 공산주의 둘 중 하나에 대해 연설할 수 있다고 했고, 주최 측은 공산주의를 선택했다.
매카시는 연설문 수정 과정이 채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한 기자에게 여분의 사본을 건넸고, 이 기자는 이를 바탕으로 <휠링 인텔리전서>지에 기사를 작성했다. 이 기사는 매카시가 연방정부 내에 내부 첩자 ‘205명의 명단’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반복해 강조했다.
황당하게도 매카시는 이후 자신이 연설에서 205명이란 구체적 숫자를 말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그날 실제 연설 내용이 녹음되지 않았기에 그가 어떤 말을 했는지 확실하게 남아있는 건 없다.
문제는 AP통신이 <휠링 인텔리전서>의 보도를 속보로 전달하면서 시작됐다. 속보의 시작은 이랬다. “매카시 상원의원이 오늘 밤 이곳 연설에서, 205명의 공산당원이 국무부에서 ‘일하며 정책을 결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 명단을 확인하지도 않은 AP의 보도는 아주 작은 정치 단체 앞에서 무명 정치인이 한 발언을 정부가 부패해 있다는 충격적 선언으로 바꾸어 버렸다.
이후 진실 게임이 시작되었다. 205명의 명단을 손에 쥐고 있다고 주장한 매카시는 추정 첩자 수를 57명이라 줄여 말했다. 더하여 대통령과 국무장관에게 그 공산주의자들의 이름을 밝히라고 요구하며 공격했다. 자기가 입증해야 할 책임을 민주당에 떠넘기면서도 이 사안을 계속 뉴스가 되도록 만드는 전략이었다.
여기서 더 놀라운 사안은, 본격적으로 취재를 시작한 기자들 대다수가 매카시에게 그 명단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일부 언론이 이 사실을 지적했지만, 대다수 기자는 이를 공개적으로 밝히길 주저했다. 그들은 선출직 공직자가 한 말은 그대로 보도하고 진실을 가려내는 일은 독자나 청취자에게 맡겨야 한다고 믿었다. 그게 ‘객관적’이라 믿었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아무도 보지 못한 가상의 문서에 기반한 검증되지 않은 주장이 매카시에게 유명세와 권력을 안겼고, 수많은 이들이 매카시에게 불려 가 조사받고 매도당하는 일이 일어났다. 영화 <오펜하이머>는 당시 매카시즘이 물리학자에게까지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보여준다. 매카시즘의 광풍은 미국을 이념의 광기로 몰아넣었다.
매카시즘의 확산을 바라보며 언론인 더글러스 케이터는 ‘객관성’ 개념에 휩싸인 미국 언론이 “공적 무대에서 발화된 말을 송출하고 증폭하는 확성기”가 되었으며 그 관행이 “확성기를 장악하는 법을 알고 마음껏 소리치는 사람들”을 더 많이 키워냈다며 자책했다.
그 광기가 마무리되기까지 4년의 세월이 걸렸다. 광기가 길러낸 불신이 더 확산한다면 미국 사회가 더는 버틸 수 없다는 신호가 왔다. 결국, 미국 상원과 언론이 매카시를 축출했다. 책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에선 이 국면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매카시가 연설하면 상원의원들이 자리를 떴다. 그가 기자회견을 열면 아무도 모이지 않았다.”
이 사건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 극단주의자는 사회적으로 소수이기에 스스로 목소리를 키울 순 없다. 그 목소리가 커지는 주요 통로는 결국 ‘언론’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언론이 추구하는 ‘객관성’이 그 통로를 열고 민주주의를 위기에 몰아넣을 수도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우리 민주정체가 위기에 서 있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런데 극단주의자들의 말들이 언론에서 걸러지지 않은 채 받아쓰기 보도의 형식으로 난무한다. 그러면 물어야 한다. 언론의 판단기준은 객관성인가 민주주의인가? 답은 언론인 각자에게 달려 있겠지만, 이론과 실천에서 모두 명확한 건 민주주의만이 언론의 객관성을 보호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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