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폭행, 공개적 무시… 정치권 언론혐오 선 넘었다

[권성동 국힘 원내대표, 기자 폭행]
뉴스타파, 체포치상 혐의로 고소
홍준표 "적대적 언론 질문 안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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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질문하는 기자를 폭행하고 같은 당의 홍준표 대선 경선 후보는 질문을 피하고 공개적으로 무시하는 발언을 하면서 정치권의 언론혐오가 도를 넘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공개 사과 요구에도 국민의힘은 물러서지 않고 있다.


권 원내대표는 1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질문하며 다가선 이명주 뉴스타파 기자의 손목을 잡아끌며 폭행했다. “누구한테 취재하러 온 것이냐”며 ‘임시 출입’ 자격을 문제 삼고 방호과에 넘기겠다며 20~30m를 끌고 갔다.

1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마이크를 든 이명주 뉴스타파 기자의 손목을 잡고 끌고 가고 있다. /뉴스타파

언론단체들은 권 원내대표의 폭행이 단순히 우발적인 충돌이 아니라고 경고했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권력의 언론혐오와 편 가르기라는 것이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은 “취재를 물리력으로 가로막는 행태는 윤석열이 저지른 짓과 다르지 않다”며 “게다가 권 원내대표는 지난해 12월에도 MBC 기자가 질문하자 ‘다른 언론사가 질문하라’며 무시한 이력이 있다”고 지적했다.


뉴스타파는 권 원내대표를 체포치상과 폭행, 상해, 명예훼손 등 네 가지 혐의로 고소했다. 권 원내대표가 보좌진에게 “도망 못 하게 잡아”라고 반복해 말하는 등 고의가 다분하다고 판단했다. 이 기자는 손목이 붉게 부어올라 2주간 치료를 받게 됐다. 체포죄는 5년 이하 징역이나 700만원 이하 벌금, 체포치상죄의 경우 벌금형 없이 1년 이상 징역에 처할 수 있다.


고소장에서 뉴스타파는 “공당의 대표가 자신의 신분과 책임을 망각한 채, 취재하는 기자에게 물리적·신체적 폭력을 행사하여 강제로 끌고 가는 것은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초유의 사태”라며 “이를 그대로 방치할 경우 언론의 자유는 화석화된 문자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고 썼다. 권 원내대표는 뉴스타파를 언론이 아닌 ‘찌라시’라고 불러 명예훼손 혐의도 적용됐다.


권 원내대표는 뉴스타파가 취재를 빙자해 폭력을 행사했다는 입장이다. 이 기자는 권 원내대표에게 “국민의힘이 ‘국민께 죄송하다, 끝까지 책임을 다하겠다’고 했는데 무엇이 죄송한 것이냐”고만 질문했다. 국민의힘은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이 결정된 4일 전국에 이런 내용을 쓴 현수막을 내걸었다. 탄핵에 불복한다는 듯 여지를 남긴 것이다.


이 기자가 예상 밖의 질문을 갑자기 꺼낸 것도 아니다. 당일 권 원내대표는 “헌법재판관이 진영논리에 갇혀 신뢰하기 어렵다”며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에 불복하는 듯한 발언을 반복했다. 이날 백브리핑에 앞서 권 원내대표가 참석한 행사는 김민전 국민의힘 의원이 주최한 ‘헌재·선관위 개혁 토론회’였다. 김 의원은 대표적인 12·3 비상계엄 옹호론자다.

홍준표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가 16일 서울 여의도 선거사무소에서 경제·노동·과학기술 분야 정책을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같은 날 홍준표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는 홍여진 뉴스타파 기자가 소속을 밝히자마자 자리를 떠나버렸다. 홍 기자는 “왜 ‘입틀막’을 하느냐. 질문 끝까지 듣고 가 달라”며 “특정 언론사 질문만 회피하는 게 어딨느냐”고 항의했다. 홍 후보는 17일에도 전날 보인 태도에 항의하는 오마이뉴스를 ‘적대적인 언론’이라고 부르며 똑같이 무시했다.


이 자리에서 홍 후보는 뉴스타파가 자신이 연루된 ‘명태균 게이트’ 질문을 한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정작 뉴스타파는 명씨에 대해 질문할 계획이 없었고 윤 전 대통령 탄핵에 승복하는지 물으려 했다. 홍 기자는 “일단 답변이 중요하니 당일 질의서를 서류봉투에 넣어 캠프에 전달했다”며 “아직 답이 없는데 열어보지도 않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홍 기자는 “다음 날에는 우리 기자가 그 자리에 있지도 않았는데 홍 후보가 질문하는 기자를 막으려다 ‘난 또 뉴스타파인 줄 알았지’ 하면서 뉴스타파를 웃음거리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자기 심기를 거스르면 같은 꼴을 당하게 해주겠다며 다른 언론에도 압박을 줬다는 것이다. 오마이뉴스는 언론사 차원에서 항의한 끝에 캠프 관계자에게서만 사과를 받아냈다.


국회를 출입하는 한 기자는 “출입기자 처지에서는 동료 기자가 차별받을 때 함께 항의하고 나서면 선배들한테서야 칭찬받겠지만 회사에서 받을 불이익을 걱정할 수밖에 없다”며 “후보가 회사에 압력을 넣으면 사측은 껄끄러운 관계를 피하려 현장에서 기자를 빼고 간편히 교체해 버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 기자는 그러면서 “박석호 부산일보 기자가 불편한 질문을 하고 문화부로 가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박 기자는 지난해 11월 “제 주변 일로 걱정을 끼쳤다”는 윤 전 대통령에게 “무엇을 사과했는지 국민이 어리둥절해할 것 같다”며 거듭 질문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무례하다며 불쾌감을 드러냈고 박 기자는 3월 부산 본사로 발령 났다.


당시 부산일보 측은 박 기자가 20년 넘게 서울에서 근무해 순환 근무할 때가 됐다며 정치적 배경이 있다는 건 오해라고 해명했다. 그럼에도 현장 기자들 사이에서는 박 기자 사례가 분위기를 얼어붙게 한 상징적인 사건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권 원내대표와 홍 후보는 취재를 거부할 자유도 있지 않느냐고 항변하지만 실제로는 불편한 언론을 배제하고 가까이 둘 언론을 취사선택하겠다는 전략으로 볼 수 있다. 국민의힘은 “권력이 언론을 장악하여 국민의 눈과 귀를 막고 독립성, 공정성, 객관성을 침해하는 현실 타개”를 강령으로 내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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