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 밖 반전의 결과"... 수신료 통합징수법 재표결 끝에 통과

시행령 개정 2년 만에 원상복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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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24회 국회(임시회) 제5차 본회의에서 방송법 일부개정법률안 재의의 건이 가결되고 있다. /뉴시스

정부가 거부권을 행사해 다시 국회로 이송됐던 수신료 통합징수법(방송법 개정안)이 17일 국회 본회의에서 재표결 끝에 통과됐다. KBS 내부를 갈등과 위기의 소용돌이로 밀어 넣었던 TV 수신료 분리고지·징수 방식은 이번 국회 재의결로 윤석열 정부의 시행령 개정 이후 약 2년, 분리징수 전격 시행 1년여 만에 통합징수로 돌아가게 됐다.


정부의 재의요구안이 국회 재표결로 통과한 건 22년 만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이날 국회 본회의 무기명 투표 결과, 수신료 통합징수 방식을 법으로 보장하는 내용의 ‘방송법 개정안’은 총 투표수 299표 중 찬성 212표로 가결됐다. 헌법상 대통령이 재의를 요구한 법안이 다시 국회를 통과하려면 200표 이상 찬성표가 나와야 하는데, 108석을 차지한 국민의힘에서 최소 20표 정도의 이탈표가 나온 것으로 알려진다. 최형두 국민의힘 의원은 18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전날 재표결 상황에 대해 “본회의 전 의원총회에서 통합징수법에 대해선 저희가 당론으로 정하지 않고 자유투표를 하기로 결정했다”며 “KBS가 수신료(분리징수)로 인해 여러 가지 경영상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호소하는 측면 때문에 부득이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김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6월 대표 발의한 수신료 통합징수법은 당초 그해 12월 본회의에서 161명이 찬성해 사실상 야당 주도로 통과됐던 만큼, KBS 구성원 대부분은 마지막 희망을 걸면서도 재의결 여부에 대해선 비관적이었다고 전해진다. 한 KBS 기자는 “예상 밖 반전의 결과”라며 “통합징수가 정치권 우선순위 관심사가 아니라 힘든 상황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대선 국면인 데다 정치권은 그동안 정략적으로 공영방송을 활용하는 데만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더더욱 회의적이었다”고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그간 KBS 내부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결과가 재의결에 중요한 변수로 여겨져 왔다. 박상현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장은 “윤석열 탄핵소추안도 204표로 가결됐는데 이번에도 국민의힘 내부에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하시는 분들이 동참을 해줬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본다”며 “특히 그동안 지역총국 구성원들이 지역구 의원들에게 협조를 요청하고 설득하는 등 KBS 동료들이 정말 고생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이어 “박민 이후 KBS엔 처음으로 좋은 소식인 건데 2년간 구성원이 정말 고생만 한 거다. 따지고 보면 수신료 분리고지 자체가 정권의 공영방송 장악의 전부였다는 의미”라고 덧붙였다.


이번 수신료 통합징수법 입법의 발단이 된 건 윤석열 정부 시절 이뤄진 수신료 분리고지·징수 시행이었다. 2023년 7월 방송통신위원회는 대통령실 권고 한 달 만에 방송법 시행령을 고쳐 수신료를 전기요금과 통합징수하는 기존 방식을 금지시켰다. ‘공영방송의 목줄을 옥죄는 행태’라는 KBS 안팎의 비판이 잇따랐고, 2년여 간 KBS 구성원은 제작인력의 대규모 수신료국 파견 등 온갖 갈등과 혼란을 겪어야 했다. 이 과정에서 분리징수 반대를 외쳤던 김의철 당시 사장은 해임됐고, 윤 전 대통령이 임명한 박민 사장은 시행령 개정 1년 만인 지난해 7월부터 수신료 분리 고지·징수를 시행했다. 그해 6월 발의된 통합징수법안에 대해 박민 체제 KBS는 국회에 “KBS가 스스로 결합징수를 요구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의견서를 제출하는 등 통합징수 복원엔 사실상 손을 놨다는 내부의 반발이 거셌다. 입법 과정에서 사내 노조·직능단체들이 모두 참여한 ‘수신료 TF’에 당시 사측은 동참을 거부하기도 했다.


이 와중 분리징수로 인한 KBS 재정 위기는 현실화됐다. 21일 KBS는 사보에서 “수신료 분리고지 시행 이후 수납률이 10% 하락해 연간 기준 약 700억원의 미납이 발생하고, 반면 징수 비용은 약 400억원 증가해 연간 1100억원에 이르는 막대한 순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지난해 12월 박장범 사장 취임 이후부터야 KBS 사측은 뒤늦게 수신료 통합징수법 통과에 적극 대응하기 시작했다. 이번 가결 소식에 기뻐하면서도 박 사장의 치적으로 돌아가는 건 경계해야 한다는 기자들의 우려도 나온다. 권준용 KBS 같이노조 위원장은 “박 사장이 잘한 건 맞지만 박 사장 때문에 된 건 아닌 것”이라며 “법안 발의에 역할을 해준 건 본부노조였고, 무엇보다 이 건에선 네 편 내 편 없이 직원 모두가 회사의 여러 감축안도 수용해가며 희생했고, 열심히 뛰었다”고 말했다. 박상현 본부장은 “수신료 통합징수 법안이 통과된 게 누구의 공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누가 수신료 체계를 망가뜨렸는지, 그 사람들이 어떠한 행태를 보였는지 우리는 기억해야 된다”고 덧붙였다.


수신료 통합징수 전환은 공포 후 6개월 뒤에 시행한다는 법안 부칙에 따라 이르면 10월 중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수신료 징수 대행을 맡고 있는 한국전력과의 수신료 위수탁 재계약 협상도 남아있는 과제다. KBS 관계자는 “법안 시행 전에 협상을 마무리하는 게 목표”라며 “협상에 이슈가 되는 부분이 수신료 관련 시청자 민원 등 업무 분장이다. 제작인력 파견 문제도 당장의 복귀는 어렵겠지만 순차적으로 복귀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권준용 위원장은 “현재 아파트 가구 수신료 관리 업무의 경우 수신료 사업지사 분들이 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협상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업무량, 인원 등이 줄어들 텐데, 인력 파견 문제도 이제 원점에서 사측이 노조와 잘 협의해 방안을 찾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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