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조사의 순기능이란 무엇인가?’ 대의제의 한계를 보완해 국민의 의견이 정부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기능함으로써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데에 있다. 보통 이렇게 정리되곤 한다. 아쉽게도 한국의 상황은 다르다. 여론조사가 가지는 폐해는 어느 때보다 심각하다. 거짓 여론조사로 권력을 등에 지고 이권을 챙긴 ‘명태균 게이트’를 지나는 중이다. 그런데 다시 이런 고민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에 관한 여론조사 문제 이야기다.
헌법재판소의 전원일치로 내란을 저지른 대통령 윤석열이 파면됐다. 그날 한덕수 대행은 “차기 대선 관리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혼란스럽던 정국이 수습돼 가던 그때, 날벼락이 떨어졌다. 한덕수 대행이 마은혁 헌법재판관을 임명하면서, 동시에 내란 연루 의혹을 받는 이완규 법제처장과 성범죄자 봐주기 판결로 비난이 거센 함상훈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를 문형배·이미선 재판관 후임으로 지명한 탓이다. 대통령 대행으로서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거셌지만, 이런 행보는 특정 세력에겐 그를 대통령감으로 인식시키는 계기가 됐다. 미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에 나갈 건가”라고 물었다는 언론의 단독 보도는 그에 관한 주목도를 높였다.
그런 요구에 부응한 듯, 한덕수 대행은 실질적인 대통령 권한을 행사하는 중이다. “선출된 차기 정부의 일”이라는 전문가들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 앞장서고 있다. 국회 대정부 질의에 불참하면서까지 광주 자동차생산업체 기아오토랜드와 울산 HD현대중공업을 찾아 관계자들을 격려했다. 결식아동에 점심을 제공하고 있는, 이른바 ‘착한 식당’을 찾아 사진 한 컷 찍는 일도 빼놓지 않았다. ‘대통령놀음’이라는 얘기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 ‘21대 대통령 선거’는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그런 선거를 관리하는 자가 플레이어로 나선다는 게 말이 되나. 한덕수 대행 본인에도 문제는 있다. 그는 윤석열 정부가 저지른 내란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찬성하지 않았다”는 말로 끝날 일이 아니다. 헌법재판관 임명을 미루며 그 또한 헌법을 수호할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이런 자가 대권후보라니….
언제나 부화뇌동이 문제다. 국민의힘이야 그렇다 치자. 그런데 그런 분위기에 발맞춘 여론조사의 문제는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한덕수 대행은 11일 공표된 한국갤럽 자체 조사에서 차기 대통령 후보로 2% 지지를 얻었다. 자유응답에 따른 결과다. 리얼미터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갔다. “국민의힘의 대선 후보로 누가 나서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한덕수’라는 이름을 보기로 제시했다. 그 여론조사에서 한덕수 대행은 8.6%를 기록했다. 이 모든 과정이 유감이다.
한덕수 대행 관련 여론조사는 어떤 기시감이 들게 한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문재인 정부 시절, 대통령과 불화하던 검찰총장의 주가는 계속 상승했다. 거기까지야 누가 뭐랄 수 있겠나. 하지만 여론조사에 이름을 포함하는 건, 적극적 행위로 문제의 성격이 달라진다. ‘현직 검찰총장이 대선후보로 거론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비판이 나왔던 이유다. 하지만 제동이 걸리지 못했다. 한 업체가 시작하니 다른 여론조사 업체들도 너나 할 것 없이 그의 이름을 넣어 조사를 돌렸다. 명태균씨가 운영하던 여론조사 업체가 특수한 임무(?)를 수행했던 때이기도 하다. 이것이 20대 대통령 선거에서 윤석열이 당선되는 과정에서 여론조사 업체들이 벌인 ‘짓’이다. 그리고 한국 사회는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는 중이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최근 “한덕수 대행의 대선 출마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응답이 66%(중도층 73%)라는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공동 수행한 이 조사는 갤럽, 리얼미터와 질문부터 달랐다. “한덕수 대행이 이번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였기 때문이다. 이 결과는 질문을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여론은 다르게 집계될 수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보여준다. 여론조사 업체에 어디까지 책임을 물을 것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부적절한 인물들이 ‘난가병(다음은 나인가)’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하지 않겠나. 딱 그 정도다. 그조차도 어렵다면, 업체 간판을 떼는 게 한국 사회를 위해 더 나은 일이 아닌지 묻고 싶다.
※리얼미터는 21일 공표된 ‘제21대 대통령선거 여론조사’에서 한덕수 대행을 제외했다. 하지만 문제 제기는 유효하다. 해당 여론조사가 실행된 것도 배포돼 여론에 영향을 준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특히, 오히려 이런 과정에서 여론조사 업체들이 기준 없이 특정한 인물을 띄울 수도 혹은 가릴 수도 있다는 점이 확인된 셈이다.
<한국갤럽>
한국갤럽 자체 여론조사로 8일부터 10일까지 만 18세 이상 남녀 1,00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로 100% 무선전화면접을 이용했고,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p다. 응답률은 14.9%였다.
<리얼미터>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9일부터 11일까지 전국에 거주하는 만18세 이상 남녀 1,506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로 100% 무선ARS을 이용했고,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2.5%p다. 응답률은 4.7%였다.
<케이스탯리서치>
케이스탯리서치(공동조사기관명, (주)코리아리서치인터내셔널)가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의 의뢰로 14일부터 16일까지 전국에 거주하는 만 18세 이상 남녀 1,00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로 100% 무선전화면접을 이용했고,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p다. 응답률은 23.2%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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