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전방위적인 관세 공격 때문에 시달리는 나라들이 많다. 그 영향으로 많은 사람들이 고물가와 주식 폭락에 불안감을 느끼고 있으니 이쯤 되면 2016년 트럼프 대통령의 첫 당선 때 등장한 용어인 선거 후 스트레스 장애(PESD)를 다시 거론할 만하다.
PESD에 비견할 바는 아니지만 요즘 정보기술(IT) 분야를 담당하는 기자들은 ‘인공지능(AI)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매일 이메일로 받는 보도자료를 보면 온통 AI 얘기다. 그만큼 AI가 중요한 시대적 흐름으로 부상했기 때문이지만 더러 개연성이 떨어지는 내용에도 AI를 붙인 자료를 보면 실소와 함께 피로감을 호소할 만하다.
혹자는 이것도 한때 유행이 아니냐고 한다. 세상이 바뀔 것처럼 요란을 떨었지만 지금은 별로 거론하지 않는 3D TV와 메타버스처럼 말이다. 하지만 AI의 이용 추세를 보면 3D TV나 메타버스와 분명 다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3월30일 발표한 ‘2024년 인터넷 이용 실태 조사’를 보면 조사 대상인 전국 2만5000여 가구의 60%가 AI를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년 대비 약 10% 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이 같은 움직임은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떠올리게 한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은 보급 초기에 과연 성공할 수 있을지 의구심을 자아냈다. 그때를 돌아보면 웃지 못할 기억이 떠오른다. 1994년 말 인터넷 서비스를 시작한 국내 최초의 민간 인터넷 업체 아이네트가 기자간담회를 갖고 참석한 기자들에게 이메일 계정을 개설해 줬다. 기사에 바이라인조차 제대로 붙이지 않던 시절이어서 이메일 계정을 받은 기자들은 ‘도대체 어디에 쓰라는 것이냐’며 황당하게 여겼다.
그런데 그로부터 2년 만에 닷컴기업들이 우후죽순 등장하며 전국에 인터넷 바람이 불었다. 주요 언론사들은 잇따라 디지털 조직을 만들어 홈페이지를 개설했고 기자들 명함에 이메일 계정을 표시했다.
스마트폰도 마찬가지다. 이석채 전 KT 회장이 2009년 애플의 ‘아이폰’을 들여올 때만 해도 국내 휴대폰 시장은 국내 대기업들의 피처폰 일색이었다. 그때도 스마트폰 전환 속도가 이렇게 빠를 줄 예상하지 못했다. 아이폰은 골리앗을 쓰러뜨린 다윗의 돌멩이처럼 난공불락의 휴대폰 시장을 바꿔 놓았다.
AI의 보급 속도는 인터넷과 스마트폰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미국의 신생기업(스타트업) 오픈AI가 2022년 말 대화형 AI 서비스 ‘챗GPT’를 선보인 지 2년 여 만에 AI의 대중화를 상징하는 ‘1인 1AI 시대’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국내 AI 스타트업 뤼튼테크놀로지스는 4월8일 기자간담회를 갖고 개인별로 특화된 1인 1AI 서비스를 하겠다고 선언했고, 메가존클라우드는 영업, 인사, 재무 등 기업의 모든 영역에 AI를 적용하는 AI 네이티브 시대를 표방했다.
대중화는 상업적 성공과 맞물린다. 돈 벌 수 있는 시장이 열리면 사람들은 누가 말려도 뛰어든다. 숱한 서비스와 앱의 등장으로 생태계를 형성하며 보편적 기반 시설(인프라)이 된 인터넷과 스마트폰처럼 AI도 인프라 진화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벌써 AI 스트레스를 호소하며 지치면 안된다. AI 대중화에 본격적으로 불을 붙이는 1인 1AI 시대가 봇물처럼 밀려올 수 있으니 이를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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