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온라인 괴롭힘에 이례적 대응… "예방체계까지 갖춰야"

언론사 신뢰 깎는 괴롭힘, 회사가 직접 나서
"일회성 안 돼… '온라인 안전 에디터' 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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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20일 방송된 JTBC 뉴스룸. JTBC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자사 기자 두 명을 폭도로 지목한 게시글에 법적 대응을 한다고 보도했다.

12·3 비상계엄부터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에 이르기까지 정치적 긴장이 극에 이르면서 기자들은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에게 심각한 온라인 괴롭힘을 당했다. 언론사들은 이례적으로 기자들을 대신해 적극적으로 나섰는데 일회적인 조치에 머물 것이 아니라 괴롭힘을 예방할 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온라인 괴롭힘은 단순한 모욕을 넘어 허위정보로 기자를 공격하는 경우가 많았다. 손령 MBC 기자는 이름이 비슷한 유학생이 쓴 논문 때문에 손 기자가 중국인이라는 주장에 시달렸고, JTBC에서는 이가혁 기자와 동료 기자가 서부지법 폭동에 가담했다는 허위 게시물이 퍼졌다. 다른 한 매체는 보도 내용에 문제가 없었는데도 극우 집회자들의 심기를 거슬렀다는 이유로 ‘신상털이’를 당했다.

이들 언론사는 즉시 법적 대응에 나섰다. 피해 기자에게 의사를 묻고 부담을 지우기보다 언론사가 직접 대응 주체로 나서 증거를 수집하고 가해자들을 허위사실 명예훼손, 모욕, 협박 등 혐의로 고발했다. 허위정보까지 동원한 음해가 언론사의 신뢰와 가치를 깎아내릴 수 있었기 때문에 피해 기자가 요청하면 도와주겠다는 차원이 아니라 언론사가 자기 문제로 여기고 적극적으로 대응한 것이다.

언론사들의 이런 적극적인 대응은 이례적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격년마다 시행하는 ‘2023 한국의 언론인’ 조사에서 응답자 2,011명 중 3분의 1이나 되는 29.7%가 지난 1년 동안 온라인 괴롭힘을 당했다고 답했다. 하지만 대체로 무시하거나 무대응 했고 사내에 도움을 요청했다는 답은 15.6%에 불과했다. 8.4%는 기자가 직접 조치에 나섰다.

언론사 차원에서 대응해 줄지, 도움을 제안해 줄지는 대체로 데스크의 재량에 달린 것이 현실이다. 지금도 온라인상에는 기자의 발음이 조선족 같다며 음해하는 등 비교적 자잘해 보이는 피해 사례도 여럿 있지만 언론사들은 앞서 언급된 사례 외에는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사건이 웬만큼 불거지지 않으면 소속 회사가 직접 나서주기 쉽지 않은 것이다.

챗GPT에 '사이버불링으로 고통받는 기자들의 현실'을 주제로 요청해 제작한 일러스트.

기자들에 대한 온라인 괴롭힘을 연구해 온 김창욱 한동대 교수는 “언론사들이 이번 한 번 단호하게 대응한 것을 두고 기자들을 적극적으로 보호하고 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며 “언론사가 ‘예방책’을 마련해 두고 있는지에 따라 적극적인 대응을 하고 있는지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괴롭힘이 발생한 이후에야 대처하는 것이 아니라 재발 방지를 위해 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가 신우열 전남대 교수와 함께 2023년 발표한 연구를 보면 언론사는 기자를 보호하는 정도에 따라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기자가 괴롭힘 피해를 호소하면 나약하다고 보거나 한직으로 발령 내는 ‘회피형’, 알아서 해결하게 두는 ‘방임형’, 도움을 요청하면 법률 조력까지는 해주는 ‘소극적 보호형’이 있다. ‘적극적 보호형’은 예방적 체계까지 갖춰야 하는데 국내 언론사는 몇 곳이 소극적 보호형일 뿐 적극적 보호형은 없었다.

김 교수는 예방 체계를 갖추려면 ‘온라인 안전 에디터’를 전담 인력으로 둬야 한다고 조언한다. 영국의 여러 매체를 소유한 ‘리치’(Reach)사는 2021년에 온라인 안전 에디터를 고용했다. 에디터는 괴롭힘 피해에 법적 대응이 적절했는지 평가하고 사례와 정보를 축적하며 매뉴얼을 만든다. 온라인 동향을 파악해 언론사의 신뢰를 훼손하는 행위를 감시하고 정기적으로 구성원들을 진단할 수도 있다. 편집회의에도 참여해 공격을 유발할 수 있는 보도를 인지해야 한다.

김 교수는 “에디터가 매일 있을 필요가 있냐고 할 수 있는데 피해는 언제 있을지 알 수 없다”며 “더욱이 조기 대선이 다가오면서 양쪽 진영에서 기자들이 겪을 피해가 뻔하다”고 말했다. 그는 “국제언론인협회(IPI, International Press Institute)도 언론사마다 한 명씩 온라인 안전 에디터를 두라고 권고했다”며 “제조업이나 건설 기업에 보건·안전 담당자가 있듯 언론사에도 이런 직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른 고객 응대 근로자 보호처럼 언론사가 소속 기자의 온라인 괴롭힘에 반드시 조치해야 할 의무가 있는 건 아니다. 다만 2001년 대법원 판례에 따라 기본적으로 사용자에게는 근로계약에 수반되는 부수적인 의무로 노동자의 건강을 해치지 않게 할 보호 의무, 안전배려 의무는 있다. 국내 여러 언론이 도입한 젠더데스크처럼 온라인 안전 데스크도 만든다면 경험 많고 저널리즘에 이해가 깊은 사람이 역할을 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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