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말한다. “영남에 맛있는 요리가 있어?” 때론 이런 말도 덧붙인다. “거긴 한국에서 제일 먹을 게 없는 도시들이야.” 과연 그럴까? 호남에서 4년, 서울에서 18년, 나머지 시간을 영남에서 살고 있는 필자로선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뭔가 말하고 싶은 열망에 몸이 들썩거린다. 이번에 시작하는 연재 <역사와 스토리가 있는 영남 음식>은 그런 이유에서 발원한 졸고다. [편집자 주]
가장 먼저 세상을 떠도는 잘못된 정보 하나를 수정하고 가자.
다리를 쭉 펴면 가로 길이가 60~70cm를 넘나드는 대게. 경상북도 울진과 영덕, 포항 구룡포는 물론 강원도 바닷가 마을에서까지 ‘비싸지만 귀하고 맛있는 먹을거리’로 대접받는 대게는 다른 갑각류에 비해 몸피가 크다.
그래서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대게’는 커다란 크기 탓에 대게라고 불린다고 착각한다. 한자인 대(大)가 ‘게’자(字) 앞에 쓰인 것으로 이해한다는 이야기. 하지만, 그건 틀렸다.
대게는 길쭉한 다리가 대나무의 마디와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니, 대게 앞에 붙는 ‘대’자는 ‘클 대’자가 아닌 ‘대나무 죽(竹)자’다. 허니, 대게를 ‘죽게’라 불러도 “어, 그건 틀렸는데”라고 말할 사람은 없다. 아는 사람은 이미 다 안다.
영어를 사용하는 국가에서도 대게와 유사한 것들이 잡힌다. 푸른 눈동자와 금빛 머리칼을 가진 그쪽 어부들은 대게를 ‘스노우 크랩(Snow crab)’이라 칭한다. 눈보라 치는 차가운 바다에서 잡히는 게라는 뜻일 터. 알다시피 한국의 동쪽 바다도 물이 차갑다.
21세기 한국엔 부자가 많다. 아직은 다수가 아니겠지만 “그게 맛만 있다면 나는 먹는 데 돈 아끼지 않는 사람”이라 호언하는 자칭 미식가도 하루가 다르게 늘어 간다.
대게로 만든 요리 중 값싼 건 드물다. 앞서 언급했듯 ‘혀에 감기는 비싼 별미’가 대게니까.
움직임이 활발하고 살이 단단해 ‘박달대게’라 불리는 건 다리에 원산지 표시를 매달아 한 마리에 20만 원을 호가하기도 한다. 서민이 자주 맛볼 수 있는 가격은 아니다.
어쨌건 경북 동해안 일대엔 대게를 회 치거나, 찌거나, 굽거나, 이런저런 채소를 더해 끓인 요리를 파는 식당이 흔하다. 맛있다고 입소문이 난 가게 앞엔 주말마다 관광객이 만들어내는 긴 줄이 생겨나기도 한다. 도로변에 서서 달리는 자동차를 향해 “어서 우리 가게로 오세요”라며 손을 흔드는 호객 행위도 만만찮다.
맛있는 걸 감각하는 즐거움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었던 걸까? 대게는 고려의 성리학자 목은 이색(李穡·1328~1396)도 감탄하며 먹었다고 전해진다.
포은 정몽주와 야은 길재의 스승이기도 했던 점잖은 대학자가 겨울날 거친 물결치는 바다에서 아랫것들이 잡아 온 대게의 다리를 들고 ‘쪽쪽~’ 고소한 속살을 빨아 먹는 모습을 상상하면 절로 미소가 그려진다.
이색은 대게를 소재로 시(詩)까지 썼다. 그의 작품 <잔생(殘生)>은 ‘서쪽 바다 등 푸른 생선은 얼마든지 구할 수 있으나, 동해의 대게는 어지간해선 맛보기 어렵구나’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맞다. 동서고금 먹지 않고 사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그게 중국에까지 이름을 떨친 주자학의 대가(大家)라 할지라도. 이색의 경우엔 ‘대가’가 ‘대게’를 먹었으니 책할 이들도 없을 것 같다. 700여 년 전 고려 시대에 잡힌 대게는 21세기 대게와 맛이 달랐을까? 나도 궁금하고, 우리 모두 궁금하다.
여러 방식으로 조리가 가능한 대게지만, 수십 년 이상 대게 요리를 손님들에게 대접해 온 경북 동해안 식당 주인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대게 찜이 최고”라고.
자, 그러면 어떻게 해야 더 맛있게 찔 수 있을까? 아래 30년째 대게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주인장에게 얻어낸 답을 살짝 공개한다. 집에서 찜통 위에 대게를 올릴 때 참고하시길.
“일단 솥에 담을 때 대게가 물에 닿지 않게 하세요. 끓는 물과 대게가 직접 닿으면 물기가 살 속으로 파고들어 내장이 흘러버리니까요. 고구마를 찔 때처럼 대게를 올린 채반과 물 사이에 일정한 거리를 두고 쪄야 보다 맛있게 됩니다. 1kg짜리 대게를 찌는 시간은 20~25분이 적당해요. 배가 위로 향하게 해서 쪄야 하는 걸 절대 잊지 마시고.”
[필자 소개] 홍성식
<역사와 스토리가 있는 영남 음식> 연재를 이어갈 홍성식은 1971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중·고교 시절. 영어 단어와 수학 공식을 외우라는 교사의 권유를 거부하고, 김지하와 이성부의 시를 읽으며 ‘미성년자 관람 불가’ 영화를 보러 극장에 드나들었다. 그 기질이 지금도 여전해 아직도 스스로를 ‘보편에 저항하는 인간’으로 착각하며 산다. 노동일보와 오마이뉴스를 거쳐 현재는 경북매일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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