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은 나갔는데… '박장범 KBS' 내홍 여전

[취재·제작 등 자율성 침해 계속]
사내게시판서 기자들 성토 이어져
"계엄·탄핵 정국서 무기력한 모습…
국민 신뢰 되찾을 고민 하고있나"

  • 페이스북
  • 트위치

“계엄과 탄핵 정국을 무력하게 보낸 KBS가 앞으로 열릴 새로운 사회에서 국민의 신뢰를 찾아오기 위해 보여줘야 할 모습은 어떤 것인지 보도국 수뇌부들도 깊은 고민과 반성을 하고 계셨으면 좋겠습니다.”


한 KBS 기자가 7일 사내게시판에 “우리의 지난 4개월은 무엇이었냐”고 물었다. 그는 사회부 법조팀에서 자신을 포함, 동료들이 겪은 지난날에 대해 “어렵게 물어 온 단독 하나 내보내는 것도 온갖 용을 써야 가능했고 상식적인 리포트 발제는 번번이 무시되었으며 조금이라도 비판적인 표현은 나노 단위 수준으로 들어내지는 날들”이었다며 계엄, 탄핵 관련 부실 보도가 반복됐던 과정 속, 기자들이 느꼈던 자괴감과 분노를 드러냈다.

지난해 12월 박장범 사장 취임 이후 KBS의 취재 제작 자율성 침해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사진은 박장범 당시 KBS 사장 후보자가 지난해 11월18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12·3 비상계엄을 일으킨 대통령은 파면됐지만, 그 대통령이 임명한 박장범 사장 체제 KBS 내부의 혼란은 여전하다. 특히 지난해 12월10일 박 사장 취임 이후 약 4개월 동안 사측의 취재·제작 자율성 침해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공정보도를 위한 단체협약 내용인 국장 임명동의제 삭제 요구에 단체협상 결렬, 이어진 노조 창구단일화 무산까지 노사 갈등 또한 끊이지 않고 있다.


비상계엄을 다룬 KBS 보도, 시사프로그램의 수난사는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에도 이어지고 있다. 가장 최근엔 KBS ‘시사기획 창’(창)의 <계엄군: 항명과 복종> 편 내용이 방송도 전에 극우 언론단체에 유출된 정황이 드러났고, 이후 이재환 보도시사본부장과 김철우 시사제작국장의 결정으로 프로그램 방영마저 연기돼 유출자 조사와 징계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의 7일 성명에 따르면 보수 성향 언론단체인 대한민국언론인총연합회는 1일 성명에서 제목과 내용이 외부에 공개된 적 없는 ‘창’의 해당 편을 언급하며 8일 방영 일정이 미뤄졌다고 했다. 당시 제작진도 알지 못했던 사실이었다. 이 성명 발표 이후 실제로 해당 방송은 22일로 미뤄졌다. KBS본부는 “누군가 KBS 보도 프로그램의 신뢰성을 훼손하고, 방송에 영향을 주기 위해 관변 극우 언론단체에 정보를 흘린 게 아닌지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하지만 사측은 해당 문제에 대해 아직 어떠한 설명도 없는 상태다.


앞서 1월에도 ‘창’ 제작진의 제작 자율성 침해 논란이 있었다. <대통령과 우두머리> 편을 제작한 기자들은 방영 직전까지 이재환 본부장으로부터 수차례 ‘방송 불가’ 압박과 함께 제목 끝 ‘혐의’ 추가, ‘파우치’ 발언 부분 삭제 등 프로그램 내용에 대한 수정·삭제 지시를 받았다고 성명을 통해 폭로한 바 있다.


부정선거 음모론의 생성·유포 과정을 파헤치고 모든 게 조작이었다는 당사자 실토까지 끌어냈던 ‘추적60분’ <계엄의 기원> 편은 아예 방영이 무산될 뻔했다. 2월28일 방송 하루 전 사측은 해당 방송이 극우단체를 자극할 수 있다는 납득할 수 없는 이유를 들어 방송 순연을 통보했다. 제작진 일동 성명과 KBS PD협회 성명, 사내 곳곳에서 진행된 긴급 피케팅 등 거센 내부 반발 끝에 해당 편은 겨우 방송될 수 있었다. 명백한 제작 자율성 침해 사안인데도 사측은 PD협회의 긴급TV위원회, KBS본부의 임시공정방송위원회 개최 요구에 “편성 책임자의 고유 권한인 방송 편성권에 해당”하는 사안이라는 이유로 거부했고, 매월 진행돼야 할 정기 공정방송위원회마저 사측의 안건 거부로 지난해 12월 이후 열리지 않고 있다.


박 사장은 취임 직후 KBS 방송편성규약에 명시된 국장 임명동의제를 무시한 채 보도국장 등 임명을 강행하기도 했다. 전임 박민 사장 체제에서도 사측은 단체협약상 임명동의제 삭제 등을 요구한 바 있는데, 이로 인한 단협 결렬, 무단협 상황은 현재 진행형이다. 이 와중 사측은 또 다른 KBS 노조인 KBS노동조합이 신청한 개별교섭을 받아들이면서 KBS 내 각 노조는 저마다 사측과 교섭을 벌여야 하는 상황이 됐다. KBS본부가 교섭대표노조가 된 후 처음으로 노조 창구 단일화가 무산된 건데, 이에 KBS본부는 “사측의 특정 조합에 대한 탄압과 차별의 시작이 되는 건 아닌가 의심할 수밖에 없다”며 “교섭대표노조가 사라지는 건 사측의 부당한 결정을 제지할 힘이 약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고 일갈했다.


박상현 언론노조 KBS본부장은 “다음 주 개별적으로 단체협약 교섭을 위한 킥오프가 열리는데 사측은 임명동의제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이어 보도본부의 현재 보도 기조에 대해선 “예전처럼 아예 방송 불가라든지 전면적으로 손질을 하는 등의 문제는 없는 상황”이라면서도 “보도의 중심이 조기 대선으로 쏠려있는데 여전히 내란 관련해선 축소하려는 경향이 있어 저희도 그때그때 문제가 되면 대응하려 한다”고 말했다.

박지은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배너

많이 읽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