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제 기능 잃은 방통위, 정치독립 정상화해야"

초유의 2인 파행운영, 한계 드러나
언론시민사회 "공공성 강화 개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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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후 언론·시민사회단체가 차기 정부에 한목소리로 요구하는 건 ‘방송통신위원회 전면 개편’이다. 2008년 방통위 출범 이후 역대 정권마다 방통위의 위원장·위원의 자격 논란, 정치적 중립성, 공정성에 대한 비판은 지속돼 왔다. 이에 더해 윤석열 정부에선 5인 합의제 기구인 방통위가 대통령이 임명한 위원 2인으로만 파행 운영되는 초유의 상황이 이어지며 그 한계가 극명하게 드러났다.

8일 언론장악저지공동행동은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언론계 사회대개혁 과제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공동행동은 현 방통위 체제에 대해 “기구 개편을 통해 미디어 공공성 강화의 제도적 기반을 다져야 한다”고 밝혔다. /언론노조 제공

“윤석열 정부에서 합의제 기능을 상실한 방통위를 이대로 두어서는 안 되며 정부 조직을 개편함으로써 방통위 2인 체제를 해소하고, 미디어 정책 체계를 바로 세워야 한다”(8일 언론개혁시민연대 논평), “국회와 새 정부는 방통위가 제 역할을 할 수 있게 기구 개편을 통해 미디어 공공성 강화의 제도적 기반을 다지라”(8일 언론장악저지공동행동 기자회견)는 목소리가 분출되는 이유다. 다만 이번 조기 대선을 통해 출범할 정부가 인수위원회 없이 곧바로 국정을 시작하게 되면서 이번에도 미디어·방송 기구를 제대로 개편할 기회를 놓치는 것은 아닌지 우려도 나온다.


윤석열 정부 시기 방통위는 그야말로 정쟁 한복판에 놓인 부처였다. 공영방송 이사 해임 및 선임, 방송사 최대주주 변경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을 처리하는데 ‘2인 체제’ 의결 논란까지 더해지면서 그 갈등은 극대화됐다. 윤 전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이 추천한 방통위원 후보를 임명하지 않으면서 시작된 문제였다. 국회 추천 몫 방통위원 3인이 공석인 상태에서 대통령이 임명한 위원장, 부위원장 2명만으로 의결을 밀어붙인 건 방통위 출범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 ‘2인 체제 의결 위법성’ 논란을 두고 국회의 이진숙 방통위원장 탄핵 소추가 이뤄졌고, 국회 몫 위원 추천도 연기되며 여야 힘겨루기만 이뤄졌다. 또 방송사, 공영방송 이사진 등이 방통위를 상대로 제기한 법적 공방이 이어지며 혼돈은 계속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글로벌 OTT와 국내 OTT 간 규제 형평성 등 산업적 위기를 직면한 방송·통신 현안에 대한 정책 마련은 실종된 상황이다.


이번 방통위를 둘러싼 논란, 한계에 대해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장은 “정치적 독립성이 훼손되는 것을 넘어 어떤 특정 정치 세력과 정파가 방통위원들과 거의 일치하는 형식으로까지 나아갔다고 본다. 방통위원 본인이 정치적 중립과 방송 독립성을 수호해야 된다는 어떤 의식조차 사라져버린 상황”이라며 “다수결 원리가 아니라 힘으로 밀어붙이는 구조가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역대 정부에서 방통위의 과잉 정치화, 전문성 문제에 대한 언론계·학계의 비판은 계속돼 왔다. 특히 문재인 정부 시절 각종 학회, 미디어정책논의기구 등을 통해 방통위 조직 개편 방안이 제시돼 왔지만, 정부 입법까지는 매번 좌초돼 왔다. 이번에야말로 정부 조직 개편으로 방통위 구조를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공통적으로 나온다. 방통위·과학기술정보통신부·문화체육관광부 등으로 분산된 미디어 관련 정부 조직을 아예 다시 손 봐야 한다는 것이다.


김동원 전국언론노동조합 전문위원은 “2013년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현재까지 방통위는 지상파·종편·보도전문채널, 이용자 권리 보호 등의 부분으로만 상당히 좁혀져 있는 규제 기구다. 글로벌 미디어 자본이 들어와 있는 현재 시장 상황에도 전혀 맞지 않는 체제”라며 “정치적인 논쟁을 피하기 위해 방통위원 추천 주체를 바꾸자 등의 안만 나오고 있는데 방통위가 언론 통제 기구가 됐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것만 가지고서 현재 방통위 위상, 규제 문제를 보면 너무 근시안적이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차기 정부가 인수위 없이 출발을 해야 하는 상황인데 이 과제들이 문재인 정부 출범 상황과 똑같다”며 “그때도 정부조직개편을 못했다고 한다면 지금은 어떻게 될지가 문제인데, 국회 안에서의 합의가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도 미디어, 콘텐츠 분야 정부 조직 개편에 대한 종합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 교수는 “‘독임제로 만들자’ 이런 얘기가 있는데 방송의 공적 기능이 있으니 그건 아니라고 본다. 수신료위원회 같은 시청각 매체에 대한 공적 기능을 담당하는 내부 위원회를 만드는 식으로 전반적인 재조정이 필요하다”면서 “하지만 과거 어떤 정부도 이런 작업을 추진할 정치적 역량이 없었고, 정쟁만 일삼아 왔다”고 질타했다.


‘2인 의결 위법성’ 문제가 윤 정부 방통위에서 새롭게 대두된 상황에서 ‘예방적 금지 소송 도입’에 대한 필요성도 제기됐다. 이희영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미디어언론위원장은 “법원에서 2인 체제 의결이 위법하다는 판단들이 나오더라도 사후적으로 각각의 건에 대해서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판결이고 그러다 보니 방통위원장은 자기 뜻대로 계속 밀고 나가는 방식이 계속되고 있다”며 “이제 행정법을 바꿔야 하는 얘기인데, 행정소송에서 처분에 대해 사전적으로 위법 소지가 있을 경우, 예를 들어 앞으로 2인 체제에선 의결하지 못하게 하는 식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윤 전 대통령 파면 이후에도 이진숙 위원장은 방통위 2인 구조에서 MBC 등 지상파 재허가 심사 절차를 강행하고 있어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국회 추천 몫 위원 3인 공석 상황도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10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현 민주당 간사는 대통령이 현재 없는 상황에서 정당의 위원 추천을 두고 해석이 필요하다며 입법조사처에 조사 의뢰를 하겠다고 밝혔다. 방통위법엔 위원 5인 중 3인은 국회가 추천해 대통령이 임명하는데, 대통령이 소속되거나 소속되었던 정당의 교섭단체가 1인을 추천하고 그 외 교섭단체가 2인을 추천하기로 명시돼 있다.


김현 의원은 이날 전체회의에서 “현재 시점에서 대통령이 존재하지 않아 여야가 없는데 어디서 추천해야 하는지 유권해석 등이 필요하다”며 “현재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의 헌법재판관 지명 자체에 불법 소지가 있다고 해 권한쟁의 신청이 들어갔는데 마찬가지다. 이런 논란을 없애기 위해 조치를 취한 뒤 추천을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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