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혜 진술 석연찮다"… 흐름 바뀐 '바이든-날리면' 항소심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되자 4개월 만에 속행
이재명 전 부대변인 증인채택 가능성
일단 조정회부… MBC, 거부 입장
윤석열 전 대통령이 조 바이든 전 미국 대통령을 두고 비속어를 썼다는 MBC 보도에 대한 정정보도 항소심에서 재판부가 대통령실 홍보수석을 지낸 김은혜 국민의힘 의원 진술의 신빙성을 낮게 평가했다. 추가 심리를 위해 증인 채택이 이뤄지면 MBC가 패소한 1심 결과가 뒤집힐 가능성도 있다. 재판부는 일단 사건을 조정에 부치기로 했다.
서울고등법원 제13민사부(재판장 문광섭)는 11일 외교부가 MBC를 상대로 제기한 정정보도 청구소송 항소심 네 번째 변론기일을 열었다. 12·3 비상계엄 이후 재판이 두 차례 연기되면서 4개월 만에 속행했다. 당초 재판부는 김은혜 의원의 진술서만 받아 본 뒤 심리가 충분하다고 보고 선고를 예고했었다. 김 의원에 대한 증인 신청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날 재판부는 이전과 달리 김 의원의 진술을 믿기 어렵다고 했다. 문광섭 부장판사는 외교부 측에 “저도 궁금한데 발언 직후 대통령 본인에게 확인을 제대로 한 게 맞느냐”며 “확인했다는 주장을 받아들여야 하는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지난해 10월 4쪽 분량 진술서를 제출해 윤 전 대통령이 말해주길 자신의 발언은 ‘날리면’이었다고 했다고 주장했다.
문 부장판사는 “김 의원 진술 내용과 대응 과정이 석연치 않다”고 말했다. “아니면 아니라고 해야 했는데 언론에 확인도 부인도 하지 않은 채 ‘외교 문제’라면서 보도를 막으려고만 한 게 아니냐”며 외교부 측에 답변을 요구했다. 또 “대통령실은 음성 감정은 어느 전문가에게 어떻게 확인해서 어떤 결과가 나왔느냐”며 구체적으로 추궁하기도 했다. 재판 방향이 갑자기 달라진 것이다.
MBC 측은 김 의원 주장대로 2022년 9월 미국 순방 중 윤 전 대통령 본인에게 발언을 직접 확인한 것이 정말이라면 언론 대응도 수월했을 텐데 왜 공식 입장 발표까지 10시간이나 걸렸고, 굳이 외부의 음성 감정까지 받아야 했느냐며 해명을 요구해 왔다. 대통령실은 그동안 야당의 요구에도 자체 음성 감정 결과를 공개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추가 심리를 위한 증인 채택 가능성도 내비쳤다. 문 부장판사는 “이재명 전 대통령실 부대변인이 법정에 나와서 음성 감정 결과가 어땠는지 속 시원히 밝혀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MBC 측은 지난해 11월 그를 증인으로 신청했다. 이 전 부대변인은 윤 전 대통령 음성 감정을 의뢰했고 바이든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고 밝힌 당사자다. 지금은 법률신문 부사장을 맡고 있다.
외교부는 대통령 본인의 발언을 왜 외부기관에 확인받아야 했는지에 대해 “언론에 발표해야 하니 제3자의 객관적 판단은 당연히 거쳐야 했다”고만 답했다. 재판부는 증인 채택을 보류하고 변론절차도 멈춰 조정을 거치기로 했다. 문 부장판사는 “역지사지로 해결하면 윈윈(상생)할 수 있을 것”이라며 “서로 이해해서 양보하라”고 말했다. 조정기일은 다음 달 27일로 정했다.
MBC 측은 조정에 임할 의사가 없는 상태다. 윤석열 정부가 비속어 보도를 문제 삼으면서 같은 해 11월 MBC의 대통령 전용기 탑승을 거부했고, 보수단체의 잇따른 고발로 기자들이 수사받는 등 일방적으로 피해를 봤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MBC 측은 윤 전 대통령을 대신해 외교부가 소송을 제기하는 것부터 문제라고 본다. 애초 재판이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조정에서 재판부는 타협안을 제시할 수 있다. 어느 한쪽이 조정을 거부하면 변론 절차는 재개된다. 추가 심리가 이뤄지면 1심과는 다른 결과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 항소심 재판부는 윤 전 대통령 발언이 어떻게 들리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말했는지 확인하자며 재판을 진행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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