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파면된 윤석열 전 대통령은 탄핵 심판 내내 12·3 비상계엄으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은 경고용이었을 뿐 실질적인 피해가 없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오히려 경비, 질서 유지를 하러 간 군인이 시민에게 폭행당했다”고까지 말했다.
하지만 아무 일도 없지 않았다. 그날 계엄군은 언론인 한 명을 체포했다. 국회에 들이닥친 계엄군을 가장 처음 목격한 유지웅 뉴스토마토 기자다. 케이블타이로 양손을 묶으려 했지만 강하게 저항했고 계엄군의 관심이 의사당 정문으로 집중된 탓에 금방 풀어줬을 뿐 계엄군은 10분 동안이었지만 그를 분명히 체포했다.
유 기자는 “손이 묶이려는 순간 사살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광주가 떠올랐어요. 계엄군이 몽둥이로 시민을 패고 다른 시민들은 꿇어앉은 장면이요. 광주에서 세월이 얼마나 흘렀는데…. 저를 왜 체포하는지조차 말해주지 않았는데 그럼 총으로 쏴도 이유가 없어도 된다는 것이었을까요?”
계엄 당일 밤 11시50분쯤 육군 특수전사령부 707특수임무단은 헬기 세 대에 나눠 타고 국회 운동장에 내렸다. 군 복무 때 항공기 관측 업무를 한 유 기자는 군 투입을 직감하고 달려갔다. 곧이어 의사당 오른편에서 마주친 계엄군은 촬영 중이던 그에게 달려들어 휴대전화를 빼앗고 사지를 붙들어 벽에 밀어붙였다.
급작스러웠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유 기자는 “찍지 말라고 경고 정도는 해줄 줄 알았다”며 “아무리 반국가 세력을 척결하겠다고 했지만 설마 우리 군이 민간인을 해치진 않겠지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충격이 너무 컸던 나머지 그날 일을 잘 기억하지 못할 정도였다.
주변에서도 체포됐었다는 그의 말을 선뜻 믿지 못했다. 국회에서 체포 장면이 담긴 CCTV 영상을 넉달여 만인 1일 뒤늦게 제공받고서야 기억보다 상황이 심각했음을 깨달았다. 유 기자는 김현태 전 707특임단장을 직권남용체포와 특수폭행 등 7개 혐의로 고소했다. 취재를 막았으니 업무방해 혐의도 포함했다.
계엄군은 계엄지역 안에서 체포 권한을 갖지만 헌법재판소는 윤 대통령 탄핵 결정문에서 국회가 계엄지역에 포함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유 기자 체포도 자연히 불법이 된다. 김 전 단장은 2월6일 헌재에 나와 케이블타이는 단지 출입문을 묶는 용도였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위증일 수 있다.
계엄군은 당시 MBC 취재진도 사다리를 뺏고 촬영을 방해하며 위협했다. 김 전 단장이 국회 투입 전 어떤 지시를 내렸는지는 밝혀져야 할 부분이다. 유 기자는 “해명을 들으려 김 전 단장을 취재했는데 통화하지 않겠다고 했다”며 “체포 지시는 한 적이 없다면서 부대원들을 명령을 어긴 사람으로 만들 건지 그들을 위해서라도 무슨 말이라도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계엄 ‘피해자’로서 유 기자는 비판적 보도를 범죄로 금지한 계엄포고령에 대해 헌재가 “국민의 비판을 원천적으로 배제하기 위함으로 국민주권주의와 자유민주적 질서를 위반했다”고 평가한 대목을 눈여겨봤다. “자유민주주의의 자유는 독재자의 자유가 아니라 시민의 자유”인 점을 상기해 줬기 때문이다. 그는 “언론의 자유도 시민을 위한 자유여야 의미가 있다고 배웠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시 계엄군 헬기를 본다면 뛰어갈 거냐는 질문에 유 기자는 그렇게 할 거라고 답했다. “그때 기자로서도 그렇지만 시민으로서 막아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어요. 제가 찍고 안 찍고, 감시하고 안 하고는 차이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날 계엄군이 쉽게 행동하지 못했던 이유도 수많은 시민이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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