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전쟁, 달러, 지정학적 후폭풍

[이슈 인사이드 | 국제·외교] 금철영 KBS 국제부 기자

금철영 KBS 국제부 기자.

트럼프 발 관세전쟁이 시작됐다. 나라별 상호 관세는 보복관세다. 필연적으로 상대의 반발과 대응을 초래한다. 치열해지면 무역분쟁의 범주를 넘어설 수도 있다. 1920년대 대대적 관세 인상이 대공황을 심화시켰다는 얘기가 또다시 회자하는 이유다. 불황이 가져온 경제적 곤경과 혼란 속에서 극단주의 세력이 성장했고 2차대전이 일어나기까지 국제질서는 혼돈 속으로 빠져들었다. 미국발 관세전쟁의 여파를 주의 깊게 봐야 할 이유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은 상호 관세 시행에 ‘연기는 없다’고 했다. 그런데 정작 트럼프 대통령은 베트남 등을 언급하며 협상의 여지도 내비친다. 전 세계를 충격에 빠지게 한 당사국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파악이 쉽지 않은 형국이다. 트럼프는 ‘이게 협상력’이라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결과는 뻔하다. 불확실성이 증가하면 금융시장은 요동친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모습이 그렇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관세전쟁으로 받는 타격은 미국도 크다. 단기적으론 피해가 제일 클 수도 있다. 관세 인상은 수입 물가 인상으로 이어져 인플레이션 위험을 높인다. 파월 미 연준의장이 금리를 낮추라는 트럼프의 요구를 거절한 이유다. 소비 의존도가 높은 미국 경제는 매우 탄력적이다. 대규모 고용도 쉽지만, 대량 해고도 쉽다는 얘기다. 수입 물가가 높아져 제품 가격이 인상돼 소비가 줄면 기업도 매출이 줄고 위태로워진다. 자동차 회사 스텔란티스는 상호 관세 발표 뒤 미국 공장서 900명을 해고했다. 그런데도 트럼프는 왜 관세전쟁에 집착하는 것일까.


큰 그림과 의도는 어느 정도 읽힌다. 관세를 무기로 한 무역 불균형 및 재정적자 해소, 제조업 부활 등이다. 성공하면 다시 세계 공급망의 중심에 서고 중국도 견제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그렇게 하려면 수출도 잘 돼야 한다. 그런데 현재의 ‘강달러’는 불리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관세 정책과 함께 ‘달러의 약세’를 유도하는 정책이 추진될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가 40대이던 1987년에 ‘강달러’가 미국 제조업을 망치고 있다는 취지의 주장을 뉴욕타임스에 광고로 싣기도 했다. 그를 다시 주인으로 맞이한 백악관에서는 ‘약달러’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스티븐 미런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이 대표적이다.


그는 지난해 작성한 보고서에서 1985년 ‘플라자 합의’처럼 무역 불균형이 심한 나라들을 상대로 강력한 환율협상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플라자 합의’로 인한 급격한 엔화의 강세는 이후 일본의 자산 버블과 붕괴, 정부의 미흡한 대응 등과 맞물려 이른바 ‘잃어버린 30년’의 한 원인이 됐다. 원인 제공의 경중을 넘어 인위적인 약달러 정책이 특정 국가에 어떤 결과를 미쳤는지 보여주는 강력하고 상징적인 예다.


다만 전통적으로 강달러를 선호해온 미 재무부와 월스트리트 등 금융가의 견제, 그리고 달러 패권 상실에 대한 우려 등으로 미국 정부가 향후 달러의 방향성에 어떤 확고한 입장을 취할지 예단하긴 아직 이르다. 그러나 미국발 관세전쟁과 달러 정책의 혼란, 국제질서의 약화와 불확실성의 증대라는 거대한 파고가 우리 앞에 닥쳐오고 있음은 분명하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환율 변동성 확대에 따른 도전은 물론 지정학적 위기로 비화할 가능성까지 주의 깊게 지켜봐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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