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시대, 저널리즘 생존과 공존 위한 정책 패러다임 전환

[언론 다시보기] 임석봉 다이렉트미디어랩 대표

임석봉 다이렉트미디어랩 대표.

지난 몇 달간 글로벌 뉴스 산업은 인공지능(AI) 기술을 둘러싸고 숨 가쁜 변화를 이어가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자체 개발한 AI 도구 ‘Echo’를 뉴스룸에 공식 도입하며 콘텐츠 요약, 검색 최적화(SEO), 인터뷰 질문 추천 등 일부 업무에 AI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콘텐츠 무단 학습 논란으로 오픈AI 및 마이크로소프트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매체가 이제는 AI를 현업에서 배제할 수 없는 파트너로서 받아들이고 있다는, 중요한 전환점이다.


그러나 뉴욕타임스는 AI 활용에 명확한 원칙을 세웠다. AI가 기사 초안을 작성하거나 핵심 내용을 대폭 수정하는 행위는 엄격히 금지했다. 대신 기사 편집 제안, 인터뷰 질문 추천, 소셜미디어 홍보 콘텐츠 작성 등 기자의 창작을 보조하는 범위 내에서 AI를 제한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는 기술 도입과 저널리즘 윤리 사이에서 균형을 모색하는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UTA(United Talent Agency)의 멀티플랫폼 전략과 ProRata.ai(프로라타닷에이아이)의 5대5 저작권 계약은 눈여겨볼 만하다.


UTA는 저널리스트들에게 ‘멀티플랫폼’ 전략을 강조한다. 더 이상 전통 방송에만 의존하지 말고,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영향력을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UTA 뉴스 부문 대표 마크 패스킨(Marc Paskin)은 전통 미디어에서 활동하는 기자는 물론,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등 디지털 플랫폼에서 팬층을 보유한 저널리스트들 역시 중요한 자산이라고 강조한다. 이들을 통해 새로운 뉴스 포맷과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스트리밍과 디지털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기존 뉴스 역시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를 병행해 전략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편, 생성형 AI 기반 미디어 스타트업인 프로라타.ai는 AI가 사용하는 뉴스 콘텐츠에 대해 출처를 명확히 표기하고, 수익의 절반을 원저작자에게 배분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를 통해 유니버설 뮤직 그룹(Universal Music Group), 파이낸셜 타임스(Financial Times), 악셀 슈프링거(Axel Springer), 포춘(Fortune), 애틀랜틱(The Atlantic) 등 세계 유수의 미디어 및 엔터테인먼트 기업들과 콘텐츠 라이선싱 계약을 체결했다. 프로라타.ai는 자체 개발한 Gist.AI를 통해 △API 라이선스 수익 △광고 기반 수익 △B2B 프리미엄 구독형 요약 콘텐츠 서비스 수익 등 세 부문의 수익을 발생시키고, 이를 콘텐츠 제공자인 미디어 기업에 50%를 배분하는 방식으로 저작권 계약을 체결했다. 이는 AI와 언론이 공존할 수 있는 생태계 구축 가능성을 실질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현실은 이와는 거리가 있다. 지난해 12월 국회를 통과한 ‘인공지능 기본법’은 늦게나마 AI 정책의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만, 여전히 시행령은 미비하고, AI 학습 과정에서의 저작권 보호나 콘텐츠 수익 배분 체계에 대한 논의는 시작조차 되지 못한 상황이다. 뉴스 콘텐츠에 대한 데이터베이스 구축, 저작권자 식별 시스템, 공정한 보상 기준 등 핵심 과제들은 사실상 공백 상태다.


이러한 글로벌 트렌드 속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첫째, AI 학습 데이터의 투명성과 저작권 보호를 병행하는 법제화가 시급하다. 프로라타.ai 사례처럼, 창작자나 언론사와 계약을 체결하고 공정한 보상을 전제로 학습 데이터를 활용하는 방식이 제도화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 언론 단체, 기술 기업 간 협의체를 구성해 표준계약서 마련과 보상 기준 설정에 대한 논의를 본격화해야 한다. 아울러 AI 기반 기사 작성 및 편집 도구의 활용에 대한 저널리즘 윤리 가이드라인도 병행해 마련할 필요가 있다.


둘째, 멀티플랫폼 전략을 뒷받침할 수 있는 미디어 산업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단지 TV 뉴스에 의존하지 않고, 팟캐스트, 유튜브, 뉴스레터, 커뮤니티 플랫폼 등을 활용한 콘텐츠 다각화를 통해 새로운 수익 모델과 독자 기반을 확장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개별 기자들의 생존 전략을 넘어, 전체 미디어 산업의 지속 가능성과도 직결되는 문제다.


AI의 등장은 저널리즘에 위기가 아닌 기회가 될 수 있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기술 중심의 서비스 도입 우선 정책이 아닌, 사람 중심의 이용 원칙과 공정한 보상 체계가 함께 구축되어야 한다. 새 정부가 들어서기까지 채 두 달도 남지 않았다. 기술과 윤리, 저널리즘이 함께 나아가는 길을 준비해야 할 시점이다. 그래야만 AI시대의 저널리즘이 쇠퇴가 아닌 진화의 길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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