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 지역을 휩쓴 산불이 약 열흘 만인 3월30일 모두 진화됐다. 8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서울 면적의 80%가 영향 구역에 든 역대 최악의 산불이었다. 발로 뛰며 현장을 시시각각 전했던 기자들로부터 직접 전해들은 참사는 가히 전례 없는 재난이라 할만했다. 대규모 산불 위험이 커졌다는 진단 가운데 향후 산불 대응체계와 조림정책, 재건 측면에서 당국과 언론의 할 일이 적지 않은 상황이다.
3월21일 경남 산청에 이어 22일 경북 의성에서 산불이 번지자 언론에선 해당 지역으로 기자들을 잇따라 파견했다. 3월25일 오전 의성 도착으로 취재를 시작한 성동훈 경향신문 사진기자는 이날 오후 안동으로 이동하던 차에서 불똥이 무더기로 들이닥치는 일을 겪었다. 참혹한 현장을 접한 경험이 많은 사진기자는 “처음으로 ‘이러다 죽겠다’ 싶었다. 길을 찾아 두 시간 가량 국도를 왔다갔다 했는데 다 불바다였다”고 전했다.
성 기자는 “불만 신문 1면에 며칠째 나오는 자체가 이례적이다. 화재가 끌날 때쯤 도착해 꺼질 때까지 보고, 피해상황이나 합동분향소, 과학수사대를 찍는 식으로 이어지는 게 일반적인데 이번엔 사이클 밖”이라고 했다.
부산지국에서 근무하는 홍승연 SBS 기자도 3월23일 경남 산청에 파견됐다. 현장본부가 마련된 시천면을 중심으로 산청군, 하동군 일대를 커버하며 약 2~3시간 간격으로 하루 7~8차례 특보 현장연결을 담당했다. 홍 기자는 3월27일 통화에서 “진화율이 90%가 됐다가 다시 60%가 되며 꺼질 듯 꺼지지 않고 있다. 동시다발적이고 장기화되며 소방대원, 산림당국은 물론 취재진 모두 피로도가 매우 높아 단비만 기다리는 상황”이라며 “영문도 모른 채 집을 떠나온 이재민들로선 황망할 수밖에 없다. 당장 몸은 피했지만 앞으로 생업에 지장이 올 수 있어 우려된다”고 했다.
사태가 예상보다 장기화되고 피해도 커지자 언론은 취재인력을 늘리며 대응했다. 일례로 한국일보는 초반 전국부가 담당하다 사회부 사건팀 기자 6인을 영양, 안동, 영덕에 추가 투입했다. 지난해 8월 입사한 문지수 한국일보 기자는 3월27일 “어딜 가도 공기 자체가 탁하고 매캐하다. 잠깐 밖에 나갔다가 손을 닦았더니 비누로 손을 씻었을 때처럼 검댕이 묻어났다. 경험은 적지만 호텔 화재 등과 비교해 차원이 다르단 느낌”이라며 “이재민 중 어르신들이 많았는데 할머니한테 하듯 취재하고 있다. 협조를 잘해주시지만 조심스럽다”고 했다.
특히 경북 안동시는 이번에 불길이 삼면에서 들이닥치며 전 시민에게 대피령이 내려지는 초유의 사태를 겪은 곳이다. 대구경북 지역 언론사들의 경북본부, 안동지사 사무실이 몰려 있는 안동 지역 기자들은 2020년 산불 때도 불길이 넘지 못한 낙동강을 저지선 삼아 재난 현장을 취재했다. 피재윤 영남일보 기자는 “안동은 낙동강을 기준으로 강남과 강북이 나뉜다”며 “강남 지역은 의성에서 올라온 불길이 위협해 위험도가 높은 반면 강북은 안전한 편이다. 폭이 700m는 되고 여기에 강바람이 맞바람처럼 불어서 낙동강이 사실상 산불 저지선”이라고 말했다.
시내와 달리 안동 외곽은 2020년 산불 피해 면적을 훌쩍 넘어섰고 사망자까지 나올 정도로 피해가 극심했다. 지현기 대구신문 기자는 3월27일 “피해 면적이나 규모 면에서 비교가 안 된다. 안동 시내 역시 산불 연기로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암흑”이라고 말했다. 오종명 경북일보 기자도 이날 “5년 전엔 산불이 한 군데서 집중적으로 났고, 연기도 이 정도로 심하지 않았다”며 “이번엔 여러 군데서 불길이 안동 시내 쪽으로 오고 있다. 연기 역시 2020년과 비교해 매우 짙다”고 했다.
짙은 연기와 더불어 외곽지역에선 단전·단수, 통신 장애까지 발생해 취재 여건은 녹록지 않았다. 유상현 경북도민일보 기자는 “산불 현장 쪽으로 가면 통신 장애가 많이 일어난다”며 “일단 취재를 한 뒤 현장을 벗어나 기사를 쓰고 송고하고 있다. 현장이 워낙 참혹해 피해 주민들께 말을 걸기도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낮에는 연무 때문에 불이 어디 있는지 가늠할 수가 없다. 산불 상황을 취재하기엔 야간이 좋아 계속 새벽까지 일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불은 꺼졌지만 ‘재난 그 후’를 맞아 이재민의 일상 복귀를 위한 경북·경남 지역에 대한 언론, 정치권의 관심과 지원이 절실한 국면이다. 3월31일자 영남 지역 신문사들의 신문 1면 톱 기사 제목은 각각 ‘149시간만에 진화 고통은 이제 시작’(영남일보), ‘잿더미가 된 일상...생계도 복구도 ‘막막’’(경북일보), ‘“산불 대응 대전환 특별법 제정해야”’(경북신문), ‘149시간만에 진화된 산불, 서울 면적 3분의 2 불태웠다’(경북매일), ‘경북도 “산불 피해 복구·지원 특별법 제정” 건의’(대구신문), ‘10일만에 축구장 2600개 규모 잿더미로’(경남신문), ‘화마가 집어삼킨 삶의 터전 남은 건 한숨 소리뿐’(경남도민일보) 등이었다.
현재로선 피해 복구를 위한 추경안 등이 관건이지만 기후위기로 대형산불 위험이 커진 여건에서 진화시스템 개선, 침엽수 중심 산림구조 변경 등 근원적 대책 마련도 촉구되고 있다. ‘산불 끌 헬기·인력 턱없이 부족...“산림청→‘부’로 승격 필요”’(서울신문), ‘[사설] 사상 최악의 산불 교훈 삼아 진화시스템 대수술해야’(세계일보), ‘‘불쏘시개’ 침엽수 위주 숲가꾸기 사업, 산림청은 왜 귀닫고 있나’(경향신문), ‘비숙련·계약직 6070 진화 현장에 던져졌다’(한겨레21) 등은 대표적이다.
매일신문은 3월31일 1면 ‘잦아지고 강력해진 산불...진화 시스템 대수술을’ 기사 등을 통해 이번 재난이 기후위기, 산림구조, 인재의 합작이라 분석하며 “이번 산불이 돌발적 재난이 아니라는 점에서 향후 대비책 마련이 국가적 과제로 떠올랐다”고 강조했다. 매일신문은 특히 대응체계 개조와 관련해 “현재 산불 특수진화대는 400여명 규모로, 대다수가 무기계약직 인력으로 구성돼 전문성 확보가 어렵다. 헬기 역시 부족하고, 일부는 30년 이상 노후 기종”이라며 “산림청과 지자체, 소방이 각각 따로 움직이는 지휘체계도 문제로 손꼽힌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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