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호 EBS 사장의 첫 출근 시도가 EBS 구성원의 반발로 무산됐다. 27일 오전 8시36분 경기도 고양시 EBS 사옥 앞 주차장에 도착한 신 사장은 앞을 막아선 EBS 구성원 등 60여명과 2시간의 대치 끝에 내내 곁을 지키던 이준용 EBS 이사와 함께 차를 타고 되돌아갔다.
전날 방송통신위원회가 ‘2인 체제 의결’의 위법성을 확인한 대법원의 판결에도 신동호 사장 임명을 강행하자 전국언론노동조합 EBS지부는 곧바로 사장 출근 저지 투쟁을 진행했다. 임명 이튿날인 27일 EBS지부 조합원들과 언론장악저지공동행동은 ‘불법 낙하산 신동호를 거부한다’ ‘위법으로부터 EBS를 지켜내자’ ‘신동호는 집으로 돌아가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신동호 사장의 출근을 막아섰다.
대치 과정에서 신 사장은 “들어가서 대화 합시다”라고 말했으나, EBS 구성원은 “위법한 사장과는 대화할 수 없다”며 거부했다. 결국 신 사장은 도착한 지 2시간 만인 오전 10시32분 되돌아갔다. 차로 가던 중 신 사장은 기자들의 질의에 “지금 일방적 의사 표현이 있지만 쌍방이 대화 할 기회를 가져서 EBS를 위해 협의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다만 어떠한 경우에도 원칙과 상식을 벗어나는 부분에 대해선 동의할 수 없어 대응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2인 체제 방통위가 임명한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들의 선임 효력을 정지한 대법원 확정 판결을 두고 ‘그럼에도 이번 사장 선임이 적법하다고 주장하는 논리는 무엇인지’ 묻는 질문엔 신 사장은 “여러 판결이 많이 있기 때문에 어떤 하나를 가지고 아전인수식 해석을 할 일은 아니”라고 말했다.
EBS 노사 한목소리로 ‘위법’ 사장 선임에 반대
EBS 구성원 대부분은 신동호 사장 임명을 거세게 반대하고 있다. 방통위가 신동호 사장을 임명 의결한 당일인 26일 저녁 EBS 현직 보직 간부 54명 중 52명은 보직 사퇴를 선언했다. 이날 이들은 입장문에서 “방통위는 절차적 정당성과 법적 타당성이 결여된 사장 선임을 강행했다. 공영방송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본질적으로 침해한 것”이라며 “방통위가 임명한 신동호 사장을 EBS 사장으로 인정하지 않으며 이에 대한 강력한 항의의 뜻으로 보직에서 사퇴한다”고 밝혔다.
EBS지부도 26일 성명에서 “결국 신동호였다. 이미 수차례 내정자로 의심하고 경고했던 ‘알박기’ 인사임이 만천하에 드러났다”며 “우리는 가능한 모든 투쟁 수단을 동원해 불법 임명된 신동호로부터 EBS의 정치적 독립성과 공적 책임을 반드시 지켜낼 것”이라고 했다.
이번 ‘2인 체제’ 방통위의 EBS 사장 선임 역시 법원의 판단을 받게 됐다. 김유열 전 EBS 사장은 27일 오전 서울행정법원에 방통위를 상대로 신임 사장 임명 무효 소송과 함께 집행정지 신청을 제기했다. 이날 김 전 사장은 입장문을 내어 “사장 선임 과정부터 불법성 시비에 휘말린다면 EBS의 위기는 더욱 가중될 것이 분명하다”며 “EBS에 미칠 즉각적인 손해와 악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방문진 이사들이 신청한 가처분에 대해 법원이 신청 후 3일 만에 신속하게 임명 처분의 효력을 정지하는 잠정결정을 내린 것처럼 본 집행정지 신청에 대해서도 잠정정지결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준용 EBS 이사 출근길 마중 나와...EBS 구성원 “사장 비서실장이냐”
한편, 이날 신동호 사장 출근 저지 과정에서 이준용 EBS 이사가 신 사장의 옆자리에 서서 ‘2인 체제 의결은 적법하다’ 등의 주장을 하기도 해 “사장 비서실장이냐” “사장의 경영을 관리 감독해야 할 이사가 왜 사장을 대변하고 있느냐”는 EBS 구성원의 비판을 샀다.
이날 이 이사는 김성동 EBS 부사장과 함께 EBS 사옥 주차장에서 신 사장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이 이사는 사장 출근길에 온 이유에 대해 “이사로서 EBS 거버넌스가 정상화돼서 새로운 사장 취임으로 새롭게 거듭나길 바라서 왔다”며 “정부에 (사장) 임명권이 있는데 노조에서 이렇게 강력히 저항하는 건 적절치 않고, 또 간부들 50여명이 사퇴한 것도 부적절해 이사회 한 사람으로서 그에 대해 강력히 주의를 줄 것”이라고 말했다.
사장 출근 저지가 끝난 직후 진행된 언론장악저지공동행동 주최 기자회견에서도 이준용 이사의 행실에 대한 지적이 잇따랐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박상현 언론노조 KBS본부장은 “마치 신동호의 대변인처럼 행동했던 모습에서 과연 EBS 이사로서 제대로 된 역할 했는지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며 “KBS 출신인데 2023년 수신료 위기 때 KBS를 조화로 둘러치는 운동을 벌였던 인물이고, 윤석열 정권의 언론 장악에 일조했던 사람이다. 역시 EBS에 와서도 내란 정권의 언론 장악에 동조하고 적극적으로 부역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EBS지부는 계속해서 신동호 사장 출근 저지 투쟁을 진행할 계획이다. 김성관 EBS지부장은 기자회견에서 “신동호씨는 즉각 사장직에서 사퇴해야 하고, 방통위는 위법한 임명 결정을 즉시 철회해야 한다. 아울러 EBS의 정치적 독립성과 공정성을 실질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며 “EBS 구성원들은 모든 합법적인 방법을 통해 이 위법한 사장 임명에 맞설 것이며, 공영방송의 독립성이 회복될 때까지 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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