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선고만을 남겨둔 윤석열 대통령이 우리 사회에 남긴 상흔은 깊고 짙다. 그 중심에 부정선거 음모론이 있다. 탄핵 선고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부정선거 음모론은 더욱 기승을 부릴 가능성이 크다. 기각이나 각하가 된다면 그 정당성을 인정받았다고 여긴 윤 대통령은 다시 부정선거 증거를 찾기 위해 국가기관을 동원할지도 모른다. 파면이 된다 해도 윤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부정선거 음모론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태세다.
음모론이 기승을 부린다는 것은 언론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는 때라는 의미다. 부정선거 음모론은 더 이상 무시하고 넘길만한 사회 끝단의 자그마한 목소리가 아니게 되었다. 12·3 비상계엄 이후, 국가수반이 자신의 행동 이유로 부정선거 음모론을 들이밀면서 수면 아래를 헤엄치던 부정선거 음모론은 일순간 힘을 받았다. 관련 유튜브 조회수가 몇백만을 기록하고 있다. 공동체를 갉아먹는 언설에 대한 더 적극적인 보도가 필요하다.
다행히 최근 방송과 신문에서 부정선거 음모론에 대한 심층 보도가 이뤄지고 있다. 주한미군까지 입장을 내게 만든 ‘선관위 99명 중국인 간첩설’ 보도의 시작이 한 사람의 허무맹랑한 거짓말이었다는 탐사보도, 부정선거 음모론의 배후로 지목된 해외 인사가 어떻게 국내 정치에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되었는지 이해관계를 쫓는 시리즈 기사, 부정선거 음모론을 퍼뜨리는 극우 목사 집단의 비즈니스 실체를 폭로하는 기사 등.
이러한 보도들은 ‘부정선거 유니버스’에 다각적으로 다가가게 해준다. 어떻게 연결된 사람들이 가짜뉴스를 퍼뜨리고 각자의 이익을 쌓아가는지 그 구조를 드러낸다. 무책임한 주장이 공동체를 어떻게 파괴하는지 보여준다.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다양한 전문가와 검증하며 그들의 주장이 왜 틀렸는지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여러 차례 만난 부정선거 음모론자인 핵심 취재원은 사실은 자기가 거짓말을 꾸며냈다고 고백하기까지 한다. 끈기 있는 취재의 성과다.
부정선거 음모론자의 층위는 다양하다. 대놓고 부정선거였다고 주장하는 대신 ‘의심스럽다’는 목소리로 의혹을 부추긴다. 레거시 미디어가 쓰지 않는다고 해서, 음모론을 추종하는 이들이 없어지지 않는 시국이다. 그래서 부정선거 음모론을 검증하는 팩트체크는 꾸준하게 이뤄져야 한다.
지금까지 나온 보도들이 내놓는 검증 결과는 한 방향을 가리킨다. 부정선거는 음모론이라는 것이다. 시연을 통해 ‘접힌 흔적이 없는 투표용지’가 왜 부정선거의 증거가 아닌지 보여준다. 해킹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도 검증했다. 투·개표에 쓰인 기계에는 무선통신이 가능한 장치가 없다. 외부 네트워크 접속 자체가 불가능하다. ‘대수의 법칙(표본이 커지면 특정 통계적 경향성에 수렴)’을 근거로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것 또한 사전투표와 본투표 참여자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 얘기라고 통계학자는 지적한다.
기자는 기록하는 존재다. 기록의 핵심은 팩트이며, 그것은 사실을 단순히 나열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거짓과 사실을 구분하며, 거짓이 왜 거짓인지를 드러내는 것 또한 저널리즘의 핵심 역할이다. ‘팩트체크의 기초’ 저자인 미국인 저널리스트 브룩 보렐의 말은 그래서 귀담아들을 만하다. “만약 정치인이나 권력자들이 사실이 아닌 말을 할 때, 우리가 아무런 추가 설명 없이 그 발언을 그대로 보도한다면, 우리는 더 이상 기자가 아니라 속기사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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