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개혁이 '가난 대물림' 되지 않으려면

[이슈 인사이드 | 경제] 오찬종 매일경제신문 뉴욕특파원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는 대물림하고 싶지 않은 가난에 대한 삼대(三代)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시대를 관통하는 공동체 정신으로 부모와 가족, 이웃이 함께 주인공 ‘금명이’를 키워낸다.


하지만 드라마와 달리 현실 세계에선 ‘가난의 대물림’이라는 화두가 사회 분열이라는 정반대 결론으로 치닫고 있다. 연금개혁을 두고 빚어진 정당 간 갈등이 이제 세대 간 갈등으로 확산하고 있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개혁이라는 입장과 ‘청년 빚폭탄’이라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선다.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23회국회(임시회) 제2차 본회의에서 연금개혁 특별위원회 구성의 건이 통과되고 있다. /뉴시스

2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국민연금법 개정안은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현행 9%에서 13%로 올리는 모수 개혁안이다. 이와 함께 소득대체율을 현행 40%에서 43%로 올린다.


국민연금 개혁이 이뤄진 것은 노무현 정부 때인 2007년 이후 18년 만이다. 국가 재정 파탄이 다가오는 상황에서 여야 모두 절실함에 공감하며 개혁안이 본회의를 통과한 것은 의미가 크다. 특히 탄핵 재판을 앞두고 정치적 긴장이 극한인 상황에서 대의를 위해 의견이 모인 것은 다행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폭탄 돌리기의 불씨는 여전히 살아 있다. 이번 개혁은 시간을 좀 더 버는 급한 불 끄기 수준에 불과하다. 미래 세대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구조 개혁’이 병행되어야만 한다. 실제로 앞으로 청년층의 부담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당장 보험료율은 8년 동안 모든 세대가 매년 0.5%포인트씩 오르지만, 소득대체율은 곧장 인상한다. 당초 정부는 보험료율을 세대별로 차등해서 인상하는 안을 제안했지만 국회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미래 청년층이 더 많이 내지만 오히려 받는 돈은 현 기성세대가 더 많아지게 됐다. 청년 세대의 수익률이 적어지면서 세대 간 형평성 문제가 불거질 수밖에 없게 됐다.


일각에선 소득대체율을 높여 노인 생계비 부담이 줄어들면 결국 청년들이 사적으로 부모를 부양하는 부담이 줄어든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당장 더 많이 내고, 덜 받게 되는 청년들에게 이 같은 위로 아닌 위로는 별로 와닿지 않는다.


이번 본회의 통과는 연금개혁의 첫발일 뿐이다. 보험료 인상과 소득대체율 조정만으로 연금제도가 하루아침에 지속 가능해지지 않는다. 결국은 골든타임 내에 기초·퇴직연금 등을 아우르는 국가 연금제도 구조 개혁이 연쇄적으로 이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 여야는 국회에 연금개혁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재정 안정화 방안 마련과 함께 기초·퇴직·개인연금 등을 포함한 구조 개편안을 논의하기로 했다.

오찬종 매일경제신문 뉴욕특파원.

궁극적인 연금 개혁 성공을 위해선 가장 큰 책임을 떠안은 청년 세대를 위한 최대한의 노력이 필요하다. 특위 논의 과정에서 청년 세대 참여 보장은 필수적이다. 국민연금 기금에 대한 국고 투입 논의 등 청년층의 요구도 전향적으로 다뤄져야 한다.


‘폭싹 속았수다’는 제주 방언으로 “고생하셨습니다”라는 뜻으로 부모 세대와 공동체에 대한 감사함을 담고 있다. 연금개혁안이 제대로 보완되지 못하면 ‘속았수다’ 대신 ‘속았다’라는 후손들의 비판과 원망만 남게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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