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이 일자리 줄인다는 낡은 통념

[이슈 인사이드 | 노동] 김지환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김지환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미국 뉴저지주는 1992년 4월 최저임금을 4.25달러에서 5.05달러로 인상했다. 이에 반해 바로 옆에 있는 펜실베이니아주는 연방 최저임금 4.25달러를 그대로 유지했다.


뉴저지주 프린스턴대의 젊은 경제학자 데이비드 카드와 앨런 크루거에겐 흥미로운 ‘실험군’과 ‘대조군’이 자연스럽게 생긴 셈이었다. 이들은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볼 기회라 여기고, 두 주 경계에 있는 패스트푸드점 410곳을 조사했다. 이들의 연구 결과는 통념과 달랐다. 펜실베이니아주에서는 고용이 다소 감소한 반면 뉴저지주에서는 고용이 되레 증가했다.


캘리포니아주는 지난해 4월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하는 노동자 50만명가량에게 주 최저임금 16달러보다 더 높은 최저임금(20달러)을 보장하는 정책을 시행했다. 적용 대상은 미 전역에 60곳 이상의 사업장을 보유한 대형 패스트푸드 체인점 등이다. 패스트푸드점 노동자 최저임금을 더 높게 정한 이유는 패스트푸드점 노동자가 대표적인 저임금 노동자이며 팁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UC버클리 노동고용연구소(IRLE)가 최근 공개한 ‘캘리포니아주 패스트푸드 최저임금 20달러의 영향’ 보고서를 보면 연구진은 최저임금이 바뀌지 않은 주들의 패스트푸드점, 최저임금 인상 정책 대상이 아닌 캘리포니아주 소규모 패스트푸드점·풀서비스 레스토랑 등 세 그룹(대조군)과 최저임금이 오른 캘리포니아주 패스트푸드점(실험군)을 비교·분석했다. 분석 결과 지난해 4~12월 최저임금이 인상된 캘리포니아주 패스트푸드업 고용에 부정적 효과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4달러짜리 햄버거 가격도 약 1.5%(6센트) 인상되는 데 그쳤다.


전통적으로 최저임금 연구는 노동시장을 노동자와 사용자 간 힘이 같은 완전경쟁 상태로 가정하고, 최저임금이 오르면 일자리가 줄어든다고 봤다. 하지만 2021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데이비드 카드, IRLE 등의 실증연구를 보면 노동시장은 완전경쟁이 아니라 ‘수요독점(monopsony)’에 가깝다.


수요독점은 소수의 기업이 일자리를 지배하고 있거나 노동자가 임금 수준이 낮더라도 다른 일자리로 옮겨가기 어려운 상황에서 발생하는 현상이다. 사용자가 노동자보다 압도적 힘을 갖는 수요독점 노동시장일 경우 사용자는 완전경쟁 노동시장일 때보다 낮은 수준으로 임금을 정하며 고용을 늘리는 걸 꺼린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22년 고용전망 보고서에서 수요독점의 부정적 영향을 억제하는 방법의 하나로 최저임금을 제시했다. 수요독점 상황에선 최저임금 인상이 적정 범위 내에서 이뤄지면 사용자는 되레 고용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이윤을 극대화하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 장관은 매년 3월31일까지 최저임금위원회에 최저임금 심의를 요청한다. 이달 말이면 2026년 최저임금을 정하기 위한 절차가 공식적으로 시작되는 것이다. 올해 최저임금 심의 과정에선 한국 노동시장에서 수요독점이 어느 정도로 널리 퍼져 있는지도 논의가 되길 기대해 본다. 최저임금 인상은 일자리를 줄일 때도 있지만 늘릴 때도 있다. 전자에만 초점을 맞추는 경영계 입장은 이제 낡아도 너무 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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