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내전을 꿈꾸는가

[언론 다시보기] 전성원 계간 '황해문화' 편집장

전성원 계간 ‘황해문화’ 편집장.

과테말라는 1954년부터 1996년까지 42년간 내전을 치렀다. 그 기간 20만명 이상의 민간인이 학살당했고, 5만명가량이 실종되었으며 10만명 이상의 난민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무자비하고 기나긴 내전이 발생한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내전은 민주적으로 선출된 하코보 아르벤스 대통령을 제거하기 위해 미국의 CIA와 유나이티드 프루트가 과테말라 군부와 공모해 일으킨 쿠데타 계획 ‘피비 석세스(PB Success)’가 ‘성공’한 결과였다. 그러나 이 사건의 진정한 배후엔 프로이트의 조카이자 미국의 홍보 전문가였던 에드워드 버네이스가 있었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 중 미 연방공보위원회에서 활동하며 경력을 쌓았고, 이 과정에서 어떻게 하면 민주주의 사회에서 대중의 심리를 선동하고, 여론을 조작할 수 있는지 깨우쳤다. 그는 1928년 ‘프로파간다’라는 책에서 “대중의 의식과 지성을 조작하는, 보이지 않는 메커니즘을 조작하는 사람들이야말로 국가 권력을 진정으로 지배하는 ‘보이지 않는 정부(invisible government)’를 이룬다”고 했는데, 나치 선전상 괴벨스는 이 책을 서재에 두고 성경처럼 읽었다.


1950년대 버네이스는 중남미에서 거대한 바나나 플랜테이션 농장을 경영하는 유나이티드 프루트 컴퍼니의 홍보 담당자가 되었다. 당시 유나이티드 프루트는 아르벤스 정부를 눈엣가시처럼 여겼는데, 그 까닭은 과테말라 정부가 자국 농민을 보호하기 위해 플랜테이션 농장의 일부를 국유화하려는 조짐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버네이스는 아르벤스 정부를 미국의 안정과 이익에 위협이 되는 공산주의 세력으로 몰기 위한 여론 공작을 실시한다.


1952년 1월, 그는 ‘리더스 다이제스트’,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 ‘하퍼스’, ‘뉴욕타임스’ 등의 언론인과 함께 과테말라를 여행했다. 이들의 경비는 모두 유나이티드 프루트가 지불했다. 기자들은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었지만, 그들이 만나고 경험한 대부분은 버네이스가 주도면밀하게 계획하고 통제한 것들이었다. 이들은 귀국 후 과테말라 정부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했는데, 모두가 그의 의도대로 행동한 것은 아니었다. 뉴욕타임스 기자 시드니 그루존은 다른 기자들과 달리 정직한 목소리를 냈다. 이를 지켜본 CIA 국장 앨런 덜레스는 프린스턴 대학 동창이자 뉴욕타임스 편집국장 줄리어스 옥스 애들러에게 연락했고, 그루존은 즉시 멕시코로 전출되었다. 이 무렵 CIA 국장 앨런 덜레스와 국무장관이자 그의 형 존 포스터 덜레스는 모두 유나이티드 프루트 주주이거나 다른 형태의 커넥션이 있었다.


12·3 내란은 다행히 불발로 그쳤지만, 이후 민주주의를 전복하려는 움직임이 격렬하게, 때로 은밀하게 준동하고 있다. 스카이데일리는 1월16일 12·3 비상계엄 당시 계엄군과 미군이 선거관리위원회 연수원에서 중국인 간첩 99명을 체포했다고 보도했고, 이를 극우 유튜버들이 퍼 나르며 온라인골드를 챙겼다. 우여곡절 끝에 7일 방송된 KBS ‘추적60분’에 따르면, 이 보도의 유력한 출처가 그동안 미국 정보요원을 사칭하며 ‘캡틴 아메리카’ 복장을 하고 여러 곳에서 난동을 부리다 체포된 안병희씨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안씨는 흑색선전으로라도 우파에게 희망을 주고 힘을 북돋아 주기 위해 거짓말을 했으며, 모든 사람이 자신에게 속았다고 자신만만해했다. 그러나 이처럼 전말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스카이데일리는 과오를 사과하기는커녕 도리어 “공산화가 진행 중인데 공산당 검열위원회처럼 특정 정치 세력의 앞잡이 노릇을 한다”며 제재를 가한 신문윤리위를 비난했다.


본래 프로파간다(propaganda)란 말은 ‘포교활동’을 의미했으나 종교개혁 이후 벌어진 신교와 구교 양 진영의 무차별적인 선동과 혐오의 결과가 무자비한 종교전쟁으로 이어지며 ‘진실을 왜곡하고 전쟁을 선전·선동’하는 것과 같은 부정적인 의미가 되었다.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누가 민주주의의 전복과 내전을 획책하는 위험한 프로파간다에 앞장서고 있는가? 스카이데일리는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주류 보수언론보다 정부광고가 2.4배나 증가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금이야말로 진실을 추구하는 언론인, 실천하는 지식인의 용기가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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