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여정 끝내며... 다시 그 거리에 선 언론인들

동아투위, 결성 50주년 맞아 공식활동 마무리 선언
동아일보에 사과 요구… "1960~70년대 명성 되찾아라"

  • 페이스북
  • 트위치
‘동아투위 50주년 작고 위원 추모제’ 행사의 일환으로 3월17일 오전 동아일보사 앞에서 열린 ‘진동아굿 2025’. 1975년 4월 서울대 관악캠퍼스에서 공연됐던 마당극 ‘진동아굿’을 재현했다.

1975년 3월17일 새벽 동아일보에서 쫓겨난 20~30대의 젊은 기자들이 50년 전 그 거리에 다시 섰다. 그 세월 사이에 113명 중 41명이 유명을 달리했고, 살아남은 언론인들은 대부분 팔십을 넘겼다. 단 하루라도 쫓겨났던 그 자리로 돌아가고 싶었던 그들의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거리의 언론인들은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 결성 50주년을 맞은 2025년 3월17일 오전 동아일보사 앞에서 동아투위 작고 위원 추모제, 오후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결성 50주년 기념식을 마지막으로 공식 활동을 마무리했다.

노구를 이끌고 기념식 연단에 오른 이해동 목사는 “50년 역사의 세월을 장하게 살아오셨다”면서 “자유언론 실천을 위해서 여러분이 겪은 시련과 고통은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라고 상찬했다.

동아투위는 결성 50년을 맞아 발표한 성명에서 그동안 동아투위를 성원하고 후원해준 국내외 모든 분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며 동아일보의 진심어린 사과를 거듭 요구했다.

3월17일 오후 서울 한국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열린 ‘동아투위 결성 50주년 기념식’에서 양한수(사진 오른쪽), 이명순 위원이 50주년 성명을 낭독하고 있다.

“강제해직으로 우리가 겪은 수난과 평생에 걸친 울분을 가슴에 묻고 동아의 행태를 역사의 심판에 맡기겠습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동아일보가 더욱 분발해 민중들의 사랑을 받았던 1960~1970년대 그때 동아의 명성을 되찾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동아투위는 “50년 동안 매년 3월17일 동아일보 앞에서 열었던 규탄집회를 더 이상 열지 않고 영원한 동아투위로 남아 후배들의 자유언론실천 투쟁을 응원하고 격려하는 동아투위로 남겠다”고 밝혔다.

동아투위는 공식 활동을 마무리하며 이날 오전 동아일보사 앞에서 동아투위 작고 위원 추모제를 열었다.

이부영 동아투위 위원장은 고 천관우 주필과 고 송건호 편집국장을 비롯해 동아투위 작고 위원 41명의 이름을 한명 한명 부르며 “우리는 자유언론의 혼을 다하여 제작했던 1974년 10·24 자유언론실천선언 이후 5개월 동안의 ‘진정한’ 동아일보의 푸른 추억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고 회고했다.

이 위원장은 “그 기억이 있어 우리는 반세기 동안 버틸 수 있었으며 백지광고 탄압에 격려광고로 지원했던 독자들에게 등 돌릴 수 없었기에 신의를 지킬 수 있었다”고 했다.

이부영 동아투위 위원장이 3월17일 오전 열린 ‘동아투위 50주년 작고 위원 추모제’ 행사에서 고 천관우 선생, 고 송건호 선생, 동아투위 위원 41위에 올리는 추모사를 하고 있다.

이날 오전 추모제 행사의 일환으로 1975년 4월 서울대 관악캠퍼스에서 공연됐던 마당극 ‘진동아굿’이 재현됐다.

‘진동아굿’은 1974년 10월24일 자유언론실천선언과 함께 언론자유를 외치다가 경영주에 의해 거리로 내몰린 동아일보 기자들의 사건일지를 중심으로 동아일보 광고 해약사태와 국민들의 격려광고, 그리고 기자들의 치열했던 투쟁과 해고의 과정을 증언한 마당극이다.

임진택 판소리명창이 이 작품의 재현에 앞장섰고 박우섭·정연도·변우균·배정미·배진영씨가 출연했다. 추모 행사 마지막에는 춤꾼 장순향씨가 작고한 동아투위 위원들의 영령을 위로하는 추모춤을 모셨다.

한편 이날 기념식에선 동아투위와 조선투위 위원 20명이 쓴 회고록 ‘우리는 아직 거리에’ 출간 인사도 있었다. 김동현 동아투위 부위원장은 “우리의 회고록이 언론사의 귀중한 사초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3월17일 오전 동아일보사 앞에서 ‘동아투위 50주년 작고 위원 추모제’를 마치고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김성후 선임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배너

많이 읽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