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문화계 블랙리스트' 관여 최윤수 사외이사 내정

노조 "문화 이바지할 방송사에 범죄자라니"
윤 정부서 사면... 블랙리스트 주도자들 복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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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구속영장이 기각된 뒤 경기도 의왕시 서울 구치소를 나서고 있는 최윤수 전 국가정보원 2차장. /연합뉴스

SBS가 과거 보수정권의 ‘문화계 블랙리스트’ 업무에 관여한 최윤수 전 국가정보원 2차장을 사외이사로 내정했다. 노조는 문화향상에 이바지해야 할 방송사 이사진에 문화예술인을 말살시키려 한 범죄자를 임명하느냐며 반발했다.

SBS는 2월27일 이사회를 열고 이사 선임과 재무제표 승인 등을 위한 주주총회를 이달 28일 열기로 의결했다. 2023년 취임한 방문신 대표이사 사장을 재임명하는 등 사내이사는 3명, 사외이사로는 2명을 추천한다. 동시에 사외이사 2명을 이사회 감사 역할인 감사위원으로 선임한다.

새로 임명될 사외이사 가운데는 20여 년 동안 검사로 일하다 박근혜 정부 시절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만드는 데 참여한 최윤수 전 국정원 2차장이 추천됐다. 최 전 차장은 2022년 대법원에서 직권남용 혐의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 확정됐다.

최 전 차장은 블랙리스트 작성이 문제가 된다는 국정원 직원들의 보고를 받고도 문화체육관광부 지원사업 대상자 검증을 계속하라고 지시한 사실이 법원에서 인정됐다. 항소심 재판부는 “범행 내용과 수법, 피해 정도를 봤을 때 죄질이 좋지 않다”고 판시하기도 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를 통틀어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오른 문화예술인은 9000여명으로, 국정원은 청와대 지시에 따라 이들의 정치적 성향을 조사해 보고했다. 정부는 이들의 활동을 감시하거나 각종 지원에서 배제하는 방식으로 억압했다. 최 전 차장은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된 지 12일 만에 윤석열 대통령에 의해 특별사면됐다.

전국언론노동조합 SBS본부는 4일 성명을 내고 “특별사면을 받았다고 모든 죄가 사라졌다고 생각하느냐”며 사측에 사외이사를 새로 선임하고 최 전 차장은 후보직을 사퇴하라고 요구했다. 또 “방송법 등을 보면 방송사는 민주적 여론형성, 국민문화 향상에 이바지해야 한다”며 “문화계를 짓밟은 당사자가 K-컬쳐 발전에 앞장서는 방송사의 사외이사로 오겠다는 건 도대체 얼마나 뻔뻔한 철면피여야 가능하냐”며 규탄했다.

노조는 사측이 최 전 차장에게 감사위원까지 맡기려는 데 대해서도 “‘죄질이 불량’한 범죄자한테 경영 감시를 받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SBS는 노조가 추천한 사외이사를 사측이 감사위원으로 올리게 노력해야 한다는 특별합의서를 2008년 작성했고, 2021년 이를 재확인했다. 현재 SBS 이사회에 노조 추천 사외이사가 한 명이 있지만 감사위원은 아니다.

SBS는 이사 선임과 관련해 문화예술이나 방송 업무 종사가 부적절한 인사를 걸러내는 등 결격사유 규정이 따로 없다. 다만 상법에는 사외이사 선임 때는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고 집행이 종료나 면제된 뒤 2년이 지나지 않은 사람은 이사로 임명하지 못하게 금지한다. SBS는 최 전 차장이 사면받기도 해 문제가 없다고 보고 있다.

최 전 차장을 포함해 블랙리스트 작성에 관여한 인물들은 처벌을 받고도 문화예술계로 복귀한 상태다. 조윤선 전 문체부 장관은 서울시 산하의 서울시향 이사가 됐고, ‘변호인’ 등 정부 비판적인 영화의 국제대회 출품을 막은 용호성 당시 청와대 행정관은 윤석열 정부에서 문체부 1차관이 됐다. 송수근 전 문체부 기조실장은 이후 계원예술대 총장을 지냈다.

정윤희 ‘블랙리스트 이후’ 디렉터는 “블랙리스트 작성 주도자들이 아무일 없었다는 듯 요직을 맡고 있다”며 “이들이 권력을 이어가는 건 관료직의 병리적인 전관예우도 배경에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블랙리스트는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 것인데 그때 앞장섰던 최 전 차장이 공공성을 띤 방송의 이사로 간다는 건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조기호 언론노조 SBS본부장은 “방송 환경이 급박하게 변하고 있고 경영적 판단이 엄격해지는 상황에서 사측이 말을 잘 들을 듯한 사람에게 자리를 줘 거수기 역할을 시키려는 게 아닌지 의심된다”며 “SBS가 투명경영을 하지 못하고 구시대적인 행태로 범죄자를 사외이사로 내리꽂는 건 비판을 자초하는 자해행위”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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