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되는 사람은 없다

[이슈 인사이드 | 문화] 사지원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사지원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새해부터 또 하나의 안타까운 소식을 접했다. 배우 김새론이 2월16일 서울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것이다. 죽음과 어울리지 않는 나이인 스물다섯 살. 고인은 2022년 음주 운전을 저질러 유죄 판결을 받은 뒤 줄곧 악플에 시달려 온 것으로 전해졌다.


악성 루머로 인한 연예인들의 극단적인 선택은 전혀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국민 배우로 불렸던 배우 최진실은 2008년 “세상 사람들에게 섭섭하다. 사채니, 뭐니 나와는 상관없는데 나를 왜 이렇게 괴롭히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남긴 뒤 세상을 떠났다. 이후 가수 설리와 구하라, 종현 등 수많은 ‘아까운 삶’들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유명인이 떠날 때마다 “악플을 근절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고, 정치인들은 법안을 쏟아냈다.


근본적인 변화는 없었다. 일명 ‘설리법’이란 이름이 붙은 악플 방지법은 20대 국회 임기 만료와 함께 폐기됐다. 21대 국회에서는 악의적 허위 사실을 담은 게시글에 대한 처벌 및 규제를 강화하는 정보통신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역시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언론은 늘 그렇듯 악플을 비판하는 기사를 쏟아냈다. 네티즌들은 이에 맞서 “자극적인 기사를 쓴 언론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왜 매번 같은 패턴이 반복될까. 누군가의 희생이 치러져야만 ‘반짝’ 여론이 들끓은 뒤 금세 가라앉는 일 말이다. 어떻게든 누군가를 합리적으로 비판해도 되는 이유를 찾아내려던 언론과 대중의 본능 때문은 아닐까.


사실 김새론도 생을 마감하기 전에는 인터넷에서 비판을 받을 만한 이유가 있는 연예인이었다. 사회적으로 지탄받기 충분한 범죄인 음주 운전. 카페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사진이 공개된 뒤에는 ‘도둑맞은 가난’ 논란도 일었다. 유명 연예인과의 열애설 사진까지 대중들이 민감해하는 요소가 가득했다. 고인이 그렇게 한 번 ‘악플을 달아도 되는’ 인물로 찍히니 고인의 근황만 올라와도 늘 좋지 않은 댓글이 달렸다.


나종호 미국 예일대 의과대학 정신의학과 조교수는 고인의 죽음 이후 SNS에 “실수하거나 낙오된 사람을 버리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지나가는 우리 사회의 모습이 흡사 거대한 ‘오징어게임’ 같다”고 했다.


인터넷에서 얼굴 모르는 사람들에게 조리돌림을 당해도 되는 사람은 없다. 범죄를 저지른 연예인이 있다면 사법적 대가를 치러야 한다. 해당 연예인이 저지른 범죄가 불쾌하다면 그 연예인의 음악, 영화, 드라마 등 결과물을 소비하지 않으면 된다. 거기까지가 대중이 할 수 있는 처벌이다. 연예인이 대중의 무관심을 받을지언정 악플로 고통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법적 처벌 강화와 플랫폼의 악플 제재 강화와 같은 제도적 변화는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이보다 앞서 우리가 갖춰야 할 것은 “악플이 누군가의 인생을 파괴할 수 있는 범죄”라는 전반적 인식이다. 이 같은 인식이 공유되지 않는 한 악플은 또다시 제도의 사각지대를 넘어 다른 희생자를 낳을 가능성이 높다. 당장 연예 뉴스의 댓글은 폐지됐지만 사람들은 당사자의 인스타그램에 몰려가 댓글을 달고 있다. 오히려 악플의 전달력만 높아진 셈이다.


또 다른 ‘예비 악플 잔혹사’는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다. 방송인 김신영은 최근 한 가상 아이돌 그룹에 대해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가 팬덤의 뭇매를 맞고 사과했다. 배우 한가인 역시 ‘대치맘’ 패러디 영상이 화제가 되자 “이와 비슷하다”며 악플에 시달렸다. 어디에도 악플을 당해도 되는 사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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