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국 사회는 극심한 혼란을 겪고 있다. 계엄을 주도한 윤석열 대통령의 거취를 두고 “국민에 대한 폭력을 선언한 내란”이라며 탄핵해야 한다는 진영과 “계엄은 대통령의 권리”라며 반대하는 진영이 갈리며 사회 갈등이 극도로 고조되고 있다. 돌이켜보면 처음부터 이렇지는 않았다. 비상계엄의 밤 독단적인 결정으로 헌정 질서를 파괴하는 대통령의 모습에 대다수 국민은 충격을 받았고,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한 줄기로 흘렀다. 하나였던 여론이 양분되는 동안 언론의 실패는 명백하다. 일부 언론은 지나치게 정파적인 입장을 취하거나 가짜 정보도 ‘뉴스거리’로 취급하는 비윤리적인 태도로 정확한 정보가 절실했던 국민을 배신했다. 또 일부는 아예 관련 보도와 비판을 최소화하며 ‘유튜브발 가짜 뉴스’가 성행하는 데 일조했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고민해야 하는 문제가 있으니 바로 ‘균형 있는 보도’라는 명목 아래 반복했던 ‘기계적 중립’이다. 균형과 객관주의는 저널리즘의 오랜 원칙 중 하나이지만 민주주의 위기라는 비상 상황에서 보여준 우리 언론의 ‘기계적 중립’은 게으른 책임 회피에 더 가까웠다. 무엇이 사실인가를 넘어 무엇이 옳은가를 따져봐야 했던 순간에 많은 언론이 손쉽고 안전한 선택으로 ‘양측의 목소리’를 균형 있게 전달하는 방식을 택했다. 2월27일 열린 ‘내란 극복을 위한 저널리즘 회복과 보도준칙 마련’ 세미나에서 박성호 방송기자연합회장은 “사안의 위중함과 책임의 경중을 고려하지 않은 채 가해자인 계엄 세력과 피해자인 국민의 입장을 ‘5대 5’로 동등하게 다루는 것은 사안의 본질을 흐리는 심각한 문제”라고 꼬집기도 했다.
다만 문제의 원인을 현장 기자들에게 전적으로 돌리는 것 또한 부적절하다. 기계적 중립 보도의 이면에는 내부 소통 부족이라는 언론계의 고질적 문제가 있다. 전대미문의 위기 속에서 언론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에 대한 윤리적 고찰이 내부에서 충분히 이뤄졌을지 의문이다. 사실 확인을 넘어선 맥락 보도의 중요성을 공유하고 일선 기자들에게 취재 방향을 명확히 제시해 준 조직은 과연 몇 곳이나 있었을까. 대부분의 기자가 과중한 업무 속 숙고할 만한 충분한 여유를 가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어쩌면 기계적 중립이란 기자들에게 요구된 최소한의 윤리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바쁘고 힘들다는 변명도 여기까지여야 한다. 한국은 탄핵 정국 이후 더 극심한 민주주의 위기를 마주할 가능성이 높고 언론의 역할은 더 중요해질 것이다. 언론은 단순한 정보 전달자를 넘어 민주주의의 적극적인 수호자가 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언론인 개개인의 윤리의식 강화부터 플랫폼에 대한 책임 강화, 시민과 함께하는 공론장 구축까지 전방위적 변화가 필요하다. 갈 길이 먼 가운데 변화의 첫걸음으로 언론계가 합의하는 새로운 보도 원칙을 마련하는 것도 좋겠다. 이날 세미나에서도 채영길 한국외대 교수가 허위 정보와 음모론을 단호히 거부하고 기계적 중립에서 벗어나 민주주의 입장에서 취재와 보도를 결정하자는 취지의 보도 원칙 10가지를 제안하며 논의의 물꼬를 텄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각오다. 언론의 침묵과 방관이 가져온 사회 혼란을 우리는 목격했고, 저널리즘의 핵심은 결국 실천에 있다. 지금이야말로 적극적이고 용기 있는 저널리즘을 통해 민주주의 회복에 앞장서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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