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백악관 풀단 직접 구성… "권력자의 언론 취사선택"

[핫 이슈] 브리핑룸 개방, AP기자 취재금지 이어 기자단 통제… 갈등 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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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월25일(현지 시간) 백악관 집무실에서 행정명령에 서명한 후 기자들에게 "트럼프가 모두 옳았다"라고 쓰인 모자를 던져주고 있다. /AP 뉴시스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팟캐스터나 소셜미디어 인플루언서 같은 개인 미디어에도 백악관 브리핑룸을 열어준 데 이어 대통령과 동행하며 취재하고 질문할 수 있는 풀단(공동취재단)에까지 이들을 넣겠다고 발표했다. 또 이를 위해 주요 언론이 풀단을 자율적으로 구성해 온 전통을 깨고 백악관이 직접 풀단을 꾸리겠다고 했다. 당장 언론자유 침해라는 비판이 나온다.


현지시각 2월25일 백악관은 어느 매체가 풀단에 들어갈지 직접 선정하겠다고 밝혔다. 풀단은 비교적 좁은 공간인 대통령 집무실과 전용기, 각종 회의나 행사에 대표 기자를 보내는 방식이다. 풀단은 백악관기자단(WHCA, White House Correspondents’ Association)이 당번을 정해 소속 기자들을 번갈아 가며 구성해 왔는데 더는 기자단에 이를 맡기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날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그날의 뉴스를 잘 다룰” 매체를 매일 고르겠다며 이는 “국민에게 권력을 되돌려주는 것”이라고 의미를 설명했다. 1월28일 브리핑룸에 뉴미디어석을 마련했을 때는 언론 소비 행태가 달라지는 만큼 다양한 매체에 접근권을 줘야 한다는 명분에 그쳤지만 이번엔 기자단이 정보를 폐쇄적으로 다루는 특권 집단인 양 묘사한 것이다.

미국 동부 현지시각 2월25일 백악관 브리핑룸에서 캐롤라인 레빗 대변인이 풀단 정책 변화를 설명하고 있다. 레빗 대변인은 여러 차례 백악관기자단(WHCA)을 두고 ‘특권’, ‘권력’을 언급했다. /백악관 유튜브

레빗 대변인은 기자단이 정보를 독점한다는 듯 말했지만 실상은 그 반대다. 풀단 기자는 대통령에게 질문하고 그의 말과 행동을 보고 듣고 느낀 대로 초고를 자세히 적는다. 이후 초고는 기자단 소속을 넘어 백악관에 등록된 수백 개 언론에 일제히 이메일로 발송된다. 언론사는 백악관 공식 기록물처럼 이를 신뢰하고 보도에 그대로 활용한다. 한국 특파원도 이 메일을 받는다.


기자단 소속 언론사는 대통령의 해외순방이나 국내 출장에 따른 비용 전액을 부담하면서까지 풀단 취재에 임한다. 대통령이 휴가를 가거나 골프를 치러 가더라도 근처에서 대기한다. 대통령의 동선을 투명하게 감시하고 돌발상황에서는 즉시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백악관기자단은 특혜를 누리는 게 아니라 전체를 위해 “봉사”한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백악관의 새 방침 발표 이후 기자단은 시민들에게 자기 역할의 정당성을 설명하는 데 애먹고 있다. 기자단 임원인 재키 하인리히 폭스뉴스 기자는 2월26일 X(옛 트위터)에 “정기와 임시 출입증 발급은 기자단이 아니라 백악관이 해왔다”며 “기자단이 어떻게 작동하고 무엇을 하는지 대중의 이해에 간극이 있다. 실제로 어떻게 일하는지 보면 놀랄 것”이라고 호소했다.

백악관 브리핑룸 내부 모습. 가운데 좌석에 앉아 있는 기자들은 백악관기자단 소속이다. 질문 기회는 주변에 서 있는 임시 출입증을 발급받은 기자들에게도 돌아간다. /백악관 유튜브

기자단이 브리핑룸에서 40여개 고정석을 차지한 모습 때문에 오해를 받지만 다른 언론의 출입을 막는 건 아니다. 기자단은 객관성과 전문성이 필요한 풀단에만 관여하고 출입은 백악관이 관리한다. 우리 특파원도 임시 출입증을 받아 브리핑룸에 들어갈 수 있다. 브리핑 시간이 한국의 뉴스룸과 특파원이 일하는 시간대와 맞지 않아 자주 출입하기 어려울 뿐이다.


하인리히 기자의 트윗에 반응은 싸늘했다. 380여개 답글이 달렸는데 대개 그의 해명을 조롱하거나 이해하지 못하겠다며 비아냥대는 투다. 한 사람은 백악관에 동조하며 “기자단이 특권을 남용하다가 잃었다. 누구를 비난하려면 거울부터 보라”고 대꾸했다. 기자단이 민주주의를 가로막는다는 듯 “선출되지 않은 기자단이 정보를 걸러내는 건 원치 않는다”는 답글도 달렸다.


백악관의 방침은 대통령이 자신을 감시할 언론을 직접 고르고, 아예 우호적인 뉴미디어를 곁에 두려 한다는 지적을 받는다. 애초 백악관기자단은 대통령이 원하는 언론만 선택하는 것을 막으려고 110여년 전에 만들어졌다. 1913년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특정 신문을 배제하고 취향에 맞는 언론만 상대하려 하자 기자들이 단체를 만들어 공동대응에 나선 것이다.


기자단은 백악관 발표 당일 성명을 내고 “자유국가에서 지도자는 스스로 기자단을 선택할 수 없어야 한다”며 “이번 조치는 언론자유와 독립성을 훼손한다”고 반발했다. 백악관은 AP 기자가 ‘멕시코만’을 ‘미국만’으로 표기하라는 행정명령에 따르지 않았다며 2월11일 행사 취재를 금지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선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11월 편파·왜곡보도를 반복했다는 이유로 MBC 기자들을 전용기에 태우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전용기 안에서조차 우호적인 몇 언론만 따로 만나 비판을 더 키웠다. 1월15일 체포되기 전엔 측근들에게 기성 매체 대신 유튜브를 권했다. ‘계엄 2인자’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변호인은 기자회견을 한다면서 경찰을 불러 비판언론 출입을 막은 일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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