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페미 방치하며 민주주의를 말하는 역설

[이슈 인사이드 | 젠더] 정지혜 세계일보 외교안보부 기자

정지혜 세계일보 외교안보부 기자.

12·3 비상계엄 사태를 일으켜 내란수괴 혐의를 받는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여부가 결정될 운명의 날이 다가오고 있다. 계엄 해제안 가결 직후이긴 했지만 실제로 이뤄졌던 국회 단전, 체포 대상 500명을 ‘수거’해 은밀히 처단하려 한 정황, 윤 대통령의 장기 집권 구상안 등 연일 속보로 업데이트되는 내용에 많은 이들이 가슴을 쓸어내리는 중이다. 그날 밤 계엄을 막지 못했다면 지금 어떤 지옥도가 펼쳐지고 있을까.


현직 대통령이 주도한 불법 계엄 선포에 맞서 한국 사회를 지켜낸 것은 과거 계엄령과 국가 폭력의 역사를 기억하며 거리로 나온 시민들이었다. 45년 만의 비상계엄은 그렇게 6시간 만에 해제될 수 있었다. 다행히, 그리고 가까스로 비극이 반복되는 것을 막은 한국을 향해 전 세계는 “민주주의가 살아있어 나라를 수호했다”며 경의를 표했다.


하지만 동시에 한국의 민주주의는 아직 갈 길이 멀다. 훼손된 민주주의를 복구하는 ‘회복적 민주주의’(Restorative Democracy)에 비해 애초에 민주주의가 훼손될 빌미를 주지 않는 ‘예방적 민주주의’(Preventive Democracy)는 부실하다는 점에서다. 한국의 민주화 운동은 회복적 민주주의의 대표 사례로 꼽히지만, 정치적 극단주의나 사회적 불평등 및 법치 훼손 등에는 취약해 예방적 민주주의 역량이 떨어진다고 평가된다.


국민 손으로 직접 뽑은 대통령이 친위쿠데타를 도모하는 악몽은 그렇게 현실이 됐다. 곳곳에 위험 징후는 있었다. 윤 대통령이 안티 페미니즘 정치와 결탁해 선거에서 이겼다는 사실이 대표적이다. 0.7%포인트, 역대 최소 표차로 판가름 난 지난 대선에서 이는 충분히 중요한 변수였다. 국민은 대선 공약으로 당당하게 ‘여성가족부 폐지’ 7글자를 내거는 대선 후보의 위험성을 보지 못했거나 애써 외면했다.


계엄의 전모와 함께 마침내 실체가 드러난 윤 정권의 파시즘(국가주의·권위주의를 표방하는 급진적 사상)적 세계관은 3년 전 예고된 것이었다. 서구에서는 이미 권위주의 사회와 안티 페미니즘·여성혐오의 상관관계, 그로 인해 증가한 테러·폭력 범죄 등이 증명된 바 있다.


이번 내란을 모의·실행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성범죄로 불명예 전역했음에도 현직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활약하며 끔찍한 계획을 주도한 정황은 여성혐오에 관대한 사회가 치르는 대가를 경고한다. 윤 대통령의 안티 페미니즘 공약에 열광했던 청년 남성층 중 일부는 2025년 1월 서부지법 폭동의 중심 세력으로 진화했다.
탄핵 광장에서 모습을 보기 힘들다는 20~30대 남성들을 모두 내란 동조 세력으로 일반화할 수는 없다. 다만 극우를 표방하며 계엄 지지, 탄핵 반대를 넘어 서부지법 폭동을 저항권 행사로까지 보는 이들과 20~30대 남성 사이엔 분명한 교집합이 있다. 폭력을 용인하는 정서다.


이를 촉발한 것이 다름 아닌 안티 페미니즘이란 점을 주목하게 된다. 시사IN이 3~5일 한국리서치와 공동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지나친 페미니즘의 영향을 막기 위해 법 규칙 위반이나 무력 사용이 정당화될 수 있다’는 문장에 전체 응답자 14%가 동의한 반면 20대 남성은 32%, 30대 남성은 25%가 동의했다.


제2의 윤석열, 서부지법 사태 재발을 막기 위해 지금 더 절실한 분석은 20~30대 남성의 극우화보다는 한국 사회의 안티 페미니즘화다. 페미니즘에 대한 반감이 정치 성향 불문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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