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사태를 일으킨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심판이 막바지에 이르렀다. 헌법재판소가 20일 10차 변론기일을 마지막으로 변론을 종결하고, 이르면 3월 초·중순 선고를 내릴 거라는 언론 보도가 나오고 있다. 지난해 12월27일부터 진행된 탄핵 심판 현장을 매순간 기록하고 있는 기자들은 윤 대통령과 증인들의 발언을 검증하며 사건의 실체에 접근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일주일에 두 번, 늦은 저녁까지 진행되는 탄핵 심판으로 기자들은 취재와 마감에 쫓기며 피 말리는 하루를 보내면서도, 탄핵 반대를 요구하는 대통령 지지자들의 공격까지 받는 등 여러모로 쉽지 않은 상황에 놓여 있다.
탄핵 심판에 직접 출석한 윤 대통령의 적극적인 자기 변론과 증인 신문, 대통령 대리인단의 헌재에 대한 압박과 공격, 수사기관 조사와 반대되는 증인들의 진술 등으로 변론이 열릴 때마다 탄핵 심판은 모든 이슈를 압도하고 있다. 언론사들은 변론 당일 법조팀 팀원 전원을 투입하거나 타 부서 기자를 파견 보내며 탄핵 심판 취재에 전력을 쏟고 있다. 방송사의 경우 많게는 8명의 기자가, 신문사는 4명이 헌재 취재를 담당하고 있다.
종합일간지 A 기자는 “보통 헌재는 법조 기자 1명이 담당한다. 헌재에 이렇게 많은 기자들이 몰리는 경우는 처음 볼 정도로 이례적인 상황”이라며 “주요 매체에선 기자 3~4명이 와 있는데, 한 명은 탄핵 심판이 진행되는 대심판정 현장을 스케치하고, 심판이 중계되는 브리핑룸에선 지면에 여러 개 잡힌 기사를 나눠서 쓰고, 또 밖에선 대리인단의 발언을 챙기는 식으로 역할을 분담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상 하루건너 하루씩 이어지는 탄핵 심판을 챙겨야 하는 것과 동시에 내란혐의 형사재판도 시작됐다. 고강도 업무에 법조 기자들은 체력적으로 방전된 상태라고 전했다. 방송사 B 기자는 “비상계엄 선포 전에도 김건희 여사 명품백, 도이치모터스 사건, 명태균 게이트 취재로 바쁜 상황이었는데, 비상계엄까지 터져 정말 정신이 없긴 하다”며 “법조팀원들 중 지난 3개월 동안 주 52시간을 지킨 사람은 한 명도 없을 정도다. ‘이것만 끝나면 괜찮겠지’라며 버텨온 게 벌써 몇 개월째”라고 토로했다.
경제지 C 기자는 “탄핵 심판 변론이 밤까지 진행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10시간 이상을 취재만 해야 하는 건데, 취재 환경도 그렇게 좋지는 않아서 밥을 굶어가면서 일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기자들을 힘들게 하는 건 “일시적, 평화적 계엄” 궤변 등 사태의 본질을 반복적으로 부정하는 윤 대통령의 주장이다. 부정선거 주장, 최근 수위가 세지고 있는 재판부에 대한 엄포성 발언 등도 기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장면이다.
종합일간지 D 기자는 “탄핵 심판을 지켜보며 ‘개소리에 대하여’라는 책이 계속 생각났다”고 말했다. 그는 “‘개소리가 거짓말보다 훨씬 더 큰 진리의 적’이라는 문구가 있다. 재판에서 계속 본질과 다른 부정선거 의혹을 얘기한다든지 사실관계와 다른 발언을 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는 게 고역”이라며 “변호인단이 얘기하고 있는데 본인이 나서서 재차 제지를 한다든지, 이 재판이 불공정하다는 시그널을 지지층들한테 계속 보내고 있는데 탄핵 심판의 본질을 흐리게 하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방송사 E 기자는 “증언을 보도해야 하지만 모든 증언이 맞는지 따져봐야 하는 게 쉽지 않다. 기자들도 그 부분에서 다들 고생을 하고 있다”며 “늦게까지 변론이 길어지며 당일 메인뉴스엔 꼼꼼히 따져보고 반영하기 어려운 상황이 이어져 아쉬운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헌재는 8차 변론까지 비상계엄 관련자 14명의 증인 신문을 마쳤다. 탄핵 심판을 지켜본 기자들이 꼽은 문제적 장면은 무엇일까. B 기자는 “압권은 윤 대통령의 직접 신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여러 차례 윤 대통령 대리인이 의도한 바와 다른 답변을 하자, 윤 대통령이 직접 마이크를 잡아 ‘장관 기억 나시냐’며 하나씩 ‘정답’을 알려주기 시작했다. 김용현의 어리숙함과 윤 대통령의 비겁함이 여실히 드러났던 장면”이라고 전했다.
법조 기자들 전반에선 탄핵이 인용될 거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어 보였다. 헌재는 국회의 탄핵소추 사유를 △비상계엄 선포 △계엄포고령 1호 발표 △군·경찰 동원한 국회 방해 △영장 없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압수수색 △법조인 체포 지시 등으로 정리했는데, 기자들은 변론을 통해 탄핵 사유가 입증됐다고 봤다.
D 기자는 “변론 준비기일부터 대통령 대리인단이 형사재판처럼 엄격한 기준을 들며 탄핵 심판의 성질을 흔들려고 했으나 재판관들은 ‘이 탄핵 심판은 형사재판이 아니라 헌법재판’이라고 말하며 그 시도를 차단했다”며 “특히 재판부가 유일하게 직권으로 증인 채택한 조성현 육군 수도방위사령부 제1경비단장의 증언을 통해서도 탄핵 사유가 입증됐다고 본다”고 말했다. B 기자도 “국회에 군대를 보내고, 영장주의에 어긋나는 ‘정치인 체포’ 지시를 내렸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선관위에 군대를 보내 직원들을 체포하려 한 것 역시 수많은 증언과 증거들이 증명하고 있다”며 “5가지 쟁점 모두 명백한 위헌, 위법이라고 드러난 만큼, 탄핵은 만장일치로 인용될 것이라고 예상한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파면 이후의 상황이다. 기자들은 갈수록 발언의 수위가 세지는 윤 대통령 극렬 지지자들의 모습을 보며 헌재 주변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우려하고 있다. 기자들이 이들에게 협박·욕설 메일을 받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E 기자는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사건 때도 현장에서 취재진에 대한 폭력이 있었고, 최근 서부지법 사태도 있었는데, 선고 당일 헌재 현장에선 폭력적인 상황이 분출될 가능성이 분명 있다고 본다”며 “이에 대해 회사에서 대비할 방법이 있는지 걱정이 많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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