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초등생 살해 교사의 우울증 병력이 주목되면서 사건의 직접적 원인으로 오해하면 안 된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가운데 정신질환이 있는 교사들을 걸러내겠다는 정책 추진에도 신중한 보도가 요구된다. ‘정신건강보도 권고기준’에 따라 언론은 정신질환의 회복 가능성을 가장 염두에 둬야 하기 때문이다.
10일 사건이 발생한 바로 다음 날부터 여러 언론이 질병 휴직을 떠난 교사가 특별한 검증 없이 교단에 복귀했다고 보도했다. 우울증을 완치했는지 교육 당국이 제대로 확인하기 어려운 제도의 허점이 있었다는 것이다. 최근 질병휴직 교원 수가 매년 늘고 있다며 통계를 제시하고 이 가운데 몇 명이나 정신질환자인지 알 수 없다며 불안을 키우는 보도도 나왔다.
정치권에서도 반응했다. 13일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교원 임용 전후 정신질환 검사를 의무적으로 받게 하고, 증상이 발견되면 즉각 업무에서 배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12일에는 이주호 교육부 장관이 “정신질환 등으로 교직 수행이 곤란한 교원에게는 직권휴직 등 필요한 조처를 내릴 수 있도록 ‘하늘이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애초 이번 사건을 정신질환과 연관지어선 안 된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많다. 중앙정신건강복지사업지원단은 12일 입장문에서 “가해자의 특정 진단명이 반복적으로 언급되면서 원인으로 추정되는 것은 편견만 가중시킬 뿐 문제해결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정신질환이 영향을 준 범죄는 대개 우발적이다. 이번 사건은 방과후수업이 끝내는 때를 범행 시간으로, 시청각실을 장소로 선택했다. 또 아이가 무리에서 떨어져 혼자가 되길 기다렸다가 유인해 계획범죄로 볼 정황이 많다는 분석도 있다.
가해 교사는 교감이 자신을 업무에서 분리해 짜증이 났다며 “어떤 아이든 상관없이 함께 목숨을 끊을 생각이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얼핏 무차별 범행처럼 들리지만 학교 안에서도 가장 약한 무리인 학생을 범행 대상으로 고를 만큼 분별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우울증의 증상은 사회적인 위축으로 공격성과 직접적인 관련성도 적다.
그런데도 일부 언론은 가해자를 ‘우울증 교사’로 이름 지어 제목에 쓰고 우울증을 주제로 내세웠다. 지난해 11월 한국기자협회가 발표한 ‘정신건강보도 권고기준’은 정신질환을 범죄 원인으로 연관 지을 때는 ‘극히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 제목과 도입부(리드)에 정신질환을 언급하지 말라고도 규정한다. 제목과 도입부는 사건의 성격을 규정하는 힘이 크기 때문이다.
대전 지역의 한 기자는 “기자협회의 권고기준도 있고 발생 첫날에는 우울증 진단 사실이 확실하지도 않았던 데다 정신질환이 사안의 본질을 흐릴 수 있겠다 싶어 휴직 사유를 건강 때문이라고만 썼었다”며 “그런데 다음 날 경찰이 우울증 병력을 발표했고 공식적인 자리에서 얘기가 나온 이상 다들 우울증을 중요한 사실로 보도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일부 언론은 가해자에게 조현병 가능성이 있다며 확인되지 않은 진단명까지 언급했다. 온라인에서 떠도는 내용을 따라 쓴 결과였다. 권고기준에는 정신질환자는 위험하다는 편견을 막는 동시에 범죄자가 정신질환으로 심신미약을 주장하며 책임을 피하는 일을 막으려는 목적도 있다. 사실관계를 우선해야 할 언론이 편견에 기대 섣불리 면죄부를 줘선 안 된다는 것이다.
정신질환이 있는 교사를 걸러내겠다는 정책 추진도 신중히 보도할 필요가 있다. 권고기준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정신질환의 ‘회복 가능성’을 인정하고 보도에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신질환도 치료와 예방이 가능하니 언론이 정신질환자를 낙인찍어 배제하기보다 사회 통합이 이뤄질 수 있게 다뤄야 한다는 것이다.
권고기준 제정에 참여한 서미경 경상국립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정신질환자를 일괄적으로 배제하는 정책은 회복하려는 수많은 사람의 노력을 헛되게 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서 교수는 “누구나 우울증이나 좌절을 겪지만 좌절을 준 상대를 공격하거나 만만한 동물을 해코지하거나 자살을 시도하는 등 반응은 사람마다 다르다”며 “결국 공격 행동은 인격에 따른 결과일 뿐 정신질환이 원인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서 교수는 또 “교육자에게 정신건강은 물론 중요하지만 그건 사람을 상대하는 다른 모든 직업군에서도 마찬가지”라며 “이들 모두 진료를 받았다는 이유로 나의 문제가 회의석상에 올려지고 다른 사람이 평가하겠다는 것은 또 다른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신질환은 검열하듯 하면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이 강화돼 치료받기보다 더욱 숨기게 될 위험도 있다. 서 교수는 그보다는 “정신적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어떤 정신건강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지, 교사를 못 하게 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더 잘할 수 있게 할지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립정신건강센터가 가장 최근 발표한 ‘국가정신건강현황 보고서 2021’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의 정신질환 평생 유병률은 27.8%로, 4명 중 1명 이상이 일생 중 한 번은 정신질환을 경험한다. 하지만 대부분이 사회적 편견 때문에 치료받기를 꺼리는 탓에 이들 중 12.1%만이 의료기관을 찾는다.
하늘이법 제정을 촉구한 피해자 아버지도 치료와 회복에 초점을 뒀다. 그는 11일 빈소에서 기자들을 만나 “제2의 하늘이가 나오지 않도록 정부가 하늘이법을 만들어 심신미약 교사들이 치료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말했다. 정부나 여당에서 주장하는 직권휴직, 업무배제와 방향성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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