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긴급담화를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난해 12월3일 밤, KBS가 대통령실로부터 ‘계엄 방송’을 준비하라는 언질을 받았다는 의혹이 가시지 않고 있다. KBS 내에선 “절차적으로 생방송 전엔 통상 미리 요청이 온다”, “KBS뿐만 아니라 모든 방송사가 긴급담화를 동시에 틀었다” 등 일부 반박 의견이 나오지만, KBS가 타 방송보다 대통령의 긴급담화를 일찍 인지한 것만큼은 사실로 보인다. 그 시점과 경위 등 KBS의 추가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다.
기자협회보는 지상파, 보도전문채널, 종합편성채널 등 방송사 3곳의 보도국 간부들에게 비상계엄 당일 긴급담화를 생방송하기까지 과정을 물었다. 이들 모두 이날 오후 10시20분쯤 긴급담화가 발표되기 30~40분 전에야 ‘대통령의 발표가 나올 거 같다’는 소식을 출입 기자나 부서 보고 등을 통해 처음 알게 됐고, 계엄선포 이전까지 담화 내용을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계엄선포 직전 윤 대통령이 계엄을 반대하는 국무위원들에게 “22시 KBS 생방송이 이미 확정돼 있다”고 말했다는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의 경찰 진술 내용이 알려지며 이번 의혹은 재점화됐다. 이 전 장관의 진술 내용이 나오자 앞서 해당 의혹을 처음 제기했던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는 당일 저녁 상황을 추가로 전하기도 했다. 최재현 당시 KBS 보도국장이 퇴근했다가 ‘뉴스9’ 방송 전 급하게 회사로 들어와 대통령실 담화가 예정됐다며 준비를 지시했다는 것이다. “12월3일 ‘뉴스9’ 편집 담당 기자들은 당시 보도국장으로부터 오후 10시에 중대 발표가 있으니 스탠바이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한다. 기자들은 10시 조금 넘어 대기하다가 결국 아무 움직임이 없어 ‘뉴스라인’ 편집부에 생중계 업무를 넘기고 퇴근했다고 한다”는 내부 전언도 있다. 늦어도 이날 오후 9시쯤 최 전 국장은 대통령실의 긴급담화 소식을 알았을 가능성이 있다.
이는 다른 방송사가 전한 사정과 다르다. 이번 윤 대통령의 긴급담화는 풀단으로 구성된 방송사들의 생중계가 아닌, KTV(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정책방송원)가 찍은 영상을 각 언론사가 제공받아 나왔다. 대통령실 출입기자단을 통해 대통령 발표 시점, 내용 등이 공지됐던 일반적인 방식과도 달랐다. 대통령실 영상이 출입 언론사에 공유되는 통신망(라인)이 열린 것을 본 영상 기자·중계 PD 등을 통해 대통령의 발표가 있을 거라고 추측하게 된 경우였다.
A 방송사 정치부장은 “이날은 대통령실의 엠바고 요청이 전혀 없었고 ‘KTV 라인 하나가 열려 있다’는 얘기가 지라시(정보보고)로 먼저 돌았다. 대통령실을 출입하는 영상 기자에게 라인이 열려있다는 걸 확인받고 ‘뭔가를 발표하나 보나’ 싶어 일단 영상을 받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방송사 보도국장도 “대통령 발표가 임박해서야 전달받았다”고 덧붙였다.
B 방송사 보도국장은 “오후 10시가 좀 안 된” 시각, 중계 담당 PD로부터 처음 긴급담화 소식을 접했다. 그는 “아주 특이한 경우는 아니다. 펜 기자나 영상 기자가 속해있는 풀단이 아닌, 방송사 네트워크로 중계PD들이 있는 ‘중계 풀단’에서 먼저 발표가 있을 것 같다는 연락을 받았다”며 “그다음 대통령실 출입 기자들의 보고로 확정적으로 알게 됐고, 10시 반에 발표된다고 풀(pool)이 됐다”고 말했다.
C 방송사 보도본부장은 “출입 기자 단톡방에서 대통령 발표 영상을 받을 준비를 하라는 정도의 공지가 있었던 걸로 알고 있다. 그게 9시40분에서 10시 사이”라며 “부서 보고를 받고, 무슨 내용인지 모르니 알아보라고 했지만 결국 마지막까지 파악이 안 됐다”고 말했다.
KBS가 타 방송사보다 일찍 생방송을 준비했다고 하더라도, 계엄선포라는 내용까지 알았다고 볼만한 구체적인 정황이 나온 건 아니다. 타 방송사 간부들은 발표 직전까지도 담화 내용이 ‘예산 관련일 것’이라는 보고만 받은 상태였다. B 방송사 보도국장은 “출입 기자들한테 확인했을 때 발표가 무슨 내용인지, 대통령이 직접 나오는 건지 다 확인이 안 됐던 상태였다”고 말했다. A 방송사 정치부장도 “대통령이 그 시간에 긴급 발표를 한다는 게 이례적이긴 하지만, 내용을 모르는 상태에서 무작정 특보를 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며 “야근팀엔 일단은 어떤 내용인지 보고 나서 특보를 진행하는 게 어떻겠냐고 말한 기억이 있다”고 했다.
최재현 전 국장도 의혹이 처음 불거지고 이틀 뒤인 지난해 12월6일 입장문을 내어 “대통령의 발표 2시간 전 대통령실 인사 누구와도 통화한 사실이 없다. 따라서 실제 발표가 이뤄지기 전까지는 어떤 내용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KBS가 긴급담화 자체를 먼저 인지한 것은 사실로 보이고, 대통령이 “22시 KBS 생방송 확정”을 언급했다는 당시 국무위원 진술도 나온 만큼 KBS가 언제, 어떤 경로로 정보를 입수했는지 추가 설명이 필요해 보인다. 그러나 KBS는 이상민 전 장관의 경찰 진술이 알려진 1월30일 이후엔 계엄 당일 생방송 과정에 대한 구체적 설명이나 입장은 밝히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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