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늬만 프리' 실태점검·개선 논의의 장 열어야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지난해 9월 세상을 등진 MBC 기상캐스터 오요안나씨가 ‘직장 내 괴롭힘’ 피해 정황이 담긴 유서를 남겼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공개된 일부 유서 내용과 유족·지인의 증언으로 미뤄볼 때 고인은 생전 심각한 심적·육체적 고통을 겪었던 것으로 보인다. 유족은 그 배경에 다른 캐스터의 괴롭힘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MBC는 의혹을 철저하고 신속하게 규명해야 한다.


MBC의 초기 대응은 부적절했다. ‘MBC 흔들기 차원에서 접근하는 세력들의 준동’ 운운하며 사태의 본질과 한참 어긋난 입장문을 발표해 논란을 일으켰다. ‘고인이 자신의 고충을 책임자들에게 알린 적이 전혀 없다’는 입장문 내용이 사실이라고 해도 MBC는 책임을 결코 회피할 수 없다. 오씨는 2021년 5월부터 2024년 9월까지 3년 4개월 동안 MBC 뉴스 프로그램에서 날씨 예보를 담당했다. 주요 출연자가 황망하게 세상을 떠났는데도 이후 4개월 넘도록 괴롭힘 논란에 관해 인지하지 못했다면 MBC의 책임은 더욱더 무겁다고 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MBC는 안팎의 비판 여론에 떠밀리듯이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는 모양새가 되면서 불신을 자초했다. 신뢰를 회복하는 길은 이제라도 빈틈없는 조사로 진실을 밝히는 것뿐이다.


이번 사태가 괴롭힘 의혹을 밝혀내는 것만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방송사에 만연한 비정규직·프리랜서 고용 실태를 점검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오씨는 엄연히 ‘MBC 기상캐스터’였지만 정작 MBC에서 받은 1년치 급여는 1600만~1800만원에 불과했다고 한다. MBC 기상캐스터 6명이 모두 프리랜서로, 방송 출연 건건이 출연료를 받는 신분이기 때문이다. 오씨의 유족과 방송계 노동·인권단체는 이 신분상 불안정성이 오씨 등 기상캐스터들을 극심한 경쟁으로 몰아넣어 소모시킨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다른 방송사도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다. 방송통신위원회의 ‘방송사 비정규직 근로여건 개선방안 연구’를 보면, 2021년 KBS·MBC·SBS·EBS 등 지상파 방송사 13곳의 비정규직은 9199명이다. 이 중 32.1%(2953명)가 프리랜서다. 이처럼 왜곡된 고용구조가 방송사를 떠받치는 셈이다.


물론, 방송사에는 빠르게 변화하는 시류와 현안에 대응하기 위해 외부 전문 인력 등 프리랜서가 필요한 사정이 존재한다. 하지만 사실상 사용자의 지휘·감독 아래 일하는 직군인데도 프리랜서 계약을 남발해 온 것은 아닌지 짚을 필요가 있다. 오씨는 새벽 라디오 방송과 아침 TV 방송을 맡았고, 3개월가량 회사 숙직실에서 잠을 잤다고 한다. 유족은 출·퇴근 관리와 조직 내 선후배 관계가 있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프리랜서의 사전적 정의인 ‘사업자와 사업자가 대등한 관계로 맺는 용역 계약’에 따라 일했다고 볼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프리랜서 계약을 맺고 기상 뉴스뿐만 아니라 TV·라디오 프로그램 진행 등 고정·필수 업무에 줄줄이 투입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무늬만 프리랜서’인 셈이다. 법원과 고용노동부 등이 프리랜서 아나운서·방송작가·PD 등을 대상으로 근로자성을 인정하는 판단을 잇달아 내놓는 이유다.


오씨의 유족은 언론을 통해 ‘복수’가 아니라 ‘을들의 전쟁’을 끝내길 원한다고 밝힌 바 있다. 단편적 사실을 바탕으로 가해자 낙인찍기에 몰두하는 작금의 언론 보도 행태는 진상 규명과 고인의 명예 회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상당히 우려스럽다. 괴롭힘 의혹의 진실은 진실대로 차분히 밝히면서 방송사 비정규직 실태 진단 등 보다 생산적인 논의의 장을 열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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