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산업에서 인수합병(M&A)은 기업의 경쟁력 강화와 시장 지배력 확대를 위한 핵심 전략으로 활용된다. 글로벌 미디어 기업들은 M&A를 통해 콘텐츠 제작 역량을 키우고, 유통 네트워크를 확장하며, 신기술을 확보하는 데 주력해 왔다. 특히, 미국은 적극적인 M&A를 통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며 미디어 산업 생태계를 확장해 왔다. 본 칼럼에서는 최근 M&A 사례를 통해 미디어 산업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분석하고자 한다.
미국 미디어 산업에서 M&A는 필수적인 전략으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스카이댄스 미디어(Skydance Media)의 파라마운트 글로벌(Paramount Global) 인수합병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이 거래는 약 80억 달러(약 11조 6000억 원) 규모로, FCC(미 연방통신위원회)의 승인 절차가 진행 중이다.
파라마운트 글로벌의 매각 이유는 재정적 어려움, 미디어 시장 변화, 경쟁력 약화 때문이다. 전통적인 레거시 미디어의 침체로 인해 주가는 최근 3년간 50% 이상 하락했고, 시가총액도 100억 달러 이하(10일 기준 약 75억 달러)로 감소했다. 이에 따라 오랫동안 CBS와 파라마운트 픽처스를 소유해 온 레드스톤 가문은 운영에 한계를 느끼고 파라마운트 글로벌 매각을 결정했다.
스카이댄스가 인수에 최종 성공하게 되면 미국 지상파 방송인 CBS, 니켈로디언·MTV 같은 유명 케이블 채널, ‘미션 임파서블’, ‘탑건: 매버릭’, ‘트랜스포머’ 등을 보유하고 있는 파라마운트 픽쳐스, 그리고 7200만 구독자를 확보한 스트리밍 서비스 파라마운트+를 보유하게 된다.
그동안 ‘미션 임파서블’, ‘탑건: 매버릭’ 등을 제작해 온 제작 중심의 스카이댄스는 DTC(Direct-to-Consumer) 시장에 진출은 물론, 한순간에 할리우드 메이저 제작사로 도약하게 된다. 반면, 파라마운트는 새로 유입되는 자본과 스카이댄스의 기술력을 활용해 경영난을 극복하고, 콘텐츠와 기술 투자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또한, 폭스 코퍼레이션(Fox Corp)이 레드 시트 벤처스(Red Seat Ventures)를 인수한 것도 주목할 만한 사례다. 2025년 2월, 폭스는 디지털 미디어와 팟캐스트 시장 확대를 위해 레드 시트 벤처스를 인수했다. 레드 시트 벤처스는 메긴 켈리(Megyn Kelly)와 터커 칼슨(Tucker Carlson) 같은 유명 미디어 인물들의 디지털 미디어 플랫폼을 운영하는 비디오 팟캐스트 회사로, 이번 인수를 통해 폭스는 젊은 오디언스를 대상으로 한 팟캐스트와 디지털 콘텐츠 시장에서 입지를 강화할 수 있게 됐다.
폭스의 이번 인수는 미디어 소비 트렌드 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첫 번째, 레거시 미디어의 약화와 디지털 콘텐츠 소비 증가 때문이다. 폭스는 케이블 뉴스와 레거시 방송(Fox News, Fox Business, Fox Sports 등)에 기반을 미디어 기업이다. 그러나 젊은 시청자들이 스트리밍, 유튜브, 팟캐스트 같은 디지털 콘텐츠로 소비 패턴을 바꾸면서 전반적인 TV 시청은 급감했고, 지난해 미국 대선의 특수 상황을 제외하면 대형 방송사들의 광고 매출은 하락 추세로 돌아서면서 위기를 맞고 있다. 당연히 폭스는 이러한 변화 속에서 기존의 방송 중심에서 벗어나 새로운 디지털 미디어 시장으로 이동하고 확장할 필요가 있었다. 폭스는 레드 시트 벤처스를 FAST(free ad-supported streaming TV) 플랫폼인 Tubi 스트리밍 사업부에 편입시킬 계획이다.
두 번째는 비디오 팟캐스트 시장이 급성장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미국 대선을 거치면서 미국 팟캐스트 시장은 약 230억 달러 규모로 성장했다. 이는 2021년 대비 두 배 이상 증가한 수치로, 전통적인 뉴스 소비가 줄어드는 대신 롱폼 오디오 콘텐츠(긴 인터뷰, 분석 중심 콘텐츠) 소비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폭스의 레드 시트 벤처스 인수는, 폭스 뉴스 퇴사 후 독립적으로 팟캐스트 활동을 이어가면서 디지털 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보한 인플루언서와 오디언스를 모두 확보하면서 레거시 방송 뉴스의 한계를 극복하고 디지털 미디어 시장에서 포지셔닝을 선점하려는 전략이라 할 수 있다. 폭스는 기존 TV 및 케이블 뉴스 시청층이 팟캐스트 청취자로 전환되었기 때문에 오디언스가 있는 곳으로 비즈니스를 이동(Shift)하면서 확장한 것이다.
반면, 한국 미디어 산업에서는 M&A가 상대적으로 활발하지 못하다. 최근에 한국의 대표적인 스트리밍 업체인 티빙과 웨이브가 합병을 추진했으나 결국 성사되지 못했고, 현재는 CJ ENM이 웨이브의 최대주주가 되기 위해 심사를 받고 있는 중이다.
한국의 방송사와 언론사는 인수합병을 통한 시장 확장보다는 내부적인 콘텐츠 및 기술 개발을 중심으로 점진적 성장을 추구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이는 엄격한 규제 환경과 보수적인 기업 문화, 그리고 미디어 기업 간 M&A가 정치적 논란으로 번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존 기업들이 독립성을 유지하려는 성향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디어 시장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무엇보다 인공지능(AI) 기술 도입으로 제작 시스템의 변화는 물론이고, 경쟁의 무대가 지역(Local)으로 한정되어 있거나, 지역 사업자간 경쟁이 아니라는 점은 우리에게 수많은 고민을 던져준다.
이제는 생존을 위해서 보다 유연한 전략과 시장 변화에 대한 신속한 대응 전략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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