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가 시작되기 전, ‘이것’의 존재를 아는 이는 많지 않았다. 적어도 언론 보도만 보면 그렇다. 주말이자 연휴의 시작이었던 1월25일만 해도 ‘이것’을 다룬 기사는 소수에 불과했으니까. 하지만 긴 연휴를 지나면서 ‘이것’의 존재감은 삽시간에 커졌고, 이제는 그 이름을 모르는 이가 없다. 중국에서, 중국인이 만들어 미국을 휩쓴 생성형 인공지능(AI) 모델 딥시크(DeepSeek) 얘기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빅테이터 분석 시스템 빅카인즈에서 딥시크를 검색해보니 연휴 한복판이었던 1월28일부터 2월2일까지 엿새간 104개 언론사에서 보도한 기사는 1700건이 넘는다. 하루 평균 300건, 언론사 한 곳당 17건꼴로 기사를 쏟아냈단 뜻이다.
창업 3년차에 접어든 딥시크가 추론 특화 모델 ‘딥시크-R1’을 공개한 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취임일인 1월20일. 이후 닷새도 안 돼 미국 애플 앱스토어에서 미국의 오픈AI가 개발한 챗GPT를 제치고 가장 다운로드 많이 된 애플리케이션(앱) 1위를 차지하는 파란을 일으켰다.
증권시장의 파문은 더 컸다. 1월27일(현지시각) 뉴욕 증시에선 반도체 관련주가 일제히 급락했는데, 그중 가장 직격탄을 맞은 곳이 엔비디아였다. 엔비디아 주가는 전 거래일보다 무려 16.97% 폭락해 코로나19 초기였던 2020년 3월 이후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시총은 하루 만에 5890억 달러(약 850조원)가 증발했다.
미국을 휩쓴 딥시크 돌풍에 한국 언론도 화들짝 놀랐다. 휴일이었던 1월28일부터 딥시크 관련 기사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언론은 미국 빅테크 대비 10%의 저비용으로 고성능 AI 모델을, 그것도 중국에서 만들어냈다는데 충격과 의문을 표했다.
연휴가 끝난 뒤인 1월31일자 신문 주요 지면도 딥시크가 휩쓸었다. 동아·조선·중앙일보가 일제히 1면 머리기사로 다뤘고, 다른 신문들도 최소 1개 면 이상을 할애해 ‘딥시크 쇼크’와 그 파장을 보도했다.
경제지는 더 민감하게 반응했다. 한국경제신문은 1월31일 1면 머리기사부터 2~4면까지를 ‘딥시크發 미·중 AI 전쟁’ 기사로 채웠다. Q&A 형태로 딥시크를 집중해부하고, 미국이 독주하던 글로벌 AI 시장의 균열을 분석한 뒤, 국내 및 세계 AI 반도체산업에 미칠 영향 등을 심층 보도했다. 이어 1일과 3일에도 연속해서 중국의 소프트웨어 생태계를 분석하고, ‘삼류’로 전락한 한국 AI 경쟁력의 실태를 조명했다.
매일경제신문도 1월31일 1면 머리기사와 2~4면에서 ‘위기, 대변혁의 기회로’란 슬로건으로 딥시크 돌풍을 조명했다. 1일과 3일에도 관련 보도는 이어졌다. 글로벌 시장에서 ‘2군’으로 평가받는 한국의 AI 기술, 이와 달리 AI 기술이 실생활에 빠르게 녹아들며 관련 스타트업도 잇달아 성과를 내는 중국의 현실 등을 다뤘다.
종합일간지 중에선 조선일보가 가장 적극적인 모양새다. 신년기획으로 AI를 다루고 있기도 한 조선일보는 딥시크 탄생을 가능케 한 중국의 인재 양성 시스템과 교육에도 주목하고 있다. 3일엔 딥시크 창업자인 량원펑의 고향 마을 르포 기사를 1면 머리기사로 싣기도 했다. 조선은 사설도 딥시크 관련해 사흘 연속 썼다. 3일자 <중국 30대 젊은 혁신의 힘, 한국은 의대 광풍> 사설에선 딥시크의 개발 주역인 30세 여성 공학자 뤄푸리가 중국 2030의 우상으로 떠오른 소식을 전한 뒤 “우수한 인재가 의사·변호사로만 몰리는 나라에 어떤 미래가 있겠나”라며 “청년들이 과학기술 분야에 뛰어들어 혁신을 주도하고 충분한 보상이 주어지는 시스템을 만들지 못하면 글로벌 기술 전쟁에서 패자로 전락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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