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휴직 반려한 한겨레 부국장 '견책' 징계
'분란 야기' 근거 징계... 괴롭힘은 인정 안 돼
이주현 뉴스룸국장엔 징계 아닌 '경고'
공동위 노측 "재발방지 호소 외면한 것"
가족돌봄휴직 신청자에게 가족회의 내용과 간병계획 등 과도한 증빙을 요구했다며 신고가 접수된 한겨레 뉴스룸국 부국장에게 견책 징계가 내려졌다. 징계 사유는 회사 안팎에 분란을 불러일으켰다는 것으로 신고자와 노조 측이 주장한 직장 내 괴롭힘은 인정되지 않았다.
한겨레는 1월23일 인사위원회를 열고 ㄱ 부국장에게 견책 징계를 의결했다. 해고, 정직, 감봉, 견책 네 단계 징계 가운데 가장 낮은 수위다. 징계 사유로는 취업규칙상 ‘직무상 장애 또는 분쟁을 야기’ 조항이 적용됐다. 함께 신고된 이주현 뉴스룸국장에게는 징계가 아닌 ‘경고’를 줬다.
두 사람에 대한 직장 내 괴롭힘 신고는 지난해 12월 서울지방노동청을 통해 이뤄졌다. 신고자인 뉴스룸국 소속 직원은 시어머니가 의식불명이라며 지난해 9월 입원확인서를 내고 무급휴직 6개월을 신청했다. 국장단은 시어머니를 돌볼 다른 가족이 없는지 증명하라며 신청을 한 차례 반려하고 가족회의 내용과 간병계획을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괴롭힘 신고에 관한 사규에 따라 한겨레는 노사 동수로 노사공동위원회를 꾸렸다. 공동위는 지난해 11월부터 두 달 동안 조사를 거쳐 추가 증빙 요구가 괴롭힘에 해당한다고 결론 냈다. ㄱ 부국장의 요구가 무리했고 이 국장은 이에 동조했다는 것이다. 신고자는 공동위 조사가 시작되기 전 인사위 허가를 받아 휴직에 들어갔다.
인사위는 공동위 조사결과보고서를 1월13일 제출받았지만 괴롭힘은 인정하지 않았다. 한겨레 사측은 “인사위가 추가 조사를 벌이고 법무법인의 의견 등을 받고 두 차례에 걸쳐 장시간 토론을 벌였다”며 “필요한 증빙 요구라서 (이전 사례와 비교해도) 형평성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증빙자료를 내라는 지시가 업무 적정 범위를 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남녀고용평등법에 따르면 대체인력 채용이 불가능하거나 사업에 중대한 지장이 있는 경우 외에도 돌봄을 수행할 다른 가족이 있는 때 회사는 돌봄휴직 신청을 반려할 수 있다. 같은 법 시행령에는 다른 가족이 돌봄을 맡을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서류 제출을 요구할 수 있게 규정돼 있다.
다만 법령에 근거가 있는 업무상 조치라도 사회 통념상 적정범위를 넘어서 정신적 고통을 주면 괴롭힘이 될 수 있다. 고용노동부가 2019년 작성한 ‘직장 내 괴롭힘 판단 및 예방·대응 매뉴얼’에 따르면 일회적이거나 행위자에게 괴롭히려는 의도가 없었더라도 인정된다.
공동위 노동자 측 위원들은 인사위 징계 의결 다음 날인 1월24일 성명을 내고 “오직 재발 방지를 위해 괴롭힘을 인정받아야 한다는 피해자의 간절한 호소를 외면하고 가해자만을 두둔한 최악의 결정”이라며 “진보언론이라는 한겨레가 그 내부는 위계에 의해 하위자, 약자에게 권위적이고 부당한 조직이라는 데 다시 한번 슬픔을 느낀다”고 규탄했다.
지난해 10월 노보를 통해 이번 사안이 알려진 뒤 한겨레 내부에서는 증빙자료 요구가 아무리 법에 근거했어도 적정한 정도를 넘었다는 목소리가 컸다. 휴직 신청자 혼자 돌봄에 전념해야 한다는 건 한겨레가 비판해 온 ‘독박 돌봄’을 뜻하는 데다 가정사를 증명하라며 법 규정을 남용하면 ‘사생활 검열’이 된다는 것이다.
당시 국장단에 사과와 재발 방지를 요구하는 한겨레 내부 연서명에는 100명이 자기 이름을 밝히고 참여했다. 이 국장은 구성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저의 증빙자료 제출 요구로 상처 입으신 점 사과드린다”며 “현실에서 있을 수 없는 가족회의‘록’이나 불필요한 계획‘서’를 증빙하라는 무리한 요구로 받아들였을 것”이라며 자기 뜻이 곡해됐다고 해명했다.
한겨레는 1월31일 징계 처분 결과를 노동청에 통보했다. 노동청은 처분 결과를 검토해 한겨레의 조치에 절차나 내용에 잘못이 있다고 판단하면 다시 조치하라고 시정 지시를 보내고 그렇지 않으면 사건을 종결한다. 사업주에 의한 괴롭힘이 아닌 이상 노동청이 사건을 직접 조사할 책임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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