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 기자실 개방... 광폭 소통인가 '주류언론 선긋기'인가

미 최연소 백악관 대변인 "뉴미디어에도 브리핑룸 개방"
팟캐스터·인플루언서·크리에이터까지… "대중매체 불신 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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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백악관 기자실을 팟캐스터나 소셜미디어 인플루언서 같은 개인 미디어에도 개방하겠다고 밝혔다. 집권 1기 내내 기성 언론과 불화했고, 지난해 선거 과정에서도 팟캐스트나 특정 매체와만 인터뷰했던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 출입기자의 자격 기준까지 바꾸겠다고 한 것이다. 대통령이 나서서 ‘레거시 미디어 말고 유튜브를 보라’고 할 정도로 진영 불문 유튜버들의 영향력이 막강해진 우리 사회도 머지않아 겪게 될지 모를 일이다.

미국 백악관의 캐롤라인 레빗 대변인이 미 동부 현지시각 기준 1월28일 브리핑에서 기자실 정책 변화를 설명하고 있다. /백악관 유튜브

1월28일(현지시각) 미 백악관의 제임스 브래디 브리핑룸에서 열린 언론 브리핑은 여러 면에서 ‘파격’이었다. 먼저 이날 브리핑에 나선 캐롤라인 레빗 대변인부터가 그렇다. 레빗 대변인은 1997년생으로 올해 나이 27세의, 역대 최연소 백악관 대변인이다. 레빗 대변인은 두꺼운 서류철을 앞에 두고 기자들의 질문을 받던 역대 백악관 대변인들과 달리 이날 단 몇 장의 종이만 들고 브리핑룸에 들어섰다. 그리고 첫 질문을 AP통신 기자가 맡아온 관례를 깨고 온라인매체인 악시오스와 우파 매체 브레이트바트 기자에게 먼저 질문권을 줬다.

레빗 대변인은 이날 백악관 브리핑룸을 뉴미디어에 개방하겠다면서 “독립 언론인, 팟캐스터, 소셜미디어 인플루언서와 콘텐츠 크리에이터”가 백악관 출입을 신청하는 것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백악관의 언론 담당 직원들이 앉던 브리핑룸 앞자리를 ‘뉴미디어’를 위한 자리로 만들겠다고도 밝혔다.

그러면서 웹사이트를 통해 출입 신청을 받겠다고 했는데, 언론 보도에 따르면 신규 출입 신청만 7000건 이상이 접수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웹사이트에서 요구하는 정보는 이름과 이메일주소, 전화번호, 우편번호와 많이 쓰는 소셜미디어 계정뿐이다.

미 동부 현지시각 기준 1월28일 열린 백악관 브리핑에서 기자들이 레빗 대변인에게 질문하고 있다. /백악관 유튜브

레빗 대변인은 “트럼프 대통령은 이 방(브리핑룸)에 있는 기성 언론(레거시 미디어)만이 아닌 모든 미디어, 인사들과 대화할 것”이라면서 대중매체에 대한 미국인의 높은 불신을 그 이유로 들었다. 그는 갤럽의 최근 여론조사를 인용해 “수백만 명의 미국인, 특히 젊은 세대가 전통적인 TV 매체와 신문에서 벗어나 팟캐스트, 블로그, 소셜미디어 및 기타 독립 매체에서 뉴스를 소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해 10월 갤럽 조사에서 대중매체(mass media)를 ‘매우/상당히’ 신뢰한다는 답변은 31%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36%),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33%) 보다 낮았다. 특히 연령대별로 신뢰도 격차가 커서 65세 이상은 43%가 ‘매우/상당히’ 신뢰한다고 답한 반면, 18~49세는 26%에 불과했다.

미국인 대다수가 신문·방송 같은 대중매체를 신뢰하지 않고 잘 보지도 않으니, 많은 사람이 보고 영향력도 큰 뉴미디어에 백악관 기자실을 개방하겠다는 설명은 타당하게 들린다. 그러나 이런 방침이 기성 언론,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불편해하거나 반감을 보인 특정 매체를 ‘배제’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갤럽이 지난해 10월 발표한 미국인들의 대중매체 신뢰도 조사. 매우/상당히 신뢰한다는 응답이 2016년의 32%보다 낮은 31%를 기록했다.

단지 기우가 아니다. 미국의 정치전문 매체 더힐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장남인 트럼프 주니어는 아버지가 백악관 기자 브리핑실에 일부 주류 언론 매체를 출입시키지 않는 것에 대해 논의했다고 말한 바 있다. 지난해 11월 더힐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주니어는 자신의 팟캐스트에서 뉴욕타임스를 가리켜 “민주당의 마케팅 부서로 기능한다”고 꼬집으며 “왜 더 시청률이 높고, 강력한 팔로워를 가진 사람들에게 (기자실을) 개방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영국 옥스퍼드대 부설 로이터 저널리즘 연구소가 지난달 발표한 ‘저널리즘과 기술 트렌드 및 전망 2025’ 보고서에서도 “트럼프는 잠재적으로 백악관 브리핑룸에서도 주류 언론인의 접근을 제한하고, ‘대안’ 미디어를 지원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한 바 있다. 트럼프는 또 ‘불공정한’ 보도를 한 방송사의 라이선스를 취소하고 출처 밝히기를 거부하는 기자들을 감옥에 가두겠다고도 위협했는데, “이러한 수사만으로도 언론 보도를 위축시킬 수 있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보고서는 지적한다.

과연 백악관의 기자실 ‘개방’ 정책은 레빗 대변인이 말한 것처럼 ‘모든 미디어’와 소통하려는 취지일까. 아니면 맘에 들지 않는 언론을 기자실에서 내쫓거나 질문권을 주지 않기 위한 그럴듯한 명분으로 봐야 할까. 트럼프와 백악관의 향후 행보를 주목하게 되는 한편, 12·3 계엄 이후 극심한 분열 속에 기성 언론에 대한 불신과 반감이 극에 달한 국내 언론과 정치 환경에도 의미심장한 시사점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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