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데스크·경영진 3박자… 뉴스룸 더 시끄러워져야"

책 '오염된 정의' 쓴 김희원 한국일보 기자
현직 기자·지망생 50여명과 북토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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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저녁 서울시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김희원 한국일보 뉴스스탠다드실장(오른쪽)이 '오염된 정의' 저자와의 만남을 열고 현직 기자와 기자 지망생 50여명을 만났다. 왼쪽은 이날 행사 사회를 맡은 이희정 미디어오늘 사장. /박성동 기자

“물론 기자 한 명이 나서서 다 할 수는 없겠죠. 그럼에도 기자는 언론사의 운명을 방향 지을 만큼 다른 조직보다 회사에서 영향력이 커요. 이건 부정할 수 없어요. 데스크에게 혼자 말하기 어렵다면 동료들과 같이라도 얘기해야 합니다. 그래서 뉴스룸이 좀 더 시끄러워지면 좋겠다고 한 거예요.”

23일 서울시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책 ‘오염된 정의’를 쓴 김희원 한국일보 뉴스스탠다드실장이 저자와의 만남을 열었다. 현직 기자와 기자 지망생 50여명이 참석해 언론이 처한 지금과 앞날에 대한 고민을 털어놨다. 김 실장과 한국일보에서 30년 가까이 일한 이희정 미디어오늘 사장이 사회를 맡았다.

김 실장은 비전 있는 경영진, 유능한 국장, 열정적인 기자가 만나 좋은 저널리즘을 만든다고 강조했다. 그러려면 기자부터 목소리를 내야 한다. 이견을 말하고 다퉈야 한다. 기사에 이름이 적히는 사람은 결국 기자이고 기자가 자기 기사에 오롯이 책임지는 건 시간이 지나서도 달라지기 어려운 숙명이기 때문이다.

김 실장은 저서에서 2021년 한강 대학생 사망사건 보도를 기자들이 나선 예로 들었다. 당시 언론은 숨진 대학생의 친구를 범인으로 몰았다. 유튜버들이 만든 자극적인 분위기에 휩쓸렸다. 한국일보는 사건팀 기자들이 문제를 제기해 팀장과 부장단을 거쳐 국장이 확인된 최소한의 사실만 기사화하기로 했다.

“훌륭한 데스크와 일할 때 느끼는 보람이 커요. 손발이 맞는 사람과 일하면 조직이 이슈를 주도하고 좋은 기사를 써서 호응받는 성과를 얻기도 하고요. ‘기자는 이런 직업이구나’ 하는 전율을 느낄 수 있어요. 그 경험이 기자를 못 그만두게 만들죠.” 김 실장 설명에 기자와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시간 동안의 행사에서 모두 10명이 김희원 실장에게 질문했다. 현직과 예비 언론인이 고민을 터놓고 대화하는 분위기를 만들려는 주최 측 요청에 따라 질문자의 소속과 실명은 기사에서 모두 가렸다. /도서출판 사이드웨이

김 실장은 뉴스스탠다드실에서 자사 보도를 평가하고 지침을 제시한다. 지난해 7월에는 MBC ‘손석희의 질문들’에 출연해 기성 언론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토론에서 유시민 작가는 언론은 신뢰를 잃었고 유튜브가 희망이라고 주장했다. 김 실장은 언론의 역할을 등한시하면 사회 전체가 신뢰를 잃고 혼란에 빠진다고 지적한다.

김 실장은 “음모론이나 반사회적인 의견이 유튜브나 SNS에서 생산되는데 화제가 된다는 이유로 받아쓰면 언론이 가짜뉴스를 유통하는 공범이 된다”고 말했다. 허위정보가 확대하는 주요 계기가 다름 아닌 언론의 보도이기 때문이다. 보도가 필요하다면 정보나 의견을 하나하나 검증해 따져가며 전해야 한다.

한 대학생은 “태극기 집회나 극우 유튜브 채널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정치인이 국회에서 발언하는 경우가 많다”며 “허위 정보가 이렇게 공적인 성격이 있는 때에는 어떻게 보도해야 하느냐”고 질문했다. 김 실장은 “문제 발언을 중계하지 말고 검증해 제목에 넣으라고 강조했더니 ‘그럼 속보 처리는 어떻게 하느냐’며 반응이 왔다”고 말했다.

김 실장은 그러면서 “이런 ‘따옴표 저널리즘’의 원인이 기자에게만 있거나 정파성의 문제만은 아닌 것 같다”며 “기사가 실시간으로 소비되는 온라인 포털 환경 때문에 기사를 파편적으로 빨리 처리하는 관행에 너무 익숙해져 있다”고 말했다. 김 실장은 이런 때는 기사 조회수를 신경 쓰지 않는 경영진의 결단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11월 발간된 '오염된 정의'. 사이드웨이

자신을 중간 연차라고 밝힌 한 기자는 “좋은 기사를 쓰면 경영이 나아지느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묻기도 했다.김 실장은 “좋은 콘텐츠를 수익으로 연결하는 매체 전략을 경영진이 결단하지 못하는 이유는 광고만으로도 그럭저럭 매출이 나오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언론사 경영이 위기라지만 저널리즘 사업은 아직 옛날 방식대로 이어가도 된다는 판단이 작동한다는 것이다.

김 실장이 제시하는 방향은 분명하다. 앞으로는 포털을 떠도는 ‘뜨내기손님’이 아니라 각 언론사가 충성 독자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충성 독자를 바탕으로 후원을 받거나 다른 사업을 벌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깊고 입체적인 차별화된 기사를 써야 한다. 언론이 신뢰를 잃는 건 정파성만이 아니라 천편일률적인 기사 때문이기도 하다는 게 김 실장의 진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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