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거없는 부정선거 의혹, 양비론… '합법 외피' 쓴 궤변 받아쓰면 안 돼"

범죄를 논쟁 취급하는게 '불공정'
검증·평가하며 포괄적 보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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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수괴 피의자 윤석열 대통령 측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건 부정선거를 조사하기 위함인 만큼 적법했다는 논리를 펴는 가운데 이 주장을 그대로 받아쓰는 보도 행태가 비판받고 있다. 범죄 행위가 분명한데도 윤 대통령 탄핵과 구속 찬반을 마치 정당하고 대등한 논쟁처럼 호도해 내란범의 선전에 이용당하고 결국 민주주의를 파괴하게 된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이 체포된 이틀 뒤인 17일 매일신문은 <윤 대통령까지 ‘부정선거 의혹’ 제기, 그냥 넘길 일 아니다>란 사설을 냈다. 상당수 국민이 부정선거가 있었다고 믿고 있고 선관위 시스템이 허술해 보이니 윤 대통령 뜻처럼 선거관리위원회를 수사할 필요성이 있다는 주장이다. ‘부정선거가 있었다고 생각한다’는 응답이 29%였다는 1일 MBC 여론조사 보도 등이 논평 근거였다.

윤석열 대통령이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체포된 지 사흘째인 17일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 앞에서 열린 윤 대통령 지지자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STOP THE STEAL(부정선거 멈춰)’ 문구가 적힌 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20일에는 조선일보가 한 부장검사가 부정선거를 수사해 봐야 한다고 주장하는 글을 검찰 내부망에 올렸다며 보도했다. 법률신문을 비롯한 여러 언론이 이 소식을 따라 썼다. 이 검사가 수사가 필요하다고 한 근거는 없었다. “기밀정보를 누구보다 긴밀하게 확인”하는 대통령이 ‘설마 근거도 없이 중범죄를 저질렀겠느냐’는 논리에 기댔다.


윤 대통령이 부정선거를 강변하는 이유는 12·3 비상계엄이 헌법에 어긋나지 않고 내란죄가 성립하지도 않는다고 주장하기 위해서다. 중국이 선관위 서버를 해킹해 2020년과 지난해 총선에 개입했다고 의심되고 이는 안보 위협으로 헌법에서 계엄령의 요건으로 규정한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라는 것이다.


윤 대통령 측은 심지어 17일 탄핵 심판 2차 변론기일에서 계엄군이 수원 선거연수원에서 중국인 해커 간첩 99명을 체포했다고 주장했다. 극우 성향 인터넷 매체 스카이데일리의 같은 날 보도가 근거였다. 하지만 이는 계엄군이 연수원에까지 배치됐었다는 지난해 12월 시사IN 보도를 유튜버들이 살을 붙여 와전한 내용으로 전혀 사실이 아니다. 애초 개표는 일일이 수작업으로 이뤄져 해커가 선거에 개입할 여지가 적다.


부정선거는 음모론에 불과하지만 윤 대통령 측 차기환 변호사는 “음모론으로 치부할 게 아니라 취재해서 많이 보도해 줬으면 사태가 이렇게는 안 됐을 것”이라며 계엄 책임을 언론에 돌리기도 했다. 선관위를 압수수색 하기 어렵고 언론조차 관심이 없어 부득이 제도권 밖의 계엄을 선택했다는 논리지만 선관위는 강제수사에도 적극 응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제도권 언론들조차 부정선거 문제를 회피해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김백 YTN 사장은 계엄 선포 2주 뒤인 지난해 12월16일 부정선거의 시비를 가리는 특집 프로그램 제작을 지시해 논란을 부르기도 했다. 이에 전국언론노동조합 YTN지부가 “누가 지구를 평평하다고 주장하면 팩트체크에 나서야 하느냐”며 음모론에 오히려 힘을 실어주는 꼴이라고 반발해 없던 일이 됐다.


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무장한 군인을 국회로 난입시킨 계엄은 내란죄가 분명한 ‘일탈’이라며 부정선거에 따른 불가피한 계엄이라는 주장을 언론이 ‘논쟁’처럼 다뤄선 안 된다고 경고한다. 아무리 뻔한 사실을 놓고도 다수 의견이 압력이 될수록 판단이 헷갈리고 집단적으로 오답에 동조하는 효과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강 교수는 “논쟁거리가 안 되는 것을 논쟁거리로 만드는 그 자체가 불공정한 보도”라며 “이때 양시론이나 양비론은 오히려 초점을 흩뜨린다”고 말했다. 그는 “언론이 평소 일상적 보도에서 공정성에 대한 훈련이 안 돼 있다 보니 정작 필요한 때 양측을 균형 있게 보도해야 공정한 것인지 혼란을 겪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해외 주요 언론은 한국 내 탄핵 찬반 주장을 한 기사 안에서 나란히 놓거나 정당한 논쟁처럼 동등하게 취급하지 않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탄핵 찬성 집회에서 12명을 인터뷰하며 이들을 비판적으로 보도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뉴욕타임스는 4일(미국 현지 시각) 부정선거 음모론이 극렬 지지자들을 부추겼다면서 이들이 왜 음모론에 빠졌는지, 윤 대통령은 왜 음모론자들과 손잡았는지 다뤘다.


강 교수는 “윤 대통령은 현행범으로 혐의가 분명하다는 점을 전제해야 한다”며 “어떤 주장은 정상참작을 위해 반영해 줄 수 있어도 ‘합법적 형식을 빌린 궤변과 선전’은 검증과 평가를 부여해 가며 의미와 맥락을 전달해야 저널리즘적이다”라고 말했다. 법정이나 국회에서 이뤄진 주장이라고 해서 항상 정당한 논쟁은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법조인과 정치인 등도 얼마든지 ‘극단주의를 배양하는 가장된 민주주의자’가 될 수 있다.


한국기자협회 언론윤리헌장도 제1조에서 진실 보도를 규정하면서 “사실을 종합적이고 포괄적인 맥락으로 전달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특히 내란에 관여한 이들의 일방적 주장을 속보로 다루지 않아야 한다. 출입처 중심의 취재 관행에서도 발표된 내용을 단편적으로 전하기보다 중간 관리자인 데스크 선에서 정보를 입체적으로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반민주주의적 주장을 그대로 전했다가는 언론인도 민주주의를 망가뜨리는 결과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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