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무정지 뒤 관저 내에서 두문불출한, 체포 순간에도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필사적이었던 대통령을 포착한 기자들이 있다. 그런 대통령을 카메라에 담기 위한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비상계엄을 선포해 사회를 극도의 혼란으로 내몬 대통령을 찍을 ‘포인트’를 찾으려 일주일 내내 뻗치기를 감행했고, ‘헌정 사상 처음’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역사적인 현장을 꼭 기록해야한다는 책임감에 짓눌리기도 했다.
◇탄핵소추 뒤 관저 산책 중인 윤 대통령 찍은 동아일보 기자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하고 맞이한 첫 주인 지난해 12월16일, 대부분 종합일간지가 여의도에서 열린 탄핵 촉구 집회 관련 사진을 실은 반면, 동아일보만이 관저에 머무는 윤 대통령의 모습을 1면에 실었다. 직무정지 후 자취를 감춘 윤 대통령의 모습을 처음으로 포착한 이 사진은 전영한 동아일보 기자가 7일간의 뻗치기 끝에 건진 결과물이다. 전 기자 본인이 자처해 12월9일부터 시작한 취재였다. 구글 어스를 통해 관저 주변 2.5km 반경을 분석하곤 뻗치기 할 만한 장소를 물색했다. 어느 건물 옥상, 등산로 등을 샅샅이 뒤졌고, 남산 산책로에선 수상히 여긴 시민의 신고로 쫓겨난 일도 있었다. 네 번째 시도 끝에 포인트를 찾아냈다. 이 때가 12월13일이었는데, 이틀간 해가 뜨고 질 때까지 전 기자는 한시도 파인더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고 전했다.
1초도 안 걸린 찰나였다. 12월15일 오후 2시쯤, 관저 1층 앞 나무 사이로 카메라 뷰파인더에 사람의 움직임이 들어왔다. 빠르게 셔터를 눌렀고, 그 사람이 윤 대통령이라는 걸 확인하자 기쁨보다는 당장 편집국 1면 마감 전 이 사진을 보내야 한다는 생각밖엔 없었다. 전 기자는 “솔직히 연차가 많다 보니 ‘와 내가 이걸 찍었다’하는 그런 감정도 이제 없다. 일단 국민들에게 이 사진을 빨리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이 제일 컸다”며 “우리가 헌정사에도, 대통령의 역사에도 없었던 일을 겪고 있는데, 이 시점의 현직 대통령을 사진에 담아내는 게 사진 기자의 의무라고 봤다”고 말했다.
◇도피설 제기된 윤 대통령 포착한 오마이뉴스 기자
8일 오마이TV는 체포를 거부하고 있는 윤 대통령 모습을 담아내는 데 성공했다. 한 차례 체포영장 집행에 실패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2차 집행을 앞두고 있었는데, 윤 대통령 도피설마저 제기되던 상황이었다. 다음날 8개 종합일간지가 오마이TV 영상 캡처를 1면 사진으로 게재할 정도로 파장은 컸다.
이날 12시50분쯤 윤 대통령은 1차 체포영장 집행 당시 2차 저지선이었던 관저 경내 삼거리까지 나와 주위에 뭔가를 지시하는 듯 행동을 한 뒤 관저 방향으로 올라갔다. 이 장면을 촬영한 방태윤 오마이뉴스 기자는 당일 새벽부터 먼저 일하고 있던 권민구 기자와 교대한 뒤 1시간 후 대통령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했다. 관저 내 체포 저지선들, 지형 등을 살펴보던 때 누군가 내려오고 있었다. 설마 하던 차, 특유의 걸음걸이와 손동작을 보고는 “아 이건 100%다” 확신이 들었다. 방 기자는 “당일 아침에도 꾸준히 도피설이 나오고 있었다. 관저에 있다는 게 확실해졌으니, 앞으로 관저 안을 더 취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이제는 김건희 여사를 포착하고 싶은 게 목표”라고 말했다.
◇헌정사상 처음으로 체포된 현직 대통령 찍은 한겨레21 기자
15일 오전 공수처 청사 후문에서 대기하던 이종근 한겨레21 선임기자는 헌정사상 처음으로 체포된 현직 대통령의 모습을 찍었다. 이 기자는 “설마 포토라인에 서지 않고 꼼수를 부리지 않을까라는 현장 사진 기자들의 걱정이 모여 현장 풀을 하기로 함께 뜻을 모았고, 청사 앞뒤를 나눠 취재하기로 한 것”이라고 당시 현장 상황을 전했다. 또 그는 “제 왼쪽 옆으로 뉴스타파 영상기자가 계셨는데, 그분도 대통령을 담았다. 제가 유일하게 찍은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대통령이 꼼수를 부릴까’ 싶던 이날 기자들의 우려는 현실이 됐다. 윤 대통령을 태운 차량은 가림막이 있는 공수처 뒷문으로 들어섰고, 윤 대통령이 내리려는 순간에도 다른 경호처 차량이 앞으로 이동해 대기 중인 기자들의 카메라 앵글을 가리는 일이 발생했다.
이 기자도 다른 차가 올 것까진 생각하지 못 해 순간 당황했다. 무엇보다 “이명박, 박근혜도 포토라인에 섰는데 설마 뒤쪽으로 올까, 윤 대통령이 보여준 행태를 보면 꼭 그렇지도 않을 것 같다는 반신반의한 생각”이었던 그는 자신의 모습을 극구 보이지 않으려는 윤 대통령을 보곤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럼에도 더욱 카메라 앵글 속을 주의 깊게 지켜봤다. 초점이 흔들리지 않도록 낮임에도 셔터스피드를 높게 잡아 놓기도 했다. 체포된 대통령이 공수처에 들어서는 뒷모습, 그 찰나를 포착한 순간, 이 기자는 안도감부터 들었다고 했다. 이 기자는 “현장 풀기자는 잘하면 본전이고 못하면 전적인 책임을 지게 된다. 누군가가 이 역사적인 현장을 기록했다는 게 다행이었다”며 “현장에서 아무도 못 찍었다면 얼마나 분했을까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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